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아기를 키우는 일이란
지난주엔 컨디션이 영 꽝이었다. 두통이 있었다거나 몸이 아픈 건 아니었고, 마음이. 정신이 그랬다. 둘째가 우리 집에 뿅 하고 나온 지 만 6개월째. 6년 전 호되게 겪었던 잠투정이란 놈을 나는 온몸으로 다시 받아내고 있었다. 거기다 일찍 시작된 이앓이는 잠투정과 만나더니 어찌나 기세가 등등한지.
수면의 질이 극도로 낮은 사람으로서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아이가 깨어있을 때 최선을 다해 눈 마주쳤고, 배고파할 때마다 먹였다. 낯선 환경에서 조금 긴장하긴 했지만 이유식도 어찌어찌 시작했다. 시간은 늘 모자랐고 그 모자란 시간에 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턱없이 늘어났다. 아기와 어린이, 그리고 성인 둘의 끼니를 늘 생각했다. 꾸준히도 울어대는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는, 어느 순간엔 우리 집에 당연하게 깔려있는 bgm처럼 나를 무뎌지게 했다가도, 나에게 조금 더 빨리할 수는 없겠냐고 재촉하는 채찍질과도 같았다. 나는 자주 쫓기는 사람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경력자였다. 지금 이 순간이 끝없는 터널 같고 숨이 턱턱 막혀올 때가 있지만, 분명히 끝이 있다는 걸 아는 경력자말이다.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는 꽤 길게 자기 시작할 거고, 그럼 내 수면의 질도 올라갈 것이고, 말문이 트이기 시작할 무렵의 아이를 곁에 두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생각을 되뇌며 나는 내 현실을 조금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내 힘듦을 남편에게 나눠 이해받고, 맛있는 것도 먹고, 긍정회로를 돌렸다. 다 지나갈 일, 점처럼 찍힐 일, 아니 점보다도 더 희미해져서 아예 기억도 안 날 일.
출근하는 남편도 잘 배웅했고, 첫째도 여느 날처럼 스쿨버스에 잘 올랐다. 그렇게 그대로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 되었다. 하지만 고래고래 세 시간을 넘게 울어대는 아이의 울음 앞에서, 이미 낮잠을 한번 자고도 벌써 일어났을 그 시간에, 나는 무릎이 탁 꺾여버리고 말았다. 장시간 쉬지 않고 내뱉던 그 소리는 내 귓고막까지 찰지게 때려댔고 그런 나는 순간 뇌가 정지해버리는 것 같았다. 소리가 뇌를 때렸다.
아… 더 이상은 안 되겠다.
모든 게 가능할 것만 같았던 긍정의 나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터지기 일보 직전의 나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이렇게 의지가 빨리 꺾여버릴 수도 있나? 작심삼일도 아니고 작심반나절은 너무 한 거 아닌가… 싶으면서도, 나는 뭐에 씐 사람처럼 아무런 표정 없이 아이의 기저귀를 갈고 외투를 입혀서 차에 시동을 걸었다. 아기는 카시트에 타면서 눈을 말똥말똥,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금방 도착해, 도착해서 안아줄게, 우리 일단 나가자.
10분 남짓 떨어져 있는 중고 물건을 파는 가게. 그곳에 다양한 크리스마스 오너먼트를 팔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언젠가 가봐야지 하고 메모해 두었던 곳이었다.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 이런 상황에 한 번도 방문해보지 않은 곳으로 핸들을 돌리다니, 평소답지 않은 나였다. 사실 일단 나오긴 했지만 어디를 가야 할지 몰랐다. 분명한 건 나는 지금 집 안에 있을 수 없었고 어디론가 나가야만 했다는 것. 하긴, 평소의 정신이 아니었으니 빽빽 울어대는 애를 들쳐 싸매고 그곳엘 갔던 것이겠지. 제정신이 아니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도착해서 힙시트에 아기를 앉히고 가게 문을 여는 순간, 뭔가 내 안에 있던 화가 조금 누그러드는 느낌을 받았다. 씩 웃음까지 나왔던 것 같다. 블랭킷으로 시야를 가렸건만 아기는 뭔가 낯선 공기가 느껴졌는지 한동안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었다.
상관없었다. 그곳에서는 아이가 당장 잠에 들지 않더라도, 내 생각보다 조금 더 뒤척였어도 아무렴 상관없었다. 어느새 나는 너그러운 엄마가 되어있었고, 내가 이것저것 구경하는 사이 아이는 깊은 잠에 빠졌다.
반짝반짝 귀여운 것들 사이에서 너무 행복해하는 나…… 신이 나서 미국 할머니들 사이를 활보하는 나…… 몸부림치며 도망친 곳이 바로 이곳이라니. 이것저것 급하게 눈에 담으며 재충전하는 나…… 그런데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은 나.
결국 그 가게는 며칠 후 혼자 다시 재방문했다. 그리고 몇 가지 집어왔다. 이토록 소소한 것에 행복해질 수 있구나. 이런 나 자신이 웃기고 어이없으면서도, 한편으론 이런 내가 싫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꽤 오래가던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아이에게 조금 더 많이 웃어줄 수 있게 되었다.
곧 크리스마스가 온다는 사실… 나에게는 이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