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언노운 걸] 죄책감을 정면으로 마주하면
※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의사인 주인공 제니는 클리닉에서 일하던 중 진료시간이 끝난 후 벨이 울렸음에도 문을 열어주려는 인턴을 제지한다. 그러나 그 벨을 울렸던 사람은 어린 소녀였고, 제니는 이후 병원 CCTV를 확인하러 온 형사에게 그녀가 그날 밤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는 제니의 삶에 큰 반향을 일으킨다. 자신이 문을 열어주었다면 소녀가 죽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죄책감에 그녀는 아무 연도 없는 소녀의 이름을 알아내고자 관계자들을 찾아 나선다. 이 과정에서 제니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소녀의 이름을 찾는 것에 집착하는데, 자칫 오지랖으로도 느껴질 수 있는 그녀의 행위는 처음에는 난항을 겪는 듯 하나 결과적으로 진실을 밝히는데 일조한다. 영화는 주인공이 이름 모를 소녀의 죽음에 대한 원인을 파헤치고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쭉 관조적 시선으로 따라간다. 극 중 사람들은 죽은 아이를 본 적 있냐는 제니의 질문에 정말로 전혀 모른다는 듯 단번에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이후에는 이미 죽은 사람의 과거 행적에 대해 묻는 그녀를 불쾌하게 여긴다. 내민 사진에 힐끔 시선을 던진 뒤 모르겠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바로 TV를 보던 사이버 카페의 두 남자와 직원. 겉으로 보았을 때는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았던, 다만 아픈 아들에게 자꾸만 살인사건에 대해 캐묻는 주치의가 마음에 안 들었을 뿐인 줄 알았던 브라이언의 아버지.
후반부에서 밝혀지지만 이들은 모두 소녀를 알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영화는 누가 범인인지, 또는 누가 관계자인지 관객이 전혀 알 수 없게끔 카메라의 시선을 설정하고 내용을 전개한다. 이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주인공뿐이다. 그녀는 인물의 눈을 들여다보고 청진기로 심장박동 소리를 듣는다. 제니는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협박을 당하고 위험에 처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녀처럼 죄책감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소녀의 ‘진짜’ 이름을 알게 된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화면에는 차가운 색감과 무표정한 인물들이 가득 잡히지만 영화가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따뜻함이다. 극 중 제니는 이성적이며 책임감이 매우 강한 인물로 묘사된다. 소녀의 죽음 외에도 자신의 말에 상처를 받고 의사의 길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결과적으로 그 이유는 아니었지만) 인턴 줄리앙에게 사과하고 나서 끝까지 찾아가 포기하지 말라고 다독인다. 그녀의 강한 책임감은 곧 죄책감과 연결된다. 소녀의 죽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에도 미미하여 그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계속 살아가면 그만일 텐데, 주인공은 자신이 느낀 죄책감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기를 택한다. 자신의 행위에서 비롯된 책임감 때문에 더 좋은 병원으로의 이직도 마다한 채 소녀의 이름을 찾아 묘비를 세워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다들 제니의 앞에서 소녀와 아무 관련이 없는 것 같은 태연한 모습을 보이다 나중에는 어떠한 액션을 취한다. 주인공을 협박하거나 소녀에 대해 털어놓거나. 이는 무게는 다를지 몰라도 저마다 일종의 죄책감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소녀의 죽음에 결코 자신도 완벽한 타자가 아니라는 책임감이 그들로 하여금 제니에게 진실을 말하도록 한 것이다. 그들은 극악무도한 살인마가 아니라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아마 처음에는 외면했지만 종국에는 다들 알게 되었을 것이다. 죄책감을 느낀다면 이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해야 고통스러운 죄의식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