4- 넓디넓은 중국, 우리는 아직 적응 중
석림 구경을 마치고 밤기차를 타기 위해 쿤밍역에 갔다. 신랑이 인터넷으로 미리 예매한 기차표. 이미 좋은 시간대(밤 11시쯤에 타서 아침 7시쯤 다리에 도착하는, 완벽하게 밤을 기차에서 보낼 수 있는,)는 예약이 다 끝나서 조금은 이른 시간에 기차를 타고 내일 새벽에 다리에 도착하게 되었다.
기차표를 예매할 때 있었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 하나. 우선 좌석 이름이 잉쭈어(硬座, 경좌 : 딱딱한 의자), 루완쭈어(软座, 연좌 : 푹신한 의자), 잉워(硬卧, 경와 : 딱딱한 침대), 루완워(软卧, 연와 : 푹신한 침대) 이렇게 되어 있어 우리가 찾는 4인실은 도대체 어디인가부터 헤매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러 블로그의 친절한 설명 덕에 잉쭈어와 루완쭈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기차의 좌석이고 잉워와 루완워가 침대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잉워가 우리가 생각하는 6인실, 루완워가 4인실. 그래서 얼른 4인실을 끊자 싶어 중국 철도 12306 앱을 통해 필요한 정보들을 입력하고 결제를 하는 단계에 아니 이것은 웬 중국어 단어 시험? 결제를 하려면 거쳐야 하는 단계에 갑자기 중국어 단어가 몇 개 나오더니 그 밑에 사물들 사진이 뜨는 것이다. 이것이 뭐하는 것인가 싶어 자세히 봤더니 그 중국어 단어에 맞는 사진을 순서대로 클릭해야 다음 단계로 진행이 가능. 아이고 참!!! 온 가족 4명이 머리를 맞대고 아는 단어가 나올 때까지 사진 바꾸기를 몇 차례 클릭한 결과 어렵사리 아는 단어의 조합을 발견해서 겨우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는... 아, 참 중국어 모르고 중국서 살아가기, 참 힘들구나.... 불쌍하게도 그러는 사이 우리 5명 표 사이에 다른 중국인이 끼어들었다는...
그렇게 어렵사리 예매한 기차표를 들고 일치감치 쿤밍역에 가서 총 2번이나 하는 복잡한 짐 검사(쿤밍역에서 예전에 칼부림 사건이 발생한 까닭에 특히나 짐 검사가 까다로웠다)까지 마치고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기차 시간 전 30분, 20분이 가까워오는데 들어가는 개찰구는 열릴 생각을 안 하는 거다. 이미 다른 중국인들은 다들 일어나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다. 중국인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걸 보면 우리만 영문을 모르고 기다리는 것 같지는 않은데... 결국 개찰구는 출발시간이 30분쯤 지난 뒤에야 열렸고 우리도 중국인들을 따라가서 기차를 탈 수 있었다.
기차는 제 시간보다 연착해서 역에 도착했고 플랫폼에 서 있는 기차는 지금까지 본 기차 중에 가장 좋은 것 같았다. 그러나 들어가서 보니 웬 걸. 기차가 복층으로 되어 있다. 지상보다 조금 낮게 되어 있는 1층에 4인실이 있고 2층에는 VIP실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의 꿈의 4인실은 졸지에 반지하가 되어 버렸고. 기차 창문으로 플랫폼의 바닥만 보이는 슬픈 현실. 밤이라 밖의 풍경을 볼 수 없음에 위안을 삼을 수밖에.... 그래도 우리는 꿋꿋하게 바로 옆 칸에 식당칸이 있음을 발견하고 식당칸에서의 야식으로 상처받은 마음을 달랬다.^^
새벽에 도착한 다리에서 다행히도 바가지를 씌울 생각이 없는 빵차 아저씨를 만나 숙소까지 쉽게 도착해 짐을 풀고 첫날 일정으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봤던 난짜오펑칭따오(南诏风情岛, 남조풍정도)로 향했다. 남조풍정도는 얼하이 호수(호수 모양이 귀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 안에 있는 섬으로 옛날에는 귀족들의 별장이 있던 곳이란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섬 안에 있는 객잔이 나왔는데 너무나 고즈넉하고 평화스러워 보여 꼭 한 번 와보고 싶었던 곳이다.
