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꿈에서 보았던 곳이야

데자뷔

by 파인트리

신기하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도 향기롭다. 저기 보이는 특이한 건물도 어디선가 본 듯하다.

알록달록한 건물과 중국풍의 색깔들, 거리 초입에 컵이 잔뜩 쌓인 조형물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공원으로 이어지는 색감 짙은 계단, 너무나 익숙하다. 이런 걸 데자뷔라고 하나? 언젠가 꿈에서 분명히 같은 상황을 경험했다고 굳게 믿게 된다.

“나 여기 꿈에서 와 본 거 같아. 이런 똑같은 상황을 경험해 봤어.”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같이 동행하던 아이들은

“엄마, 몇 년 전에 여기 다녀 갔던 곳 이에요.”말을 한다.

“아~ 그랬구나. 그런데 뭘 이렇게 새롭냐.”나는 또 혼자 중얼 거린다.


나는 온 식구들이 알아주는 길치다. 길눈이 어둡다. 신혼 초 처음 상경하여 서울 살림을 막 시작 했을 때 저녁 장을 보러 점심때 나가서 저녁에 돌아온 적도 있다. 핸드폰도 없고 집에 전화받아줄 사람도 없었다. 그렇다고 자존심 구겨가며 출근한 남편한테 전화해서 물어볼 수도 없었다. 결국 시장 옆 만리동을 이 골목에서 골목으로 오르락내리락거리머 반나절을 보냈다. 지역이름이 만리동 이라더니 정말 만리를 걸은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낯선 곳을 찾아갈 때면 골목골목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다. 골목 귀퉁이의 가게 이름을 적어 다녔다. 메모는 길을 잃었을 때 다시 돌아와 원점에서 새 출발을 하기에도 좋았다. 그러다가 문명의 혜택 내비게이션이 나왔다. 덕분에 길을 찾아 가는데 어려움이 없어졌다. 문제는 기억에 있었다. 길 찾는 어려움은 해결되었는데 기억저편에 있는 장치는 오류가 났는지 갔던 곳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몇 년 전에 가봤다는데 다시 가면 새롭고 좋다. 아무리 좋은 곳을 다녀와도 별로 기억을 못 한다. ‘어머 이런 곳이 있었네.’ 다시 갈 땐 틀림없이 감탄을 한다. 덕분에 식구들은

“우리 엄마 감동시키기는 참 쉽죠 잉~”라고 나를 놀린다.


나는 주로 심난하거나 생각을 정리할 필요를 느낄 때 여행을 간다. 새로운 장소로 여행을 하거나 방문하게 되었을 때 경치를 감상하기보다는 생각에 빠져 있을 때가 많다. 식구들과 바람을 쐬러 나갔을 때도 항상 마음에는 다른 생각이 가득하다. 아이들 어렸을 때는 아이들 안전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래서 무엇을 보고 왔는지 기억이 잘 안 났다. 아이들이 자라고 나니 한두 가지만 기억이 난다. 대부분 한 가지에 집중해서 생각하고, 혹은 한 곳에 깊이 빠져 있다가 온다. 눈과 귀를 통해 받은 정보까지는 내 기억과 뇌의 용량이 많은 것을 담아 두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조선의 김득신 선생은 '백이 전'을 십만 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나도 공부도 복습, 여행도 복습을 많이 해야 기억을 한다. 그게 내 기억의 방법이다. 여행지도 자주 바꾸지 않는다. 계속 가던 곳을 가게 되고 그곳이 익숙해지면 점점 범위를 넓힌다. 원주의 치악산은 이십여 년이 넘도록 고집하고 다니는 내 여행의 핫 플레이스이다.

심난한 생각을 접어두고 우리 반려견 상구의 산책 준비를 한다. 외출옷을 꺼내는 순간부터 우리 강아지는 날뛰고 좋아한다. 집밖으로 나서기가 무섭게 달려 나간다. 길 위에 돌멩이 하나까지 신기한 모양이다. 길바닥에 코를 끌면서 냄새를 맡고 좋아한다. 매일 보는 거리, 매일 걷는 길, 뭐 하나 달라진 게 없는데 상구는 좋아서 날뛴다.

“상구야, 넌 매일 보는 게 뭐가 그리 좋아서 난리냐? 항상 새롭냐?”

나는 속으로 뜨끔 한다. ‘이거 내가 듣는 말인데~’


상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