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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소풍 이정희 Sep 02. 2024

인생길 2구간 은퇴, 3구간 시작하며

아쉽고 설레는 시간

       

 <마지막 수업>

  1983년 8월 29일에 발령을 받고 41년 동안 중단 없이 해왔던 교실 수업을 24년 8월 23일 금요일 마지막으로 했다.(아, 2019년 3월-8월은 학습 연구년 교사로 파견 근무하다 9월 학교로 복귀함)

      

 6학년 제자들은 조용히 나와의 추억을 그림으로 그리고 편지를 쓰고 노래를 연습하여 동영상으로 만들었다.

 수업을 조금 일찍 끝내달라며 부탁한 후 교실 밖에서 기다려달라고 하더니 깜짝 이벤트를 열어 주었다.

 '선생님을 기억합니다'라는 노래를 부르며 진심 어린 마음을 보여주었다.

모두 나를 안아주며 인사를 했다.  물이 나왔다.

 

  잠시 후 교감선생님과 교무부장님, 실무사님들이 케이크를 들고 과학실로 들어왔다. 퇴임축하 노래를 부르고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나의 41년 마지막 수업은 아름답게 아쉽지 않게 끝났다.



 

 < 정년퇴임>


2024년 8월 28일 학교 선생님들과 가족 친지들의 축하 속에 정해진대로 살았던 인생길 2구간이 끝났다.        

                                                              

누구에게나 꿈이 있다

나에게도 꿈이 있다


길들여진 익숙한 프레임  

꿈과 열정 없이 무미건조한 삶


끝이 보이는 길

생각이 많은 하얀 밤


꿈은 더욱 선명해지고

도전의 용기는 두 손을 꽉 쥔다


현실을 아우르며

행복으로 끌어당기는

꿈이라는 부적


고비마다 힘이 되어

잊힌 나를 찾아주었던

길 위의 삶의 지혜들


배낭무게만큼의 삶을 둘러메고

멀고 긴 길을 나선다

이제.


 은퇴 후 인생 3구간이라는 새 출발을 해야 한다. 그래서 다사다난했던 인생 2구간의 정리와 불확실한 3구간 출발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오래 걸으며 하고 싶었다.      

 나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의 설렘은 아주 오래전 어릴 적부터 시작되었다. 힘들 때마다 나를 다독이던 꿈이었다.     


 '내가 정년퇴임 완주를  해내면, 건강하면, 그러면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는 62세인 나에게 남은 체력과 언어, 용기와 두려움 등 여러 가지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이다.


 내가  도전하려는 길은 가장 긴 프랑스 길이다.

 프랑스의 생장 피에드 포르에서 시작하여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 스텔라 성당까지 약 800km에 이르는 거리를 혼자 배낭을 메고 걷는  것이다.


 ' 이제 나는 매어있는 곳이 없는 은퇴자이다. 쉬며 걸은 후 아름다운 도시 파리에서 일주일정도 머물다 오고 싶다.'

     

 “세계에 볼 것이 얼마나 많은데 거기까지 가서 50일이 넘는 기간 동안 걷기만 하냐? 돈 주고 고생을 사서 하네? 나 같으면---”     


“제정신이니? 천주교 신자도 아니면서 왜 매일 새벽에 일어나 10~40km를  3만~6만 걸음을 걸어 발가락에 물집이 생기는 육체적인 고통을 자처하느냐”     


 

"부엔까미노"


 "좋은 길 되세요? 처음 보아도 서로 웃으며 부엔 카미노를 나누면 힘들었던 순간들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그 후론 현실이 힘들 때마다 산티아고를 찾았어요.”  

   

 "모두들 말려도 집 떠나 말도 안 통하는 그 먼 곳에서 무거운 배낭 메고 혼자 800km도 걸어 완주했는데 못할 것이 뭐 있어!"


 지금처럼 새벽 5시 조용히 일어나 배낭을 메고 어두운 거리를 핸드폰 불빛으로 걸을 것이다.  저 멀리 솟아오르는 붉은 여명을 받으며 새로운 길을 향할 것이다.


 점점 체력이 떨어지겠지만 더 당당하게 다가설 것이다. 1시간 걸으면 멈추어 5분 잠시 쉬며 물을 달게 마실 것이다. 숨을 가라앉히고 걸어온 길을 되돌아볼 것이다.

 다시 1시간 걸으면 가방을 내려놓고 걸터앉아 신발과 양말을 벗어 말린다. 천천히 쉬며 애쓴 나를 다독일 것이다. 그렇게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800km를 묵묵히 걷고 걸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한국에서 있었던 일들과 사람들은 가능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다시 못 올 스페인의 이 힘든 순례길을 걷는 이유만 생각할 것이다.

    

 지칠 때쯤 마을을 만나면  광장을 찾아 걸음을 서두를 것이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12시 전에 공립 알베르게를 찾아 구글 앱을 켜고 마을의 골목을 찾아 나설 것이다.

     

  숙소 출입문 앞에 나 대신 가방을 줄 세워놓고 근처 카페를 오고 가며 주변의 풍광과 사람들을 살펴볼 것이다. 카페에 앉아 점심을 먹으며 몇 시간 걸어 힘든 나를 칭찬하고 바로 세울 것이다.    

