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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소풍 이정희 Jul 14. 2024

여름 12, 싱가포르, 주롱 버드파크

세계 최대 새 공원인데!

휴 休


                           서 정 춘


가을걷이하다 말고 앉아 쉬는데

늦잠자리 한 마리가 인정人情처럼

어깨 위로 날아와 앉았습니다

꼼짝 말고 더 앉아 쉬어보잔 듯

 

 시를 읽으며  ‘늦잠자리 한 마리가 어깨 위로 날아와 앉았다 ’에 오래전 방문했던 세계 최대 새 공원 싱가포르 주롱 버드파크(주룽 새 공원) 생각났다. (지금은  버드 파라다이스로 재개장)


 그 해 8월 싱가포르의 여름은 정말 뜨거웠다. 에어컨이 강력한 건물이나 자동차의 문을 나설 때면 후끈거림에 놀라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선택을 고민한다.


 '다시 되돌아 조금 전 있던 시원한 곳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각오하고 저 화끈거리는 태양의 슬하에 놓일 것인지!'


  정오 무렵 싱가포르의 상징인 머라이언 파크에 갔다. 너무 더운 날씨에 지친 사람들 사이에서 숨이 멈출 뻔하였다.

 머리는 사자이고 몸이 물고기인 머라이언 조각상 앞에서 긴 줄을 기다려 사진 찍는 것도 포기했다. 


 작은 도시국가라 3박 4일 일정이면 될 줄 알았는데 뜨거운 기온으로 낮 일정을 조정해야 했다. 이제 낮시간에는 쇼핑센터에 가거나 낮잠, 호텔 수영장에 있기로 했다.


 '아, 이 도시는 태양이 몸을 풀기 전이나 꼬리를 보일즈음 움직여야 하는 곳이다.'


 뜨거운 열기에 하루에 한두 번 스콜이라는 소나기가 잠깐 흠뻑 내려 주어 그나마 살만 했다. 어제는 처음으로 밤에도 비가 낮처럼 쏟아져 내렸다.

 소나기 덕분에 열기로 들끓던 뜨거운 싱가포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증막 같았던 도시의 아침은 차분하고 나무와 꽃들은 아침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공원 안내도

 사람들이 서서히 이동을 시작하는 이른 시간에 주롱 버드파크 정문 앞에서 오픈을 기다렸다.

 세계 최대 규모에 자연친화적인 주롱 버드파크에는 약 6,000마리 이상의 다양한 새가 살고 있다고 한다.  


 입구 옆에 있는 안내판을 얼른 확인하고 곧바로 가든 카페로 향했다. 

 넓은 곳이라 구석구석 자세히 살펴보고, 공연도 관람해야 하지만, 제일 큰 목적은 야외 테라스에서 새들과 함께 하는 간단한 아침식사였다.

 가든카페입구에 영업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들 우리처럼 어느 자리에 새들이 많이 모일까 둘러보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었던 열대 새들이 사람들에게 어떤 광경을 연출할까?

 '나에게 다가오면 어쩌지! 무섭지는 않을까?'


  여기저기에서 조롱조롱 들리는 새들 소리가 어찌나 맑은지 음악을 듣는 것 같았다. 내가 알던  새소리와는 달랐다. 굵고 가늘게, 길고 짧은 다양한 소리들이 오케스트라 화음처럼 어울렸다. 열대 나무들도 신이 나는지 초록의 선선한 바람을 몰고 왔다.

 

 크고 작은 열대 새들은 이곳의 오랜 주인처럼 나무와 땅과 식당의 테이블 사이를 묘기 부리듯 날아다녔다.

 아침 인사를 하며 주문을 받는 종업원들처럼. 아니 주인이 손님을 맞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천장에 매달린 조명과 사람들의 머리와 어깨, 손에 앉았다가 식탁에 날개를 접었.  

  식사 내내 그런 새들을 보느라 식사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모두들 새가 가까이 오면 먹이를 주고 사진을 찍으며 주롱 버드파크의 경이로운 아침 여유를 즐겼다.


 새가 냄새도 나고 무서울 것 같아 근처에 안 오기를 바랐다. 어느 사이 나의 어깨에도 앉았다. 다행히 부리가 작고 귀엽고 예쁜 새이다. 놀라 움찍거리며 움직이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어깨 양쪽에 두 마리가 앉자 옆에서 식사하던 사람들이 부러운 듯 웃으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어릴 적 큰 개에게 놀라 동물을 가까이하지 않았는데 난생처음 동물이 내 몸에 붙어 있는 것이다. 놀란 마음을 내려놓으니 좋은 친구가 나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지금 나와 이렇게 만난 기분이 어때?'

 '꼼짝 말고 웃으며 이 순간을 즐겨봐!'


 말하는 것처럼 편안해졌다. 내 몸에 오래 머물러있기를 바라며 천천히 샌드위치를 먹고 커피를 마셨다. 새들도 의리 있게 오랫동안 꼼짝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이내 머리 위에 위로의 바람과 햇살을 얹어 주었다. 무거웠던 생각이 가벼워졌다. 우연히 찾아온 행운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 생각지도 못한 이 광경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새들이 서울 생각을 가져가버려 이번 여행이 즐겁고 행복할 것 같았다. 이제 이곳의 새들은 나의 친구이다. 뭐든 좋아 보이고 대단해 보였다.


