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까지 80일쯤 남은 내가 최근에 자주 듣는 말은 시간이 참 빠르다는 것과 이제부턴 시간이 안 갈 거라고 하는 것이다. 남 군생활은 왜 이렇게 빠른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친구 녀석이 현역일 때 밖에 있던 나 또한 그리 느꼈다. 군대에 간 친구들이 휴가를 나올 때면 왜 이렇게 자주 나오냐고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나왔다고 말하던 나를 기억한다. 그러면서 전역까지 이제 백일도 남지 않았다 하면 시간 정말 빠르다고 대꾸하는 나를 기억한다. 올해 2월에 전역하는 바로 위 선임들은 지금 시간이 너무 안 가는데 나에게도 분명 이런 시기가 올 거라고 으스대며 얘기한다. 나보다 40일 정도 군생활을 먼저 했을 뿐인데 우리 사이에 무수한 세월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그들이 귀엽지만 군대는 빨리 오는 쪽이 승자라서 분하지만 잠자코 들을 수밖에 없었다. 같이 먹고 자고 한지 1년 하고 2달도 더 돼서 어쩌면 친형제보다 더 형제 같은 그들과 함께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 아쉽지만 시간을 멈출 수 없으니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배웅할 것이다. 빈자리를 생각하면 섭섭할 만큼 돈독한 사이다. 고생도 함께했고 즐거운 일도 함께했다.
이번에 복귀하면 두 번째 혹한기를 준비해야 한다. 중대에서 봤던 사람들 중에서 나와 내 동기들이 가장 불운한 군번이라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은 우리부터 모든 훈련들이 정상적으로 시행됐기 때문이다. 윗 군번들은 코로나로 인해 굵직한 훈련들이 모두 미뤄지거나 취소됐으나 내가 대대에 전입 온 이후로 코로나가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애석하게도 훈련들도 예전처럼 진행됐다. 혹한기부터 해서 유격, 동원훈련, 호국훈련까지. 특히나 지난 연말에 했던 호국훈련은 그 규모가 다른 훈련들에 비해 매우 커서 준비하는 과정부터 철수까지 품이 많이 들었다. 이 훈련을 잘 마무리한 덕인지는 몰라도 우리 대대가 군단에서 선봉대대로 뽑히는 전례 없는 일이 생겨서 흡족하신 대대장님이 전 인원들에게 휴가를 선물하셨다. 고생은 우리 중대가 제일 많이 했는데 다들 같은 보상을 받는 것은 못마땅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그나마 작년 혹한기 때 비해 개선된 점이 있다면 그때는 파릇파릇한 일병 2호봉이었고 지금은 전역을 앞두고 있는 병장 4호봉이란 점이다. 선임들이 바글바글해서 훈련하랴 눈치 보랴 내내 긴장한 탓에 몸과 마음이 지쳤지만, 적어도 지금은 눈치는 안 봐도 돼서 훨씬 부담이 적다. 이번 혹한기만 끝내면 집에 가기 전까지 다른 훈련은 없으니깐 힘들어도 기쁜 마음으로 임할 수 있을 것 같다. 따지고 보면 3중대에서의 내 마지막 훈련일 거다(부디). 애들하고 같이 고생할 기회가 이번이 마지막이니깐 즐겁게 다치지 않고 마무리해야겠다.
같은 보직의 후임들이 처음으로 들어온 게 작년 5월. 조기진급해서 남들보다 일찍 상병을 막 달았던 시기였다. 나와 내 동기들은 막내생활을 반년정도 했고 인원난이 극심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두 자릿수가 넘는 연근을 해도 불만 없이 당연하게 여기며 지냈다. 어쩌다 근무취침으로 하루 쉴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그러던 때에 10명이 넘는 후임들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반가움, 설렘 그리고 걱정. 빠른 시일 내에 인원보충이 이뤄지길 바란 건 맞지만 이런 식으로 같은 월자의 병력이 한꺼번에 여럿 들어온 건 이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당시에 신병들을 전담하는 것이 내 군번이었기 때문에 우리 수에 비해 너무 많은 인원이 와서 걱정이 많았다. 어떻게 통제해야 할지, 자기들끼리 뭉쳐서 난감하게 굴면 어쩌지. 당시에는 퍽 심각한 고민이었지만 지금 우리들을 보면 대체 왜 그런 걱정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잘 지내고 있다. 후임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아니면 어떡하지).
동경하는 선임이 있었다. 내 아버지 군번인데 우연하게도 입대일까지 같았다. 후임들한테 항상 웃으면서 대해주고 친절했던 그는 동생이었으나 선임으로서 사람으로서 배울 점이 많았다. 혼을 낼 때 감정을 죽이고 사실관계로 잘잘못을 지적해 줘서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기분 나쁘지 않고 오히려 겸허하게 수긍할 수 있었다. 세심한 부분까지 후임들을 챙기는 것이 멋졌다. 그가 풍기는 여유로움이 주변 분위기도 유하게 만들어서 늘 긴장상태였던 신병 시절의 나도 그와 함께 할 때만큼은 안정감을 느꼈다. 업무지도 다르고 분대도 달라서 자주 대화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위병소까지 많은 중대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전역하는 뒷모습을 보면서 그가 후임들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의 군생활이 어땠는지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저렇게 후임들이 배웅해주고 싶은 사람이 되자고 조용히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