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온에서 산 마르틴 델 카미노까지(25.2km)
레온은 지금까지 순례길에 들렸던 곳들과 참 다른 곳이다. 제일 큰 도시이기도 했지만 마침 주말 열리는 축제 참여 경험과 역사 때문이다.
금요일 오후부터 민속 옷을 입고 신나게 성문을 들어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 시내는 붐볐다. 레온 시민들과 순례자들은 새벽 3시 넘어까지 시내를 대낮처럼 밝히며 축제를 즐겼다.
지금까지 머문 숙소의 순례자들은 밤 8시면 불을 끄고 자는 분위기였다. 어제는 밤 12시가 되어도 현관이 분주했다. 새벽 3시 숙소 밖 광장에서 들리는 소리는 마치 광화문 광장 집회 소리와 같이 윙윙거렸고 불야성이었다.
새벽에 잠이 들어 아침 8시 40분에 숙소를 나섰다. 레온의 토요일 아침은 늦은 출발에 발길을 서두르는 순례자들과 광란의 축제 흔적을 지우는 청소원들뿐 스페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어제 그렇게 사람이 많았던 카사 데 보티 네스 건물 앞도 부지런한 비둘기와 의자에 혼자 앉아있는 천재 가우디 동상뿐이었다.
산 마르코스 광장의 화려한 국영 호텔 건물을 지나며 화려한 건물의 섬세한 조각들을 다시 한번 보았다. 저렇게 아름다운 곳이 수녀원에서 병원, 감옥, 호텔이 되기까지 사연이 궁금했다.
오래되고 큰 돌다리를 건너면 사연 많은 레온을 벗어나야 한다. 다리 위에서 뒤돌아 레온시가지를 한참 바라보았다. 짧지만 아름다운 2박 3일 레온의 시간들이 펼쳐졌다.
카스티야 왕국과 스페인 내전, 레온 사람들의 기질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젊은 헤밍웨이가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고 나서 쓴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영화를 거슬러 올라간다.
'가우디, 헤밍웨이, 잉그리드 버그만, 투쟁의 깃발, 수도원 호텔---'
레온에서 산 마르틴 델 카미노까지 약 25km로 약 7시간을 걸어야 한다. 늦은 출발에 마음이 바쁜데 큰길에 순례자는 거의 안 보이고 민속 옷을 입은 사람들과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많았다.
시 외곽 언덕 위 커다란 공터로 사람들이 향하는 것이 어제는 축제 전야제이고 오늘은 이곳에서 축제가 있는 것 같았다.
길가에 노점상들이 즐비하여 우리나라 오일장처럼 큰 시장이 열리는 것 같았다. 파는 물건들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것들이 참 많다.
짝퉁 옷, 옛날 과자, 마늘, 골동품 등--
많은 인파 속에서 발걸음을 더욱 서둘렀다. 뒤에서 누군가 가방을 툭툭 건들리며 말을 건넨다. 스페인 말을 못 한다고 하자 영어로 천천히
"한 시간 반 정도만 기다리면 이곳에 일 년에 한 번 있는 광장한 퍼레이드가 있어요. 멋진 축제를 즐기고 가도 순례길에 늦지 않아요. 축제 구경을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인상이 좋은 아주머니의 눈을 보며 선함과 감사함을 느꼈다. 일부로 지나는 외국인에게 친절하게 말해주기 쉽지 않았을 텐데.
'나는 저렇게 선함과 친절함을 갖춘 사람일까?'
친구와 나는 길가에 자리를 깔고 앉아 퍼레이드를 기다렸다. 경찰과 공무원들이 큰 도로를 통제하고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모였다. 한적한 스페인인 줄 알았는데 어젯밤과 오늘 보니 전혀 아니었다.
마을마다 옷을 맞추어 입고 깃발을 들고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고 춤을 추고 구호를 외쳤다. 모두들 환한 미소로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다. 구경하는 사람들도 행진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듯 손을 흔들었다.
여러 가지 대형 깃발을 높이 들고 행진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어서 여럿이 힘을 합해 더 높은 깃발 경쟁을 했다.
스페인에서는 축제 때 흥분하여 달려드는 소를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 영웅이 되듯, 오늘은 무거운 깃발을 혼자 들고 묘기를 보여주는 사람이 주인공이 된 듯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그리고 행사 시작을 개와 함께 하고 남녀노소 플라멩코 춤을 추는 집시여인처럼 캐스터네츠를 신나게 연주하는 주민들이 많았다. 구경하는 축제가 아니라 레온 지방 여러 마을 주민 모두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어울리는 축제이다.
아침 늦은 출발, 몇 시간 축제 구경, 오후 비가 온다는 소식에 25km 내내 큰 도로와 나란히 걷는 지루한 길이 힘들었다. 아무리 앞뒤를 살펴보아도 순례자들이 안 보여 꼴찌인가 보다 걱정했다.
이렇게 걷다가는 비도 홀딱 맞고 3시가 넘어 알베르게 도착하여 2층 침대를 배정받을게 분명하다며 낙담하였다
'그러면 어때? 숙소 예약도 했는데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하면 되지?
도로와 나란히 한참 걷다 비야당고스 델 파라모를 지난다.
자동차길 건너 순례자 조각과 성당의 첨탑 위에 황새들이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아 기르는 모습이 보인다.
길가에 카페가 없어 3시간을 쉬지 못한 우리는 길을 건너 조각상 앞에서 쉬기로 했다.
레온 시내 입구 관광 안내소의 첨탑에도 새들이 멋지게 둥지를 만들었더니 여기도 같았다. 지나가는 순례자들이 일부러 길을 건너 사진을 찍는다.
'새들도 믿음이 있어 성당에만 둥지를 만드나?'
예보처럼 가는 비에 바람은 불고 친구는 열감기에 힘들어한다.
'아, 어제 레온이 좋아서 오늘은 이런 거야. 그러면 내일은 다시 좋아질 거야!'
다행히 마을 입구 오늘의 알베르게가 깔끔한 모습으로 지친 순례자를 다정하게 맞아준다. 며칠 동안 마주쳤던 한국인들을 또다시 만났다. 반가움이 즐거움이 되고 이런 시간들이 감사하다.
역시 예상대로 늦게 도착했으니 2층 침대이다. 기침을 심하게 하는 친구를 보고 1층 침대에 누워있던 중년 여인이 침대를 바꿔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약까지 챙겨준다. 우리 방에 8명이 있는데 한국인이 4명이다. 먼저 온 한국인들보다 행동이 더 빠른 미국 여성 착한 산드라이다.
오늘의 선물
산티아고 293km 표지석과
선한 여인 두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