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견 (殺犬) 할 뻔했다는ㅠㅠ
살견(殺犬)을 할 뻔했다. 우리의 견공(김치)을 화씨 93도 (섭씨 약 33도)의 날씨에 차 안에도 두고 내렸다. 너무 더운 날 산책을 데리고 나갈 수 없어서 견공 데이케어에 보냈는데 오후 4시 반쯤 집으로 데리고 오면서 차에서 내리게 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구바씨와 오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차고에서 뭔가를 꺼낸 것까지는 생각이 나는데 김치가 안 보인다는 사실을 1시간이 넘은 뒤에야 깨달았다. 보통 저녁 준비를 하면 김치가 부엌에서 설렁설렁 돌아다녀야 하는데 보이지를 않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찾았다. 그때서야 차 안 뒤편 트렁크 쪽에서 내려준 기억이 없었다. 구바씨와 이야기를 하면서 김치를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이 구바씨가 잠깐 차를 몰고 나갔다는 것을 알고 급히 전화를 했다. 그때까지도 김치가 차 안에 있다는 것을 몰랐던 구바씨 역시 놀라서 급히 차를 세우고 김치를 확인했는데 그냥 괜찮은 것 같다고만 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어찌 시원치 않았다. 괜찮을 수가 없다. 개가 찌는 삼복더위에 차 안에서 한 시간가량 갇혀있었는데 괜찮을 수가 없다. 눈물이 줄줄 흘렀다. 이런 상황은 완전 내 잘못이다. 나의 기억력이 이럴 수가! 며느리에게 달려가 시머머니 체면은 발아래로 내려놓고 울면서 쏘리를 연발했다. I am so sorry!! What if something goes wrong with Kimchi! What if.....!! It's... It's my fault!! I am so sorry!!
레이도 놀라서 당황했지만 우는 나를 진정시키면서 동물병원 응급실로 전화를 했다. 나는 길에 나가서 구바씨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구바씨가 도착했고, 마침 퇴근한 아들도 막 도착을 했는데 차에서 내리자 마자 엄마한테 쌍심지 눈총을 주고 얼굴이 벌게졌다. 차 안에서 김치를 내려놓았는데 다행히 걸음은 아직 흐트러지지 않았다. 물을 싫어하는 녀석이지만 어쩔 수 없이 호수로 물을 뿌리는데 피하면서 변을 보더니 걸음을 휘청거렸다. 우리 모두는 큰 수건에 물을 흠뻑 적셔서 온몸을 감싸주고 얼음을 계속 먹었다. 동물 응급실에 연락을 한 레이가 김치 체온을 확인해야 한다며 화씨 103도가 넘으면 당장 와야 하고 화씨 101 정도 이면 계속 지켜봐야 한다고 한다. (개의 정상 체온은 섭씨 38-39도 정도라는 것도 알았음). 다행히도 항문으로 체온을 확인했더니 화씨 101도 정도가 되어서 최약의 상황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때서야 식구들 모두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구바씨는 그 와중에 "당신 잘못이 아니얏!, 나도 차에 있었잖앗! 그럴 수도 있지. 살았잖앗! 안죽었잖앗!" 라며 마누라 편을 들어주었다.
며느리 앞에서 얼굴에 눈물 콧물 범벅이 돼가지고 쏘리를 연발했던 생각이 갑자기 몰려와 “아~ 엄마는 가슴을 진정시켜야겠다...”라는 말을 뒤로하고 이불속으로 쑤-욱 들어갔다. 이불속에서 가슴을 진정시키려는데 갑자기 부아가 났다. 아부지도 함께 차에 있었는데…아부지 한테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엄마한테만 쌍심지 눈총을 준 아들 녀석이 은근히 괘씸해서 잠이 안 왔다. "지들 개 녀석인데 밥 주고 유치원 보내고 하는 것도 우리가 다 하는구먼.. 우 씨.." 생각하니 열이 콱 받았다. 다음부터는 엄마가 잘못했더라고 마누라 앞에서는 엄마 야단(?) 치지 말라고 해야겠다. 이래저래 가슴과 머리가 울그락 불그락하며 잠 설치는 여름밤이었다.
그것도 며느리의 큰 아들을... 기억력이 자꾸자꾸 삐걱거린다. '도대체 이럴 수가 있나' 할 정도로 필름이 싹둑 잘라나간다. 술에 취하지 않아도 필름이 끊길 수가 있는 경험을 할 때마다 야속하다. 나름대로 뇌활동(?)은 많이 하는 편인데도 세월의 엄격함은 매몰차다. 그래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