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람지 Oct 27. 2024

1년 된 남자친구랑 길 걷다 똥 싸다 (3)

지렸을 때 원영적 사고!



남자친구는 갔고, 나름 더 나올 것들을 참고 있던 차.

이미 한 번 싼 마당에 더 싼다고 상황이 달라질까?

우선 싸고 생각하잔 마음으로 양껏 비워냈다.



4번 정도 후두둑 싸고 나니 이제 배가 평온해졌다.

평상시와 같이 의식이 또렷해지고, 비현실 같았던 느낌이 현실로 돌아왔다.

나에게 남은 건 따뜻한 덩어리감이 일품인 아랫도리.

그리고 뛰면 3분, 걸으면 5분가량의 거리.



다행인 점은 꽤 늦은 저녁이어서 걸어 다니는 행인이 거의 없었고,

비가 추적추적 오기 시작했다는 점. (여름이어서 시도 때도 없이 비가 갑자기 오던 시기였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긍정적이 된다고 했던가? (근거 없는 말이다)

나는 기가 막힌 스토리 하나를 생각해내고 만다.

비가 왔는데 미끄러져 화단에 넘어져 젖은 흙에 완전히 옷을 버린 비련의 여자.

당시 변비가 약간 있던 나의 똥색은 주저앉은 곳 옆에 있던 가로수의 흙 색과 비슷했고,

이 점에 착안하여 이야기를 만들고 주인공에 빙의했다.





신기하게도 나는 이 이야기가 매우 괜찮다고 생각했고 (지금 생각하면 나도 그저 웃긴데 당시엔 그냥 믿지 않고서는 미쳐버릴 거 같아서 내 뇌에서 받아들여줬는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의 배경인 '넘어짐'을 구현하기 위해 일단 꿈틀꿈틀 가로수 흙 쪽으로 자리를 이동하고 일어섰다.



일어선 순간 내용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당시에 무릎 위까지 오는 통 큰 반바지를 입고 있어서 일어서니 쏟아져 내린 것이다.)

유당 불내증이 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우유를 먹어서 나오는 것은 단단하지 않고 무르거나 설사다.

그래서 그 찌꺼기들이 나온 것이다.

단단한 것이었다면 여기서 털고 일어나면 끝이니 편하겠지만, 

내가 싼 것은 액체와 고체의 혼합물이라 일단 액체는 옷에 스며들고, 고체만 떨어진 것이다.



앞으로 걸어가야 하는데 앞으로 걸어가는 동안 내용물이 떨어지면 곤란하니 제자리에서 5번쯤 뛰며 

내용물을 최대한 털어냈다.

다 떨어진 후엔 앞으로의 계획을 세웠다.

우산도 있어서 얼굴은 어떻게 가릴 수 있고,

흙도 좀 묻혀놔서 아랫도리도 괜찮긴 하지만,

'냄새'는 가릴 수 없기에 최대한 사람을 안 만나는 게 중요하다.

그렇기에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생각했다.



우선 집에 가는 길까지 멈춰 서야 하는 곳은 총 2군데.

횡단보도 앞. 그리고 집 엘리베이터.



일단 횡단보도의 경우 내가 언제 신호가 바뀌는지 알고 있기에

최대한 신호가 바뀌는 중간에 뛰어서 가면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않을 수 있다.

엘리베이터의 경우 신이 나를 도와 사람이 없으면 다행이지만, 

사람이 있다면 일단 비상계단을 가긴 할 거지만 사람이 너무 많으면 너무 민망할 거 같았다.



일단 뒷 일은 벌어진 뒤 생각하기로 하고,

계획대로 횡단보도는 잘 건넜다.

그 뒤 빠르게 뛰어 집 건물로 들어왔는데 한 명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1년 된 남자친구랑 길 걷다 똥 싸다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