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 남매 중의 맏이다. 외가 친가 통 털어 집안의 총맏이가 나다. 어렸을 때부터 내게는 언니, 오빠를 부를 일이 없었다. 부끄럼 많던 시골 아이라서 동네 언니들을 '언니'라 부르면서 따라다닌 적도 없다. 나이를 듬뿍 먹은 지금도 '언니. 오빠 '호칭이 익숙지 않다. 특히 남자를 호칭하는 오라버니 혹은 오빠라고 호칭을 부르는 건 마음속으로도 어색해서 쉽게 입에 올려지지가 않는다. 왠지 오글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려서 부르기가 어렵다. 예쁘게 "오빠야 " 하고 부르는 동료들을 보면 신기해서 쳐다본다. 그리고는 강하게 고개를 젓는다. 오빠라는 호칭은 어쨌든 나에게는 어색하고도 어색하다.
현장 관리자를 하면서부터 나는 부르기 어색한 남자 어른들을 "행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의외로 행님들은 '행님'이란 호칭이 좋다고 하신다. 나의 행님들은 나이는 나보다 조금 많다. 현직에서 정년퇴직을 하시고 일이 그리워 제조 현장으로 오신 분들도 있고, 제조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분들도 있다. 경력도 화려하거나, 인생 경험이 풍부하셔서 나는 그 분들에게서 그저 공으로 듣고 배우는 게 많다. 행님들은 식품 조립보다는 지원 쪽의 여러 곳에 흩어져 있고 구석구석에서 든든한 나의 지원군이자 기동력 좋은 탱크 부대역할을 해 주신다.
납기 마감에 쫓겨 인원이 부족해서 쩔쩔매다가 결국 세척실 행님을 찾아가서 사정 이야기를 한다.
"행님아~ 오늘 2시까지 출고해야 하는데 저 좀 도와주세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시던 일을 던져 놓고,
"무엇을 도와 드리면 되는 거야? 말만 하시요." 행님은 나를 걱정하시면서 돕겠다고 나선다. 책사를 이끌고 전쟁터로 나가듯 현장으로 간다. 가다가 의리를 중하게 여긴 관우를 물색하듯 열처리실로 가서 다른 행님을 찾는다.
"행님아~ 세척실 행님 제가 모셔가니까 그쪽 동네 좀 살펴 주시고 해결 좀 해 주세요." 관우 같은 행님이 땀에 젖은 얼굴로 나를 보면서 대꾸한다.
"잉. 이쪽일랑 걱정 말어. 잘 다독 거리면서 해결하고 있을 것잉게~~"
지나는 길목마다 나의 행님들이
"여기는 걱정 말어. 잘하고 있을게."라고 나의 바쁨을 걱정하면서 위로하고 격려한다.
여자 천국인 식품 조립 현장에서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느라 낑낑거리고 있으면 어디선가 여지없이 나의 행님들이 나타난다.
"아이고~~ 나를 부르지~ 이걸 혼자 들어 올리고 난리여~~"
내 손에 항상 들려 있는 연장이나 청소 도구들을 보면 어김없이 걱정하면서 도와주려고 덤비는 분들도 행님들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때문에 골머리를 앓을 때도 대기업 임원을 하시고 정년퇴직을 하신 행님은 쉽게 정답을 주신다.
"내가 데리고 이야기 좀 해 볼게. 저런 아그들은 어른이 이야기를 하믄 잘 알아들어. 걱정 말어."혹은
"저런 사람은 조직에서는 답이 읎어. 혼자 하는 일을 해야 혀. 직장을 잘 못 들어왔어. 내가 야그 좀 해 줘야 쓰겄고만."
말을 못 하는 내 고민을 척척 알아봐 주기도 한다.
인생의 연륜이란 지혜가 있어서 아름답다고 했던 말이 있다. 나이 60이 넘으면 연륜이 쌓여서 지혜롭기만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직도 혈기 왕성한 나는 그때그때 감정에 폭발하고 기분에 집중한다. 일이 바쁘면 일을 태풍처럼 몰고 가고 사람이 속을 섞이면 어디 구석에서 머리를 싸매고 앉아 있다. 지혜와 현명이란 단어는 60에도 찾아오지 않는 것이란 말인가. 환갑을 넘기면서 나는 과연 나잇값을 하는 사람인지 종종 생각을 하게 된다. 60을 훌쩍 넘긴 주위의 행님들은 지혜롭거나 현명하거나 자애롭다. 내가 아무리 어이없는 상황을 만들어도 지혜롭게 내 편이 되어 주시고 현명하게 나를 도와주신다. 내가 미처 챙기지 못하고 놓쳤을 사람들을 챙겨 주시고 여기저기에서 현장의 기둥이 되어 주신다. 나이 먹어 가면서 이런 인복이 생기다니, 제조현장의 반장 하기를 잘했다. 이 나이에 나에게 행님이 이렇게 많이 생길 줄 알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