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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va Oct 06. 2023

결혼 38주년에는 무슨 말을 할까~~요~

38년이라는짬밥

“나랑 살아줘서 고마우이~”, “나 사람 만들어 줘서 고마우이~”

결혼 38주년 되는 날에 구바씨가 운전을 하면서 하는 말이다. ‘헐, 웬열~~’ 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재빨리 떠올랐는데 동시에 눈만 동그래지고 말이 안 나왔다. 그래도 예의상 반응은 보여야 하기에 30초쯤 지나, “알아줘서 고마우요~” 라고 했다.

 

모순 덩어리인 인간들이 38년 동안 그들의 관계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속하고 산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같은 종족이긴 하지만 성별이 다르고, 자라난 환경도 다르고 게다가 생각과 성격도 다른데 38년을 한 공간에서 함께 지냈다는 것은  매일매일이 장애물의 연속이었다는 것이 38년을 지내온 나의 핵심후기이다.(뭐 사실 연애 기간까지 합하면 40여 년이 돼 간다.) 무슨 마음으로 살았냐고 묻는다면… 음.. 딱히 정확한 대답이 안 나온다. 정이라는 단어는 웃기고, 사랑이란 단어는 간지럽기만 하다. 얻은 것은 자식 하나이고, 잃은 것은 내 개인의 38년일 것이다. 그러나! 가치는 있다. 38년의 인간관계는 적어도 남자라는 종 ()에 대해서 확실히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나 자신도 숙성되는 과정의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

결혼을 하면 직장을 다니던 여자는 99%가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시대에 결혼을 했으니 1980년대에 결혼이란 문화가 어떤 것인지 대충은 알 수 있으리라. 구바씨는 요즘 유행하는 MBTI 인간형 중에서 ISTP형이다.(참고로 나는 정 반대 성향인 ISFJ 형이다). 홀어머니, 장남, 대구 남자 그리고 B형이다. 더욱이 군인 집안 자식이다. 지금이라면 내가 헷가닥 하지 않고서야 절대 하지 않을 결혼 일 수도 있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결혼’의 ㄱ 자도 생각 안 해보고 그냥 인간관계를 맺은 일은 나로 하여금 제대로 숙성된 인간이 되기에는 필요 이상의, 살아야겠다는 내 삶의 대한 생존 본능 의식마저 갖게 만들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여동생에게는 별 관심이 없는 오빠가 하나 있었지만 남자들에 대해서는 수염을  매일 깎아야 되고 서서 소변을 보는 정도가 다른 것으로 생각하고 살아왔다. 즉 다시 좋게 말하면 여자 (종種)인 나라는 인간하고는 생긴 것만 다르지 모든 것이 똑같은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러니, 나, 이 멍청한 여자라는 종(種)이 느껴야 했던 삶의 괴리가 얼마나 컸을지는 상상을 초월한다.

 

남자라는 종()과 여자라는 종()이 근본부터가 다르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은 함께 살기 시작해서부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단 같은 언어를 쓰더라도 감정의 쓰임새는 전혀 다르게 작용했다. 

예를 들면,

 

노바: 정말 짜증 나네… 아래층에서 계속 벌레들이 나오네 ㅠㅠ, 나 벌레들 엄청 싫은데.. 오늘은

        안방에서도 나와서 엄청 놀랐네. 약을 뿌렸더니 머리만 아프고, 여름만 되면 벌레 때문에 

        왕짜증이야!!

구바: 알았엇! 내일 당장 집 내놓고, 이사 가자! 복덕방 전화햇!

노바: …… 걍, 벌레랑 살래 ㅠㅠ

 

노바: 내 친구 아무개 있지? 딸이 결혼하는데 신혼여행을 몰디브로 보내줄 예정인가 봐. 

       사돈댁에서는 여자 쪽에서 돈을 더 많이 내서 아들 기죽는 게 아닌가 한데. 그래서 어떻게 할지 

       고민이더라구~

구바: 그 결혼하지 마라고 햇! 신혼여행 문제로 벌써 사돈끼리 감정이 생기는 것은 앞으로도 

        시끄러울 거라는 거야. 그 결혼 안 하는 게 나앗!

노바  음메에에 에 …… ㅜㅜ

 

노바: 나 요즘 이상하네, 괜히 열이 나고, 열도 받고, 불안하고, 게다가 화도 나고.. 

        매사에 짜증이 나고 분하네 ㅠㅠ

구바: 뭐가 불만인데? 어떻게 하면 되는데? 이만하면 됐지, 뭐! 우리 같이 죽자! 이렇게 살면 뭐 하냐!

노바: 짜증 뚝!!ㅠㅠ

 

(이미지 출처 : tistory.com)


이런 구바씨와 40여 년 가까이 인관 관계를 유지하면서 남자가 어떤 인간인지 잘 꿰둟게 되었으니 나도 참,  많~~ 이 용 되었다.