 

 4시 씨에스타 시간이 지나 알베르게 문이 열리면 체크인을 하고 조용한 구석 자리 1층 침대를 정하고 땀에 찌든 옷을 빨래할 것이다.  내일 입을 옷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빨랫줄에 옷핀을 꽂을 것이다.


 원피스에 슬리퍼를 신고 장바구니를 들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살펴보았던 가게에서 저녁거리와 다음 날 먹을거리를 사들고 올 것이다. 그 가게에 한국의 라면이나 햇반을 찾아내는 행운이 있기를 기대하며.     


 저녁 식사 후 영어가 잘 안 되니 혼자 조용한 의자나 침대에 앉아 있겠지.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블로그에 기록하고 그날의 핸드폰 사진들을 검색하면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떠오를 것이다.  


 '소중한 사람들!'  

어둠 속에 보이지 않았던

하루 내 걸었던 힘든 길

이제는 돌아가지 않을 길

      

돌릴 수 없는 시간들

이제 남은 인생길  

   

먼 길 배낭에 고 가기에는

새로운 인생에 갖고 가기에는     

넘쳐서 버려야 할 것들

점점 비워지는 것들

    

그리고

남겨야 하는 소중한 것들에 대해ㅡㅡㅡ'



<산티아고 순례길 준비>


 3월부터 준비하던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 준비가 7월 1일 교통사고가 난 후 한 달 반 동안 멈추었다.

자동차는 폐차되었지만 다행히 부상은 크지 않았다. 병원 입원을 하고 지금까지 통원치료를 받았다.

  퇴원 후 다시 인터넷을 검색하고 계획을 점검하며 내 안의 불안과 용기가 싸우고 있다.


 '계획대로 이번에 못 가면 다시는 못 갈 것 같아. 그러면 또 후회할 거야---'


 '남미도, 아프리카도, 중미도 못 갈 이유가 더 많았지만 결국 잘 갔다 왔잖아!'


 지난주부터 새벽 5시에 일어나 9월 2일 출발하는 산티아고 순례길 체력준비로 걷기를 하며 적응 준비를 하고 있다.

 나이가 있어서인지 체력 회복이 느리고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평지가 아닌 산길을 걷는 것이 버거울 때가 많이 있다.


 '교통사고 후 스페인 걷기 계획은 내년으로 연기할 걸 그랬나?'


 '혼자 가는 걸 포기하고 얼른 여행사에 전화하여 단체에 합류할까? 그러면 여러 가지가 편할 텐데--- '


 '살아온 날들처럼'


 '그래, 해보는 거야! 지금까지처럼'     

 하루는 용기가 이겨 신이 나고 흥분이 되어 열정적인 내가 된다.

 그런데 다음 날은


 '안돼,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떠려고? 주변에서---'


 불안과 걱정이 이겨 시무룩해지고 낙담하여 시들한 내가 된다.     

     

 물론 계획대로 모두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계획마저 제대로 세우지 않으면 후회할 일이 더 많아지는 것을 오랜 여행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인생에 공짜는 없다. 그나마 뿌린 대로 거둘 수 있다면 참 운이 좋은 거다!'     


 지난 삶을 곱씹으며 생각하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알게 되고 인생을 대하는 양식이 갈수록 많이 달라졌음을 깨닫게 된다. 다음 도전에서 얻게 될 것들과 달라져 있을 나의 모습을 예상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새로운 여행 도전을 이렇게 준비하면서 애타게 기다리는 것이 절반의 기쁨이고 행복이다.

 그다음 반은 낯선 곳에서의 풋풋함과 경이로움, 희열의 경험이다.

그리고 가장 큰 선물은 추억을 기록하며 얻는 성찰과 깨달음이다.'


 김영하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나를 잊고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이는 경이를 느꼈다면 여행의 중독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는 인생 1, 2구간 지구의 삶에 중독된 듯 열심히 살았고 완주했다. 이제 인생 3구간은 소풍처럼 즐기고 싶다!'



 
<인생 3구간 시작>


 이제 정년퇴직 후 인생 3구간 시작이다. 매일 출근하는 시간에 배낭을 메고 산길을 걷고 있다.

 드디어 내일 9월 2일 오후 9시 40분 핀항공으로 서울을 출발한다. 항공료를 아끼기 위해 직항이 아닌 14시간 비행 후 헬싱키에 3시간 경유한 후 3시간 비행 후 프랑스 파리 도착이다.

 17시간의 비행이 지루한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일지 재미있어진다. 파리에 하루 머물며 밤거리를 걷고 다음 날 테제베 열차를 탄다. 생장에서 내려 이틀 준비를 한 후 산티아고 순례길 시작인 피레네 산을 향해 출발할 것이다.

  

 보통 프랑스 길 800km 33구간을 30 - 33일 걷는다고 한다. 나는 도시를 만나면 연박을 하며 쉬엄쉬엄 하루 약 15-20km씩  50일 정도 걸을 것이다.  

 이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는 못 올 것처럼 생각하며 보고, 듣고 , 경험하고 돌아 것이다.  


 제발 건강하고 평안하게 완주할 수 있기를 바라고 바란다.

퇴직으로 인한 연일 모임과
먼 길 떠나기 준비로
매주 일요일에 올리던 글을 두 번이나 쉬었습니다.

이제 두 달 동안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차분히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에
집중하려 합니다.
 
그동안 봄 길과 여름 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 더 색다른 저만의 가을길 이야기로 다시 글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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