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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써니 Oct 22. 2022

동갑내기 육아하기

엄마는 여섯살

아이가 한 살이면 엄마도 한 살,

아이가 두 살이면 엄마도 두 살,

아이가 다섯 살이면 엄마도 다섯 살이란다.

우리는 결국 동갑내기다.




조금 더 부지런히 아이보다 몇 살이라도 더 먹고 아이를 바라볼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는 초보 엄마인 나는 정말 꼭 같이 아이와 함께 자란다. 한두 살이라도 더 많은 엄마가 아니기에 아이의 상황과 마음을 미리 예측할 수 없는 건 물론이다. 그냥 그때그때 조금 느리게 아이가 보는 대로 말하는 대로 표현하는 대로 대처하고 받아들일 뿐이다. 다행히도 아이는 자기가 자라는 순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고, 수시로 그것들을 엄마에게 알리고 있었다. 이 엄마는 눈으로 귀로 손으로 삐쭉삐쭉 안테나를 길게 뻗어 그 표현과 신호에 적절히 반응만 할 뿐이었다.


아이의 신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은 게으를지언정 예민함은 버리지 않아야 하는 이유였다. 아이의 말에서 힌트를 얻고 아이의 행동과 표정에서 상황을 읽었다. 내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뿐이었다. 내가 빠삭하게 잘 알고 있는 분야였다면, 내가 너보다 월등히 나은 존재라는 것이 확실했다면 아마 그러지 못했을 거다. 조금 더 나의 방식을 밀고 나갔을 것이고, 너는 틀리고 나는 맞다는 철학을 고수했을 것이다. 다행히 나는 월등하지 못했기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게 뭐가 매워!!!


어린 시절, 나는 매운 걸 잘 먹지 못하는 어린이였다. 가족과의 식사시간 별 것 아닌 것도 맵다며 얼굴을 찌푸리는 나를 보고 아빠는 하나도 안 매운데 이게 뭐가 맵냐며 꾸짖곤 하셨었다. 지금 생각하면 꾸짖음을 겪을 일도, 눈치 볼 일도 아니지만 그때는 그랬다. 어렸던 나에게는 맵고, 어른인 아빠에게는 맵지 않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이 마냥 어려웠다. 그리 기억하는 것이 많지 않은 내가 이 가벼운 일을 지금껏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그때 당시에는 나름 진지한 고민거리였던가 보다.


그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나는 이제와 꼭 닮은 경험들을 한다. 아무리 봐도 고춧가루 하나 없고 다시 씹어봐도 매운맛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버섯볶음을 맵다며 뱉어내는 아이를 보며 그때를 떠올린다. 잠시 '읭?' 스럽지만 아이가 맵다면 매운가보다. 버섯볶음을 뒤로하고 메추리알 조림을 조금 더 앞으로 밀어준다. 고춧가루는 없지만 마늘이나 파의 알싸함을 매운맛이라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조금 들어간 후춧가루가 덩어리째 뭉쳐져 있었을지도. '매웠구나.' 그냥 본 대로 들은 대로 단순하게 받아들인다.







내 '엄마나이'는 고작 여섯살이다. 

서른 여섯도 마흔 여섯도 아닌 여섯살이기에 아직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세상이 훨씬 많다. 동갑내기인 여섯살 아이와 이 길을 함께 헤쳐나간다. 그 험난한 길에서 수시로 어른인 척 호기롭게 가르치고 있지만 사실은 아이에게 더 많은 걸 배우고 있다고 고백해본다.




오락실의 자동차게임을 할때면 다리가 짧은 아이는 운전대를 잡고 아래의 엑셀과 브레이크는 내가 밟는다. 우리의 육아가 딱 그런 모양새다. 브레이크와 엑셀은 엄마가 밟되 결국 핸들은 아이가 잡고 있는 기분. 적당한 때와 적당한 지점 브레이크를 밟아주고 엑셀에 힘을 싣기도 하지만 결국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아이였다. 그 핸들을 힘주어 뺏으려면 뺏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아직은 그 방향이 싫지 않아 동행한다. 아이 역시 아직은 나의 엑셀링이 마음에 드는 눈치다. 언젠가 수시로 밟게 될 엄마의 급브레이크가 거슬릴 때가 오면 나를 힘껏 노려볼지도 모르겠다. 차에서 내리라며 밀어낼지도 모르겠다. 



도착지가 언제일지 어디일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그곳까지 무사히 함께 동행할 수 있기를. 내리는 그 순간에도 지금처럼 '동갑내기'의 모습으로 서로 마주 보며 웃을 수 있길. 찐하게 하이파이브를 하며 부둥켜안을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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