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시간」
몇 년 전,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들과 그 보호자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난치성 질환으로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어린 자식을 돌보던 엄마가 인터뷰 중에 했던 말이 가끔씩 생각난다.
"우리에겐 사랑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의 온기를 더는 느낄 수 없고, 지긋이 들여다볼 그 사람의 눈동자도 없으며, 아무리 애타게 불러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는 '죽음'이라는 완벽한 이별 앞에서 눈물을 꾹꾹 눌러 담으며 헤어짐을 준비하는 아이와 엄마.나에게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닥칠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 주책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나의 가족, 남편, 아이들, 그리고 부모님, 그중에서도 우리 엄마.
'사랑할 시간'을 떠 올릴 때마다 나는 늙고 약해진 엄마를 생각한다. 우리 엄마는 50년생, 올해로 만 73세이시다. 엄마의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있고, 엄마와 나 사이에도 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함께 살아온 세월보다는 남은 시간이 훨씬 짧다는 것을 엄마도, 나도 알고 있다. 그러니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엄마를 더 행복하게 해드려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엄마를 찾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엄마가 불편하다.
엄마는 원래 어떤 사람이었을까? 내가 엄마라는 사람을 알기 전에 우리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문득 궁금해지면, 이마저도 슬퍼서 눈물이 난다. 지금의 우리 엄마가 너무 안타깝고 불쌍해서. 너무 외로운 사람이라서.
내가 아는 우리 엄마는 부정적인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다. 함께 있으면 항상 누군가에 대한 불평불만을 쏟아낸다. 나와 함께 있을 때는 언니의 욕을 하고, 언니와 함께 있을 땐 나의 욕을 하며, 아빠와 함께 있을 때는 자식들의 욕을 한다. 내가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칭찬하면 그 사람의 나쁜 점을 지적하고, 다른 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에 응당한 보답을 받지 못하면 불같이 화를 낸다. 그러니 엄마를 만나면 재미있고 즐거운 것이 아니라 머리가 아프고 기가 빨려 나의 기분까지 엉망이 되고 만다.
내가 어릴 때도 엄마는 그랬다. 나를 사랑했으나, 좋은 엄마는 아니었다. 자기감정이 요동칠 때마다 나와 형제들에게 그 감정을 쏟아 냈고, 화가 나면 인정사정 없이 우리를 때렸다. 특히 4남매(딸딸 아들딸)의 둘째 딸이었던 나는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었다. 온갖 집안일을 다 시키는 것도 억울한데 엄마의 욕받이로 사는 것은 더 괴로웠다.
더욱 서글프고 안타까운 건, 내가 거칠고 억센 아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작고 여린 것을 사랑하며, 나에게 주어진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이, 부모에게 생때라고는 부려 본 적도 없는 그런 아이였다. 내가 별로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벼락이 떨어진 듯 화를 내는 엄마를 대할 때마다 내 마음속에는 억울하고 분한 마음과 엄마가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늘 교차했다. 그렇게도 애지중지했던 필통을 칼로 난도질했던 날이 떠오른다. 엄마에게서 나에게로 쏟아져 내린 화를 주체하지 못해 내 손으로 나의 소중한 물건을 마구 파괴하고, 찢어진 필통을 어루만지며 펑펑 울었던 그날. 그때부터 나는 어린이가 아니었다.
사춘기가 시작되고 엄마를 죽도록 미워했다. 엄마가 내 인생에서 사려져 주기를 바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엄마가 죽어버리기를 바랐다. 이런 감정들도 분명 그 이유가 있었을 텐데 그땐 그 걸 몰랐다. 청소년기의 혼돈 속에, 나를 낳아주고 길러 준 엄마를 미워하는 내가 이상하고 못된 사람인 것 같아서 못 견디게 괴로웠다.
엄마에 대해서 쓰는데, 어른 시절 엄마에게서 따뜻함을 느꼈던 기억이, 엄마와 행복했던 순간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게 분명 나의 잘못은 아닌데, 나는 또 죄책감을 느끼고 엄마를 위한 변명을 시작한다.
엄마는 6.25 전쟁 통에 태어나 어린 시절도 불우했고, 결혼 후의 생활도 순탄치는 않았다. 우리 아버지는 형제도 많고 지지리도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었으며, 중풍에 걸린 시아버지와 엄마와 스무 살 이상 차이 나는 어린 시동생도 있었다. 시골에서 하나둘씩 올라와 더부살이하는 군식구들은 해가 바뀔 때마다 늘어났으며 2살 터울로 낳은 자식이 넷이나 있었다. 엄마의 고된 삶이 엄마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엄마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노라고 엄마를 대신해 자꾸만 변명을 해야 할 것 같다.
얼마 전,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라는 책을 읽는데 딱,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이 나왔다. 그 책에서는 엄마 같은 사람을 에너지 도둑이라고 칭했다. 부정적 에너지를 뿜으면서 다른 사람의 에너지를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과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무시하고, 과거의 일을 자꾸만 꺼내어 여러 사람 불편하게 한다. 언제나 자신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바꾸려는 노력도 전혀 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두려워하며, 늘 방어적인 태도로 누군가 자기를 대신해 주기만을 바란다.'
엄마가 더 나이 드시기 전에 엄마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막상 엄마를 만나면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는 바로 엄마가 나의 에너지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우리에게 자기는 못 배우고 무식해서 자식을 그렇게 밖에 키울 줄 몰랐다고 말한다. 자식이 다 커버린 지금도 엄마에게 깊이 뿌리를 내린 부정적 감정들은 엄마의 생각과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 오랜 세월 그렇게 살아온 엄마의 부정적 에너지를 긍정의 에너지로 바꾸는 것은 엄마 얼굴에 새겨진 굵은 주름들을 지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와의 이별이 두렵다. 엄마를 사랑해야 하는 시간을 이렇게 흘려보내고 엄마와 이별하게 된다면 나는 또 얼마나 슬프고 아플 것인가..
말 한마디에도 쉽게 마음이 상하는 우리 엄마. 그 생각을 헤아릴 수가 없고, 그 마음을 종잡을 수 없어 늘 어려운 사람. 가슴속에 화가 가득하지만 풀어내는 법을 모르는 사람..
그런 엄마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지금의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나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다. 지금은 내 어린 시절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을 덜어내는 것이 먼저인 것 같다. 아직도 내 안에 살고 있는 상처 받은 여린 소녀를 따뜻하게 안아 주고 싶다. 그 과정을 통해, 더 이상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불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