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하는 데 나만 못하네
골프를 처음 '목격'한 건 대학 시절이었다.
입주과외를 하던 집의 주인아저씨 — 중소기업을 운영하시던 그분은 당시 막 골프라는 신세계에 발을 들이신 참이었다. 거실 한쪽에는 언제나 퍼팅연습기와 퍼터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퇴근 후엔 양복 바지 차림으로 홀을 향해 공을 굴리시곤 했다. TV에선 초록 잔디 위로 흰 공이 포물선을 그렸고, 나는 그걸 지나가다 슬쩍 보며 생각했다.
'아, 저게 골프라는 거구나.'
그게 전부였다. 마치 TV 다큐에서 아마존 원주민을 보듯 — 분명 같은 행성에 존재하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 사장님은 식탁에서 종종 "핸디가 95야, 아직 멀었어" 하시며 웃으셨는데, 당시의 나는 핸디가 뭔지도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80년대 후반, 대학생에게 골프란 그저 '저 동네 어른들의 이상한 취미' 정도였으니까.
세월은 흘렀고, 나는 사회인이 됐다.
첫 직장에서 나의 운동 본능은 야구로 향했다. 사회인 야구팀의 왼손 주전 투수이자 3번 타자 — 겸손하게 말하자면 팀의 핵심이었다. 이후엔 테니스의 매력에 빠졌다. 두 번째 직장의 테니스 동호회에 입단하고, 사업부 대항전에 대표로 나가 B그룹의 주전 자리까지 올라갔다. 30대 초반의 나는 코트 위에서 꽤 쓸만한 사람이었다.
돌이켜보면 나에겐 일종의 '운동 정복 알고리즘'이 있었다.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면 반드시 고수의 반열에 올라야 한다는 이상한 승부욕. 어지간한 운동은 그 알고리즘대로 단기 집중 → 빠른 성장 → 나름의 고수 등극 순서로 흘러갔다. 축구, 야구, 테니스, 탁구... 종목은 달라도 공식은 같았다.
그러던 내 앞에 골프라는 변수가 나타난 건 1999년, 두 번째 직장에서 해외업무를 맡기 시작하면서였다.
호주 출장지에서 나는 충격을 받았다.
비슷한 또래의 주재원들이 죄다 골프채를 들고 있었다. 주말이면 삼삼오오 필드로 나가고, 월요일 아침이면 라운딩 무용담으로 사무실이 달아올랐다. 그들의 눈빛엔 뭔가 공유된 언어가 있었다 — 나만 빼고.
'저걸 못 한다고?'
그 순간, 잠자고 있던 정복 알고리즘이 깨어났다. 귀국 비행기 안에서 나는 이미 결심을 굳혔다. 골프, 시작하자. 어차피 해외 출장이 늘어날 텐데, 골프 한 라운딩이 열 번의 회식보다 친분을 더 빨리 쌓아준다는 건 이미 눈으로 확인했다. 거기다 새로운 운동이 주는 그 묘한 정복욕까지 발동했으니, 이건 거의 운명이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 골프를 '알아보기' 시작하는 순간, 나는 뭔가 단단히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골프는, 달랐다.
야구를 시작할 때는 글러브 하나, 배트 하나면 됐다. 테니스는 라켓 하나에 운동화 한 켤레. 하지만 골프는 처음부터 나를 다른 세계로 끌어당겼다. 드라이버, 아이언 세트, 웨지, 퍼터 — 클럽만 해도 십수 개다. 거기에 골프백, 골프화, 골프 장갑, 볼... 장비 목록이 마치 원정 등반 준비물 같았다.
레슨비를 알아보니 한숨이 나왔다. 라운딩 비용을 검색하다가 눈을 의심했다. 당시 한국의 골프 시장은 임원급이 아니면 쉽게 넘볼 수 없는 높은 장벽이 있었다. '고가의 귀족 스포츠'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야구나 테니스처럼 "일단 시작해봐"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었다.
나의 정복 알고리즘이 처음으로 입력값 앞에서 멈칫했다.
'이건... 좀 다른 게임이구나.'
맞다. 골프는 처음부터 달랐다. 단순히 장비가 비싸서가 아니라, 이 운동이 요구하는 것들의 결이 달랐다. 몸을 쓰는 스포츠인데 힘을 빼야 하고, 이기려고 하는 게임인데 마음을 비워야 하며, 혼자 치는 운동인데 끝없이 자신과 싸워야 했다. 골프는 그냥 운동이 아니라, 일종의 철학이었다.
그 문 앞에서,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이 이상한 나라의 문을 열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