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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솔솔 Sep 17. 2020

엄마 담당

집안일은 엄마일이 아니야.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중 아마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지 않을까 싶은 집안일 전쟁.


 나는 중학생 때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집안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

'어차피 나중에 크면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게 집안일인데 뭐하러 벌써부터 하냐'는 엄마의 생각이 반영된 결과였는데 덕분에 나는 엄마 아래에서 자라는 동안 방 좀 치우라는 그 흔한 잔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자란 나지만, 나는 내 아이에게 집안일을 시킨다.

아주 당연하게! 아주 단호하게!


조금씩 도와달라며 시키긴 했었지만 본격적으로 집안일을 맡겼던 건 아마도 내 딸의 나이 9살 무렵이었을 거다.


"아가, 빨래 개는 것 좀 도와줄래?"


"왜? 나 하기 싫은데."


"엄마도 하기 싫지만 개서 정리해야 또 새 빨래를 하지. 울 아가가 도와주면 더 빨리 끝날 것 같아. 같이하자."


"그런 건 엄마 일이잖아. 내가 왜 해야 돼?"


시크 내를 풀풀 풍기는 내 딸의 대사에 내속에 눌러왔던 무언가가 솟구쳤다.


"누가 그래? 집안일이 엄마 일이라고?"


"원래 그런 건 엄마들이 하는 거잖아."


그리고 이때부터 어금니를 악 물었더랬다.

입가엔 화내지 말자는 다짐의 미소를 고.


"집안일이 왜 엄마 일이지? 집안일은 이 집에 살고 있는 가족 모두가 함께 하는 거야."


"그래도 그런 건 난 재미없어서 하기 싫은데."


"엄마도 집안일이 엄청 하기 싫으니까 안 할래. 이제부터 밥도 먹지 말고 옷도 더러운 옷 계속 입고 더러운 집에서 살아."


"그건 싫어."


"그것도 싫으면 울 아가는 그냥 이 집에서 나가면 되겠다. 우리 집은 가족 모두가 함께 지켜나가야 하는데 하기 싫다면 그냥 우리 가족 안 하면 돼! 하지만 함께 살 거라면 하기 싫어도 함께 협동해서 집안일을 해야지. 집안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 다 같이 깨끗한 환경에서 살기 위해서 하는 거야. 그리고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는데, 엄마는 집안일하는 사람이 아니야. 엄마는 우리 가족이 행복하도록 중심을 지키고 네가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도록 도와주는 사람이야. 집안일이 엄마만의 일이라는 생각은 아주 아주 아주! 잘못된 거야. 집안일은 엄마, 아빠, 너까지 셋이 같이 하는 거야. 똑똑히 기억해둬. 네가 나중에 커서 엄마, 아빠처럼 결혼을 했을 때 너 혼자서만 집안일하면 기분이 좋겠니?"



 흡사 따발총 같았던, 내 속내가 가득 담긴 말을 9살에 불과했던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를 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날 이후로 내 딸은 요리, 청소, 빨래 무엇이든 나와 남편이 함께 하자거나 도와달라고 부르면 군말 없이 일을 한다. 고사리 같은 아이 손으로 하는 집안일이 완벽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노력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주변을 보면 결혼한 내 또래들의 가정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가정들이 집안일을 여자 몫이라 여긴다.

아마도 세대차이일 것이다. 어른들이 보기엔 맹랑하고 되바라질지 모르지만(우리 시어머니부터가 말로는 내 생각에 동의한다 하시지만 당신의 아들을 보실 때면 아들 등에 보이지 않는 빨대가 꽂힌 듯한 표정이시다.) 나는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처럼 느껴진다.


 일 해서 돈도 벌고, 집안일도 완벽하고, 애도 잘 키우고.

슈퍼우먼이라고 치켜세우지만 '현대판 몸종으로 아주 듣기 좋게 포장해놨구나'라고 생각하는 내가 비뚤어진 걸까?


 나는 내 딸이 그렇게 살길 바라지 않는다. 그렇기에 내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안일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함께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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