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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소풍 이정희 Sep 29. 2024

가을 2, 세월아 네월아 산티아고 길 2.​

드디어 파리 입성

 공간을 이동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하루 밤사이 지구 반바퀴를 돈디는 것은.


 14시간 비행은 새벽 5시 20분 핀란드 헬싱키 공항에서 끝났다. 뿌연 어둠 속에 비가 살살 내리고 있었다. 처음 만난 북유럽의 도시 헬싱키는 무거운 무채색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헬싱키 공항 파리행 2시간 환승도 만만하지 않았다. 단순 환승 승객인데도 입국 검사를 어찌나 철저하게 하는지 긴 줄이 뱀꼬리이다.


 모두들 엑스레이에 걸려 가방을 펼쳐 액체들을 보여주고 비닐봉지에 다시 넣어야 했다. 젊은 직원들이 부주의한 여행객들 때문에 힘들 것 같은데 몸에 배어있는 듯 친절하다. 원칙을 지키며 미소를 보여주는 핀란드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받게 된다.


 오래전 남미에 가기 위해 미국 텍사스에서 비행기를 환승하던 기억이 났다. 그 당시 미국인과 달리 외국인들은 신발을 벗고 벨트를 빼고 손을 올리고 한참을 걸어 검색대를 통과하고 몸수색을 받았다.


 모두들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미국이 유색인종을 차별한다며 수군거렸다.

일행들은 아주 뚱뚱하고 거만했던 세관원들에게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뒤로 한 마디씩 했었다.


 헬싱키 공항의 사람들은 오래된 시설과는 달리 밝은 모습이다. 세계적인 규모라는 인천공항의 무표정과는 비교되었다.


다만 게이트가 길고 골목 같아 환승객은 당황하며 서둘러야 했다.


 파리 가는 비행기에는 시끄러운 북유럽 단체 여행객들은 빠지고 핀란드 노인들이 많았다. 이곳 노인들도 비행기 안에서 큰소리로 떠들었다. 모스크바로 소풍 가는 러시아 젊은이들처럼. 서양사람들도 우리네와 다를 게 없다.


 승무원들도 나이가 꽤 많아 보이는데 씩씩하다. 커피가 서비스인 줄 달라고 했더니 한 잔에 3유로이다. 유료라는 엉성한 영어를 못 알아들은 탓에 카드 결제를 하고 나니 밀려오는 잠이 확 달아났다.


 파리 드골 공항도 날씨가 번덕스럽다. 비행기 안에서 맑은 하늘이 좋다고 사진을 찍었는데 활주로에는 가는 비가 내린다. 가을처럼 기온이 낮아 당황스러웠다.


'큰일이다. 서울 날씨보다 더우리라 생각했는데 옷이 걱정이네!'


 파리공항은 핀란드와 달리 입국 신고도 없이 무조건 통과이다.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여행객만큼 많고 삼엄하다.

 눈에 띄는 다양한 인종들만큼 공항도 복잡했다.

 시내 가는 PER - B 열차 타는 곳이 상당히 거리가 있는데 자세히 안내해 주니 파리가 좋은 인상으로 다가온다. 5분만 걸으면 기차 타는 곳이 있다는 그림 안내판에 힘들다는 생각보다 웃음이 나왔다.

 구글 앱이 유난히 고마운 날이다. 독일이나 요르단에서 렌터카 운전할 때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더 업그레이드가 되어 있어 지나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공항에서 지하철, 호텔까지 한국말로 안내해 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영어를 잘 못하는 호텔 직원도 번역기로 설득해 11시 조기 체크인에 성공했다.


 비행기에서 못 잔 잠을 자고 나서 내일 테제베 열차를 타야 하는 몽파르나스 역까지 걸어보았다.

 혼자 이 시간에 파리의 거리를 걷고 있다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꿈틀 살아있는 것 같아서,

바람처럼 자유스러워서 뭉클했다.

이런 시간이 꿈만 같다


 이곳까지 감히 도전하고 여러 문제를 겪으면서 실행해 낸 나를 듬어주었다. 산티아고 걷기는 다음이고 완주는 그다음 문제이다.


 호텔이 역에서 30분 거리여서 천천히 걸으며 볼 것이 많다. 모두 백 년이 지난듯한 건물마다 노천카페가 있다. 길거리를 향한 의자에 혼자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와 술을 즐기며 이야기하는 여유로운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인다.


 넘치는 다양한 인종들과 무단횡단하는 사람들, 낡은 지하철,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리는 복권가게, 지저분한 거리의 쓰레기와 노숙인들, 바쁜 걸음들---


'역시 제멋대로 여유 있는 프랑스이고 파리사람들이다.'


아! 오늘의 마지막 기쁨은 한국에서도 자주 먹지 않았던 뚝배기 김치찌개를 파리의 한식당 '진'에서 18유로에 살맛 나게 먹었다는 것이다.


식당에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한국인은 나뿐이었다. 옆 자리 노부부가 군만두 4개를 15유로에 주문하여 나이프로 잘라 품위 있게 간장에 찍어 먹으며 맛있다는 표정을 짓는다. 어디서나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일이다.


'먹는 것에 돈과 수고를 아끼지 않기로 결심하며 다시 힘차게~~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를 끝내고 다시 돌아 올 파리의 여정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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