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기찬 도시 레온에서의 호사
24년 9월 3일 한국을 떠나 산티아고 순례길을 나섰다. 9월 5일 프랑스 생장부터 오늘은 10월 5일 세월아 네월아 한 달을 걸었다. 보통 프랑스길 800Km 중 부르고스까지 1/3, 레온까지 걸으면 2/3 정도 왔다고 한다.
남들은 한 달이면 걷는다는데 거북이처럼 천천히 걸으며 은퇴자의 여유를 누리고 있다.
프랑스길에서 제일 큰 도시인 레온에서 걷기를 잠시 멈추고 어제 오후부터 여기저기 레온의 시내를 찾아다니고 맛집을 즐기는 호사를 누렸다.
레온은 스페인 서북부 카스티야의 역사 유적이 풍부한데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다. 사자라는 뜻인데 시내 곳곳에 사자 문향을 많이 볼 수 있다.
프랑스식 고전 고딕건축을 대표하는 레온 대성당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대표하는 산이시도르 교회,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보티네스 저택 등 아름다운 건축물들로 유명하다.
품위 있는 유적을 보려고 관광객들과 산티아고 순례자들이 넘쳐나서 거리에는 커피와 술과 담배를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중세 건축된 대부분의 성당은 어두운데 레온 성당은 밝고 화려한 수백 개의 스테인드글라스 그림이 성당을 아름답게 밝힌다.
어제는 저녁 해가 진 어둠 속의 대성당을 보며 화려하지 않으면서 힘이 느껴졌는데 오늘 성당 내부를 관람하면서 세월의 중후함이 느껴졌다. 교회도 사람처럼 세월과 함께 스며있는 것이 당연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인위적이지 않고 세월이 품위 있게 배어 있는 사람이나 건축, 예술품들을 좋아한다.
'그런 것들이 오래 함께 할 수 있으니까---'
화려함의 극치 브루고스 대성당 광장 앞 나체의 병든 순례자가 성당을 등지고 있는 동상을 보았었다.
그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생각거리로 남아 성당을 볼 때마다 떠오르며 비교된다.
종교나 학교는
소소하고
낮은 곳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힘들고 사명감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레온의 산 마르코스 광장에 있는 옛 산 마르코스 수도원은 대규모 건물로 건물 전체가 고급스럽고 해 질 무렵에는 황금빛으로 아름다움을 더한다. 건물 앞면 정교하게 제작한 수많은 조각상들과 이곳의 변천사는 놀랍다.
16세기 건물로, 처음에는 군대 시설로 조성했다가 이후 수도원, 병원, 감옥 등 용도가 여러 차례 변경되며 사연이 많다. 현재는 최고급 국영 호텔로 개조하여 정부에서 운영한다고 한다. 스페인에는 역사적 건물을 국영 최고급 호텔로 개조하여 사용하는데 전국에 70여가 넘는다고 한다.
최첨단 현대시설의 호텔과 비교가 안될 정도의 우아함과 고풍스러운 분위기, 품격 있는 서비스로 비싼 값에도 예약이 힘들 정도라고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 800km과
대서양 끝 피스테라와 묵시아까지 120km,
모두 920km를 완주하면
41년 열심히 일하고 걸은 나에게
산티아고 파라도르 국영 호텔에서
하룻밤 자는 선물을 하면 어떨까?'
건물의 앞에는 순례자 상이 있는데 메세타를 힘들게 걸어온 순례자가 신발을 벗어놓고 십자가에 기대어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습이다.
모두들 이 순례자상 옆에 나란히 앉아서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며 지나온 힘든 순례길을 생각하고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을 고민한다.
'나도 그렇다!'
보티 네스 저택인 카사 데 보티 네스 (Casa de Botines)는 안토니오 가우디(Antonio Gaudí)가 호화로운 저택을 원하던 기업가 시몬 페르난데스의 의뢰로, 1892년 건축을 시작해 이듬해 완성했다. 가우디는 레온의 기존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도록 이 건물을 중세풍으로 설계했다.
1950년에 대대적인 보수 작업을 했으나 가우디가 건물에 부여한 특성은 그대로 보존했다. 1969년에 스페인의 역사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당시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가 내부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130년 전 건물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잘 지어지고 효율적으로 꾸며진 집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 보았던 가우디의 여러 작품들과 비교되는 작품이다. 가우디를 자세히 알고 있지 않지만 처음으로 건축도 예술이고 그가 천재라고 생각했다.
곳곳에 조각과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데 가우디의 천재성과 함께 내 마음에 담은 그림과 조각이 있다.
홀리오 로페스 에르난데스의 은퇴한 여성이란 조각을 보며 한참을 머물렸다. 낡은 지갑에서 동전을 세고 있다.
'은퇴한 여인들의 모습이라니 내 모습이란 말인가!'
레온에서 중요한 건물은 가장 오래된 레알 바실리카 데 산 이시도로(Real Basilica de San Isidoro) 성당이다.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진귀한 유물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다는데 입장료도 없고 여느 성당처럼 개방되어 편하게 기도할 수 있어 좋았다.
' 성당이 마음을 연다!'
오늘은 특별한 날인지 가장 오래된 교회 앞 광장에 민속 축제가 열려 볼거리, 먹을거리가 풍성한 날이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전통 옷을 입고 자신이 열심히 만든 물건을 팔고 사람들은 즐거워한다.
'어디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즐거움이고 웃음이 꽃이다.'
라면을 사기 위해 아시안 마켓을 가며 엄청난 규모의 성벽과 성문을 통과하였다. 레온이 오래된 도시이고 과거 전쟁이 많았던 곳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레온의 2박 3일은 밋밋한 대평원 걷기에 지루했던 순례자들에게 파라다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