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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기 Oct 05. 2021

퇴사 후 도착한 곳은 사막

그런데 나침반을 잃어버렸는걸

마케터로 첫걸음을 내디딘 지난 6개월. 인턴십을 마친 8월 중순, 이 시간을 버텨낸 것에 스스로 자랑스러운 마음과 함께 내 마음이 말했다.


마케팅에 "마"자도 보기 싫어!

(응..?)




마음씨, 왜 그런 거죠?


처음 해본 마케팅 실무 업무가 너무 고되어서였을까? 트렌디함과 거리가 먼 내가 트렌드의 최전선에 뛰어들어 Gen Z들이 환호할 콘텐츠를 기획하기 위해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머리를 쥐어짜서였을까? 디자인과도 거리가 먼 내가 (..) 미적 감각을 살린 콘텐츠를 제작해야 해서 그랬을까? 내가 담당한 업무가 유독 프로젝트가 많아서 그랬던 걸까?


확실한 건 책임감이 강한 내가 열심히 맡은 일들을 했다는 것이고, 맡은 일들이 내게 쉽고 편한 일 대신 나를 단련시키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20대 초중반 인턴 동기들과 만나 컬처 쇼크(?)를 겪은 것도, 체험형 인턴으로 6개월 근무하는 것도 다 나에게 도전이었다.


칼퇴를 하기 위해 업무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노력했다. 업무에 온 초점을 맞춰 에너지를 쓰다 보니 평화 쪽 활동에는 에너지를 거의 쓸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열정을 조절했어도 좋았을 텐데. 퇴사를 하고 마음이 마케팅을 거부하기에 이르렀다니.


퇴사 날의 이야기도 언제 한번 적어보고 싶은데 그날은 평소처럼 바빴다. 왕언니(?) 인턴에게 주어진 마지막 업무로 새로운 인턴에게 온보딩 트레이닝을 진행했고, 6시까지 아이데이션 회의에 참여했으며, 마지막 엘리베이터 앞에서 눈물을 쏟으신 사수님이 마음에 걸려 다시 사무실에 들어와 결국 나도 울어버린 그런 날이었다. 그리고 마케팅과도 잠시 안녕을 고했다.



퇴사 후 도착한 곳은 사막


인생에 힘든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때가 있다고 하는데 나에게 이번 여름이 그런 시기였다. 퇴사 직전 갑작스레 이별까지 겪게 되어 마음이 쿵 하고 넘어져 중심을 잃었다. 이 때는 아무것도 나에게 남은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웹툰 <아홉수 우리들>을 몇 번이고 정주행 하며 주인공들과 함께 울었다. 나도 언젠가 괜찮아질 거라고 다독이며 힘든 마음을 독서로 풀었다. 2주 만에 12권을 읽었다.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누군가가 필요할  책을 읽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 2시에도 책은 내게 말을 걸어줄  있으니까. 지금 내가 이렇게 흔들리는  당연한 거라고, 네가 잘못한  아니라고 말해줄 사람이 필요해서 책을 내내 읽었다. 그렇게 책을 통해 사랑과 이별, 애도와 성장을 배웠다.


그렇게 충분히 마음이 말하는 대로 해주자 조금씩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갑자기 찾아온 상실들을 충분히 받아들이자 이제 본격 다음 여정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그럼 나 이제 무슨 일을 하고 싶은 거야?



나침반을 찾아 손을 뻗어보기로 했다


SNS에 인턴십을 무사히 마쳤다는 소식을 올렸을 때 세 곳에서 만난 각각의 직장동료들이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댓글을 달아주었다. 그 댓글들을 보면서 기분이 굉장히 묘했다.


취업 시장에서 내 커리어는 문제가 있어 보일 수 있다. 실제로 지난겨울, 한 스타트업과의 면접에서 내 경력을 보고 이렇게 일하면 안 된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나에게 각각의 직장들은 내 마음이 선택한 곳이었고, 나를 성장시켰고, 내 삶에 여러 가지 의미와 경험, 사람을 남겨주었다.


경력만 나열해서 봤을 때는 프로유목러로 끈기가 없어 보이고, 누더기 같아 보일지 몰라도 나에겐 치열한 고민이 담긴 소중한 커리어인 것이다. 다양한 길을 가서 만날 수 있었던 나의 직장동료들. 그들을 모두 만날 수 있어 기쁘다고 생각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벌지 않는 무직 이십 대 후반은 가족들에게도, 사회적으로도 인정받기 어렵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돈은 아니지만 나도 내 귀여운 통장 잔고가 조용히 줄어드는 걸 보는 게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내 마음을 따르는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퇴사 후에는 책과 함께 브런치 글들을 열심히 읽었다.

 

자신답게 살기 위해 고민하는 이야기, 마음을 따라 행동으로 옮긴 이야기, 실패담을 나누는 글을 일부러 찾아 읽었다. 우리 사회에선 유독 모두 똑같은 색깔과 모양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퇴사 후 내 모습에는 기준 미달이라는 딱지가 붙은 것 같았다. 하지만 브런치에는 다양한 색깔과 모양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나에게 숨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리고 내가 쓴 글에 꾸준히 라이킷 알림이 떴다. 누군가 내 이야기에 힘을 얻은 걸까?


그래서 이곳에 마케팅 이상의 더 넓은 나의 이야기를 담아보기로 했다. 이 이야기도 혼자라고 느끼고 있을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자유로의 여정


오늘이 대체공휴일 인지도 모르고 살고 있다가 오랜만에 대학교 때 친구들을 다 같이 만났다. 사회초년생일 때와 다르게 다들 점점 기반을 잡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그들이 선택한 삶도 멋지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 같은 삶만이 더 가치 있고 고귀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종종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 사회가 말하는 방향과 일치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 때도 있다. 왜냐면 나도 가족 모임에 맘 편히 가고 싶고, 나를 세련되게 잘 꾸미고 싶고, 가족들에게도 돈 펑펑 쓰면서 인정과 지지를 받고 싶으니까!


그렇지만 돌아오는 길에 모험가로 살아가길 선택한 내 삶도 썩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언제 이 백수생활이 끝날 지 모르지만 매일 충만하게 보내고 싶다고, 마음이 가는 공고가 있으면 지원해보고, 안 되면 다시 도전하고, 내 속도대로 그렇게 가보자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었다. 이러고 또 내일 눈 떠서 백수를 즐기지 못하고 한숨을 쉬며 두려워할 것 같다. 그런 모습의 나도 받아들여 보려고 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브런치에 더 써보고 싶다.


글을 쓰기 전 금쪽 상담소를 보다가 내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그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어 보라는 부분이 있었다. 스스로에게 말해주면서 문득 울컥했는데 이 말을 듣고 싶어서 그렇게 많은 글들을 헤매었나 싶다.

온기야, 잘하고 있어. 너를 찾는 여정을 포기하지 않아 줘서 고마워. 사회적 기준과 다른 너만의 길을 가는 네가 너무 자랑스러워. I'm so proud of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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