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으면 쓰면 된다
이제 11월.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아직은 기온이 10도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언제 갑자기 눈발이 날릴지 모르는 미국 중부.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은지도 오래되었다. 그동안 이 책, 저 책 기웃거리며 읽는 것을 쉬진 않았지만, 이상하리만치 글은 써지지가 않았다. 이런 걸 써볼까, 저런 걸 써볼까, 머릿속에 뭉개 뭉개 무언가가 피어나다가 자취를 감추는 일만 허다할 뿐이었다.
읽는 일은 쓰는 일을 생각하게 했다. 읽으면서 동시에 쓰는 일을 생각했다. 읽기와 쓰기는 대체 어떤 상관관계가 있길래 읽으면 읽을수록 쓰고 싶게 하는 걸까, 하고 자주 생각했다.
잘 쓰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읽는 책들 속 멋진 문장에 감동받으면서, 감동만 받으면 되는데, 거기서 가끔은 크게 주눅 들어버렸다. 글은 이런 사람들이 쓰는 거지. 나 같은 사람이 무언가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게 어떤 영향력이 있을까? 그게 어떤 의미가 될까? 영향력 없는 글을 쓰는 게 의미가 있나? 그럼 나에겐 쓰는 것이 대체 어떤 소용이지? 어떤 소용인지는 모르겠는데 난 왜 또 계속 뭔가를 쓰고 싶은 거지…..?
알고 싶었다. 쓰는 일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의 일상을, 자칫 흘려보낼 수 있는 생각들을 글로 잡아서 박제해 놓고 싶은 욕구. 그런 욕구가 있음은 분명한데 왜 나는 쓰지 못하고 쓰는 사람들 주변만 뱅뱅 돌고 있었을까? 속시원히 깨달음을 얻길 바랐다. 나를 위한 그 한 권의 책, 한 꼭지, 한 문장이 있을 거야. 그것만 찾으면 앞뒤 생각하지 않고 그때부터 바로 쓰는 거야. 무슨 수학 공식을 써서 명쾌한 답을 얻으려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했다. 몇 년째 그 ‘답’을 찾아 헤맸지만 그런 건 없었다. 내가 글을 써야 할 이유는 내 안에서 찾아야 했다. 이 간단해 보이는 한 문장을 깨닫기까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길을 지나쳐 온 걸까? 그토록 ‘내‘가 누구인지 알려고 했으면서, 왜 내 시선은 또 밖으로 향해 있었던 건지.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 명확한 삶의 이유를 가슴에 새기고 다니지 않는다. 그렇다고 중요하지 않은 삶이 아니다. 살다 보면 보이는 것처럼, 쓰다 보면 보인다는 걸 믿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쓰고 싶어? 그럼 그냥 써.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