버스터미널에 가서 솽랑(双廊, 쌍랑)가는 버스를 끊었더니 우리나라 25인승 콤비 같은 버스를 타라고 알려줬다. 나중에 또 얘기하겠지만 중국 버스는 아무래도 복불복 시스템인 것 같다. 도대체가 같은 버스 노선이라도 상태가 천차만별인 버스를 맞닥뜨리게 된다. 버스에서 내려 기념품 가게들이 쭉 늘어서있는 길을 따라 내려가면 표를 끊는 곳이 나온다. 남조풍정도 가는 배와 얼하이호를 유람하는 유람선 표가 따로 있다. 우리는 남조풍정도 배 티켓(입장료 포함)을 끊었다. 1인당 50원인데 열심히 가져간 아이들 학생증을 내밀었더니(중국은 학생증 할인이 50%이다) 중국 학생 아니면 안 된단다. 이런! 지금까지 관광지들은 다 할인이 가능했건만. 한국에 있는 학교도 아니고 중국에 있는 한국국제학교이건만... 관광지마다, 아니 표를 끊어주는 사람에 따라 할인을 해주고 안 해주고 천차만별이라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배를 탄 지 채 5분도 안 되어 섬에 도착한다. 섬의 분위기는 우리나라의 외도와 닮아 있다. 뭐랄까 자연 그대로의 모습보다는 아주 열심히 정성스럽게 가꾼 느낌. 섬 전체를 하나의 정원으로 만들어놓은 듯한 느낌이다. 섬 둘레를 도는 산책로를 따라 걸었는데 정작 TV에서 본 객잔은 찾아보지 못했다는...
섬 곳곳에 이렇게 섬을 지키는 다양한 신들의 동상이 있다. 특히 호수 안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듯한 두 여신(?)의 동상은 매우 이색적이었다. '어때 나의 미모가?' '허걱~' 이러고 있는 듯한 포즈?^^
섬을 둘러보고 배를 타고 나와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탔는데 분명 올 때와 똑같은 버스인데 요금이 1인당 25원이란다.(올 때는 13원이었다) 말을 할 줄 알아야 이유를 묻든지 불만을 표시하든지 하지(여행에 가장 필요한 회화는 컴플레인 걸기임을 여행때마다 절실히 느낀다....)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탔는데 알고 보니까 왔던 길과는 다른 길로 가는 것이었다. 덕분에 얼하이호를 한 바퀴 돌게 되는 셈인 거다. 그럼 그렇지, 뭔가 이유가 있긴 있는 거다.(어휴, 이 변덕)^^
돌아가는 길은 아침에 왔던 길보다 좀 더 상업화가 되어 있는 길이었다. 경치가 좋은 곳은 우리나라의 펜션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숙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막 지어지는 펜션들도 엄청 많이 보였고. 또 물놀이를 하다 쉬거나 음료를 마실 수 있는 노천카페 같은 것도 자주 눈에 띄었다. 여행 책에서도 이곳이 점점 하나의 관광 지구화되어가고 있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딱 우리나라의 석모도 해변길 같은 느낌이다. 이곳저곳 눈길은 가지만 상업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런 곳.
저녁을 먹고 나오니 이미 다리 고성 안에는 어둠이 깔려서 낮과는 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여전히 사람은 많고 차와 오토바이가 울려대는 경적에 정신이 없었지만 사람이 적은 뒷골목으로 가면 옛날과 오늘날이 공존하고 있는 듯한 고즈넉한 풍경들이 펼쳐졌다. 그런 뒷길만 찾아 사진 찍으며 돌아다니다 예쁜 기념품 가게들이 나오면 쑥 들어가 구경하고 나오는 것도 재미있다.