  다채로운 색깔 작은 새가 날렵하게 여유를 부리며 걷고, 사람 곁에 머물다 이리저리 날아다는 것이 자연스러움 그 자체였다. 새들은 나와 학교의 아이들이 미소를 머금고 서로의 곁을 맴돌듯 그렇게.


 카페를 벗어나자 하늘을 찌를 듯한 열대나무와 축축한 흙, 후끈한 바람이 거대한 보호망 속 새들을 감싼다. 나도 저 안에 갇힐 것 같았다.

 새들은 나는 것을 잊은 듯 날개를 접고 쭈그리거나 멈추어 있었다.  흐릿한 뭉게구름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사람들이 큰소리를 내거나 먹이를 내밀면 피하거나 쪼르르 달려와 철망 사이로 주둥이를 내밀었다.

 

 그런 새들이 신기하다며 사람들이 먹던 것을 던지고 즐거워했다. 덩치가 큰 새들이 그런 사람들을 심드렁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걸 먹으라고 주는 거야? 새머리만도 못 한 것들!"  

 작은 인공연못에서 이곳의 자랑인 음악에 맞추어 춤추는 핑크색 플라밍고들을 한참 보았다.


 남미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호수에 사는 붉은 플라밍고들이 생각났다. 플라밍고는 처음 태어날 때는 몸이  붉지 않다고 한다.

 붉은먹이의 영향으로 자라면서 몸이 점점 붉어진다고 한다. 몸이 더 진한색이 되는 것은 원숙해지거나 늙어가는 것이란다. 그때


  '사람이나 플라밍고나 연식이 지나면 몸이 변하는 것이 같구나!'


이곳 플라밍고들도 그런 것인지 궁금해졌다.

멀리서 찍은 우유니 사막 플라밍고들

 내가 갔던 12월, 볼리비아 콜로라다 국립공원 호수. 신비한 진분홍빛 그라데이션 색의 플라밍고들은 번식을 위해 잔뜩 모여 사람들이 다가가도 꿈쩍하지 않았다.


 고개를 물속에 박고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사람들의 호들갑 따위에는 반응하지 않고 넉넉한 자의 도도함으로.


 신기한 듯 몰려갔던 사람들은 우리 키보다 더 크고 많은 플라밍고들의 무시가  놀랍고 무서웠다. 그들의 당당하고 우아한 모습에 되려 뒷걸음 하며 호수 밖으로 돌아와야 했다.   


 플라밍고들은 람들이 물러서고 한참 후에 충분히 먹이를 먹었는지  동시에 떼창을 하며 비행을 시작했다. 제 몸처럼  날개를 힘차게 펼치며 보란 듯이 줄지어 날았다. 한 번의 돌아봄도 없이 사람들이 찾아온 곳을 이제 미련 없이 떠나는 것 같았다.


 멀리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많은 플라밍고를 쫒아보내고 나니 심심해졌다. 이제 그 아름다운 호수가 의미 없다는 듯 다른 곳을 찾아 사라졌다.



 주룽 버드파크 연못의 플라밍고가 음악에 맞추어 길들여진 것인지, 플라밍고의 움직임에 맞추어 제작된 음악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어울린다고 생각해서인지 보기 드문 플라밍고 공연이 펼쳐졌다.


 훈련된 플라밍고들은 유치원 아이들 소풍 가듯 줄을 맞추어 이리저리 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했. 조련사가 가리키는 먹이가 있는 곳을 향해 경쟁적으로 빨리 달렸다.

 그리고 맛있는 먹이보상에 함성 같은 절규를 했다.

 사람들은 그런 모습이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박수를 치고 환호하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저 플라밍고들은 하늘을 날 수 있을까?'

 '하루 내내 새들을 보며 불편한 마음은 무슨 이유일까?"

 '동물을 생명체로 존중하고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이려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실제 생태와 동떨어진 인위적 환경에 놓여있는 동물들이 세계 최대새 공원이라는 볼거리전락된 것 같았다.  그리고 자연친화적이라는 깔끔한 이름으로 미화것 같아 생태 환경 보호에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멸종위기 동물들을 보호하고 동물들이 스스로 행동할 수 있도록 서식환경과 최대한 비슷하게 조성했다는 런던 동물원이 생각났다. 관람객들이 동물원 내부를 탐험하며 어딘가에 있을 동물을 찾아봐야 하는 시스템으로 운영 중이라는데 직접 보고 싶어졌다.


 같은 8월, 아프리카 케냐 세렝게티 국립공원 동물들이 드넓은 평원에서 먹이를 찾아 이동하던 모습이 겹쳐졌다.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람보다 더 질서 있게 그들 방식으로 줄을 맞추어 걸으며 나아가고 있었다. 


덩치가 큰 것은 기다리고 작은 것들은 뛰며 더불어 함께.

즐겁고 자유롭게 먹이가 있는 곳을 향하여.


뒤로 들리는 새들의 소리가 아우성 같아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먹이에 길들여진 새들이 밥 달라고 지르는 소리가 아닐 거라고 믿고 싶어 졌다.


 '아직도 새들과 플라밍고들의 울음 소리는 울림으로 들린다'

세계최대 조류공원
싱가포르 주롱 버드파크는
2021년 잠시 문을 닫았다가
2023년 2배 더 큰 버드파라다이스로 재개장되어
지금도 세계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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