- 남자들은 궁둥짝을 툭툭 두드리며 ‘잘한다~ 잘한다~’ 해주는 것이 ‘다다다다’ 잔소리하는 것보다는 나은 것을 알았고,

- 일단 하고자 하는 일은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보고 분간을 할 때까지 그냥 둬서 스스로 똥이던 된장이던 처리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 또한 나이를 불문하고  마치 사냥감 마냥 가지고 놀 장난감이 하나는 꼭 있어야 되며 (그것이 도박이나 바람이나 이런 것이 아니고 악기던 건강이던 긍정적인 장난감이면  좋고),

- 또한 어딜 가나 도토리 키재기를 먼저 하려고 든다는 것은 익히 잘 아는 사실이고, \

- 플랜 A, B, C의 순서는 잘 알고 지시하면서 그 플랜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두루 보는 것에는 젬병이고,

- 수컷 본능은 이미 태초 때부터 머릿속에 박혀있는 프로그램이고,

- GPS에도 없는 길은 잘 찾으면서 냉장고 안에 있는 치즈는 못 찾고.. 이건 구바씨만 그렇겠지? 아마...

 

위의 것들은 구바씨 개인의 성격은  고려를 하지 않고 남자라는 종()에 관한 전적으로 나의 일반적인 깨달음이다. 만약 구바씨 개인 성향으로 깨달은 것들까지 합하면…. 음… 그것들은  개인의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추가하지는 않겠다. 어쨌든 이러한 깨달음은 구바씨의 개인 성향까지 합세해 나를 도사 같은 인간으로 성숙시키는데 아주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이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I’m serious!!  한 번은 구바씨가 “내가 당신이 훨씬 큰(?) 사람이 되는데 영향을 미치기는 했어어~~ 그렇지?”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불편한 진실이다, 쩝;;

 

덕분에 훨씬 큰(?) 여자 종(種)이 된 나는 야생마 같은 남자 종() 구바씨를 얌전한 조랑말로 변화시킨 일에 스스로 기특해하고 있다.

- 마누라를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마누라 가는 곳은 어디든지 따라가 주신다. 미장원에도 따라가 주시니, 조랑말이 생긴 것이다.

- 부엌은 절대 안 들어가게 교육받은 구바씨가 요즘은 며느리 놀게 하고 설거지도 해주신다. 집안에서 설거지 마스터로 불린다.

- 자기 의견이 늘 먼저였던 카리스마를 접고 마지막 의견은 꼭 마누라에게 물어봐 주신다. 비록 자기의 의견으로 끝을 맺으려는 성향이 아직도 있지만.

- 게다가 마누라 하는 일은 무조건 찬성과 응원을 보내준다. 내 서방 대포 맞았나~ 할 정도다.

- 무엇보다도 예전에 자기가 고비 풀린 야생마였다는 것을 반성까지는 아니지만 불편하게나마 인정한다는 것이다.


세상을 부정 평가하는 구바씨는 짜증과 불만을 옆구리에 끼고 살았다. 모든 상황이 맘에 들지 않는 구바씨 얼굴이 등장하는 즉시  일단 주의 사람들은 모두 공손해지고, 구바씨가 인상을 쓰면 미국인들도 급 “Sir” 이라며 존칭을 쓴다. 사춘기 중딩이였던 구바씨가 요즘은 중딩을 졸업하고 사춘기 꼰대에서 근사한 조랑말로 변화하려고 매일매일 어려운 노력(?)까지 해주니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이미지 출처 : 연합뉴스)

 

대부분의 여자들이 모두 원하는 감정 교류라는 것(요즘은 경제력이라고도 하지만) 남자들과의 그 감정 교류는 유효기간이 짦아 한 3년 정도 하면 감정 교류할 사람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데에 전적으로 동의했었다. 즉 다시 말하면 결혼 제도의 유효기간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주장했었다. 그런데 별로 힘줄 주장을 아니다. 남자, 여자라는 의미가 희미해진 지금 이 시대에, 유효기간 따지면서 함께 살면 어떻고 안 살면 또 어떤가. 사랑이라는 단어는 쉽게 사그라져 없어졌지만, 아이를 만들고, 낳고, 기르고 그리고 함께 널뛰듯 뒤엉켰던 수많은 아수라장 같았던 감정들, 그 감정들의 유효기간은 그 기간이 긴 만큼 구바씨와 나의 영혼을 맛깔스럽게 숙성시켰다.   서로 뒤엉키고 할퀴고 깨져 나갔던 기간은  인간들 삶의 깊은 성찰을 얻은 도사(?)가 되는데 꼭 필요한 기간이다. 그렇지 않다면 두 인간들에게 얼마나 억울한 세월이었겠는가. 48년의 짬밥이 결코 만만한 게 아닌 것이다. 도사가 된 우리는 이제 저 너머의 다른 세계로 하산하는 날까지 서로를 보듬는 기간이 되도록 해야 하지 않겠나.

 

한결같은 남자, 한결같은 여자를 찾은 우리 인간들은 그런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에 품절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게다가 그런 완벽한 제품은 반품도 별로 없다.

그런데.... TV 에서 한결같은, 말 잘듣는 준마가 나오면 눈길이 자꾸 가니..... 읍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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