숙소에 돌아가기 위해 큰길에 들어섰다가 우리는 마지막으로 기함을 토하고 말았다. 꿍짝꿍짝 울려대는 음악소리, 뿌연 스모그, 천사 옷 입고 무대에서 춤추는 무희들... 아, 여긴 클럽 거리인가 보다. 고성 내의 클럽 거리, 정말 안 어울린다 싶은데 여기 말고 리장고성, 수허고성도 나중에 가보니 마찬가지이더라. T.T 얼른 숙소로의 발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어젯밤과는 전혀 다른 고성의 아침. 어제 미리 예매해 둔 창산(蒼山, 창산)에 가기 위해 여행사로 향하다 고성 위로 올라가 바라본 아침의 고성은 너무나 평화롭다.
다리 내에서 표를 사는 것은 사설 여행사를 통하는 게 더 싸다는 여행책의 조언대로 어제 그나마 말이 통하는(우리말을 잘 들어주고 이해해주려고 노력하는) 여행사에 예매를 했었다. 그리고 아침에 그곳을 찾아가는데 웬 걸. 그 여행사가 없다. 이건 무슨 귀신이 곡할 노릇. 그 부근이라고 생각되는(지도 상으로도 표시되는) 곳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건만, 없다. 이미 약속 시간은 지나버렸는데... 급한 나머지 눈에 띄는 아무 여행사나 들어가서 물어봤다. 그랬더니 앉아 있던 그 아주머니, 우리 여행사로 전화를 걸어서 '너희 한국 애들 여기 있다. 와서 데리고 가라'(뭐 대충 이런 이야기였음)라고 이야기해줬다. 아, 정말 감사해요. 복 받으실 거예요.^^ 그러자 조금 있다 어제 예매했던 여행사의 직원이 우리를 데리러 왔다.
직원을 따라 여행사에 도착해보니 우리가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던 그 길이 맞다. 무슨 상황인가 생각해보니 직원이 이제야 문을 연 것 같다. 밤에 왔던 길인 데다 아침에 문까지 닫혀 있으니(고성 안이라 문도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나무로 된 패널 같은 것들을 모든 가게가 똑같이 하고 있음) 그 가게가 그 가게인 것 같아 가게 앞을 지나가면서도 알아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 뒤부터 우리는 다시 찾아와야 할 곳은 가게 간판과 그 옆 가게까지 사진으로 찍어두는 버릇이 생겼다. 어쨌든 우리는 시간에 늦어 안절부절못하며 왔건만 직원은 만사태평이다. 신랑 핸드폰으로 무슨 번호가 찍힌 문자를 보내더니 우리를 데리고 어딘가로 간다. 버스를 타러 가나 싶었는데 전기차 운전사에게 뭐라고 얘기하고는 우리를 전기차에 덜컥 실어버리고는 쿨하게 돌아간다. 이것이 뭣이다냐? 창문도 없이 옆이 뻥 뚫린 전기차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실려가고 있는데 비까지 내린다...
전기차가 멈춘 곳에 내리니 관광안내센터가 있길래 물어보았더니 저기 보이는 매표소 같은 곳으로 가란다. 매표소에 가서 아까 여행사 직원이 신랑한테 보낸 문자를 보여주었더니 길게 프린트된 우리의 표를 주며 기다리라고 한다. 앉아서 기다리는데 중간중간 직원이 뭐라고 소리를 치면 사람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가는 게 버스가 왔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우리가 멀뚱멀뚱 기다리며 멍청히 있으니 직원이 아예 우리 차가 오자 우리를 버스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그 버스는 창산 케이블카 타는 입구에 우리를 내려주고는 또 쿨하게 가버렸다. 다시 케이블카 매표소에 가서 아까 받은 표를 보여주자 케이블카 표와 입장표로 바꿔주었다.
우리는 고성 안 여행사에서 창산 투어 예매를 하면 아침 약속 장소에 모여 버스(조그맣더라도)를 타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우리나라의 시스템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여정을 곰곰 생각해보니 고성 안 여행사에 우리 표를 미리 예약해서 예약번호를 받은 것이고 매표소에서 그 예약번호로 버스와 케이블카, 입장료 세트를 우리가 발급받아 케이블카 매표소에서 케이블카 입장권으로 바꾼 것이다. 뭐 비슷한 가격(실제로 구입하는 가격과 우리가 산 가격이 같거나 조금 쌌던 걸로 기억)으로 매표소까지 오는 전기차를 공짜로 탔으니 손해 본 것은 없다만, 종 황당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창산은 산이 너무 푸르러 항상 비취색을 띠고 있다고 해서 푸를 창(蒼) 산이란다. 총 19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는데 제일 높은 봉우리는 4,000m가 넘고 다른 봉우리들도 모두 3,500m 이상이다. 우리나라 한라산의 고도가 1,950m라는 걸 떠올리면 실감이 난다. 산봉우리에 사시사철 쌓여 있는 눈들이 녹아 흘러드는 곳이 바로 어제 갔던 얼하이 호수다.
기본적으로 이 곳이 고산지대인 까닭에 과자 봉지며 포장김치가 너무 빵빵해져 바늘로 구멍을 뚫어야 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폭포를 보러 내려가는 잠깐 동안에도 힘이 든 것은 그래서 고산병인 걸로. 책에서는 조금만 더 올라가면 산 속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넓은 산책로가 펼쳐진다고 하는데, 우리는 고산병인 걸로.^^ 신랑은 더 올라가겠다고 등산로로 올라서 여자 셋은 케이블카 타고 오면서 봐 두었던 계곡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 계곡 내려가는 길도 장난 아니었다. 케이블 카에서 봤을 때는 가까운 거리인 줄 알았는데 꽤 멀다. 이럴 줄 알았음 올라갈 걸 그랬다. 그런데 이미 왔던 길이 있으니 다시 돌아갈 수는 없고(이 딜레마). 어찌어찌 도착해서 쉬다가 다시 올라가는데 공안(우리나라 경찰)이 우리를 붙잡는다. 뭐라고 말하는 데 또 말을 못 알아들어 멍청한 표정으로 쳐다보니 표를 보여달란다. 그러니까 우리가 내려온 길이 케이블카 타지 않고 창산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중간에 검표를 하는 것이고. 우리 입장권을 꺼내 보여주었더니 안 된단다. 이미 아까 케이블카 타고 올라올 때 검표 과정에서 표에 구멍을 뚫었으니까. 이런! 아는 단어 모두 동원해서 '워 쭈어 수어따오.'(나는 케이블카 타요)하면서 케이블카 표를 보여줬다. 봐라 이 표에 구멍이 한 번 밖에 안 뚫렸단 말이다! 그러자 자기네들끼리 뭐라고 얘기를 하더니 우리 보고 그냥 가란다. '씨에씨에'(고마워)
말도 못 하면서 여행을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우리를 불쌍히 여기는 착한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아침에 직접 전화를 걸어 길 잃은 우리들을 구원하신 여행사 아주머니, 다른 버스 타려는 우리를 몇 번을 말리다 직접 차 앞까지 데려다주던 매표소 직원, 무슨 영문인지 몰라 케이블카 입장권만 들이밀던 우리를 눈 감아 준 검표 요원, 버스 타러 걸어 내려오던 길에 아이스크림을 사 물자 편하게 먹고 가라고 의자를 내어 주시던 가게 아주머니. 여행이 진짜 재밌는 이유는 이런 사람들을 어디서 어떻게 만나게 될지 몰라서이지 않을까?
여행의 두 번 째 도시 다리는 쿤밍에 비해 조금은 아늑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처음 보는 중국 고성의 분위기도 좋았고. 개인적으로는 차와 오토바이가 다니는 길이 사람 다니는 길과 분리되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지만, 기본적으로 중국은 워낙 사람보다 차 위주의 도로 환경인지라.... 아침, 낮, 저녁 다른 모습을 보여주던 다리 고성도, 얼하이호의 남조풍정도도, 제대로 올라가보지 않았지만 창산도 한 번쯤 가볼만한 곳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북경이나 쿤밍과는 다르게 사람들의 푸근함이 느껴지는 곳이라 더 좋았던 것 같다. 이렇게 아직도 적응 중인 우리의 두번째 여행지 다리도 마무리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