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조때따!!
"아빠 X때따! 조X따 아빠!"
앞서 걷던 사람들이 뒤돌아 다시 쳐다봤다. 모두들 제 귀를 믿지 못하는 눈치다.
이 귀여운 목소리에 경박스러운 육두문자라니, 믿어지지 않을 테지.
아녜요, 들으신 게 맞아요...
콩콩팥팥. 어른의 말이 곧 아이의 말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엄마가 되고서는 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 썼다. 그렇게 조심 또 조심하며 살았건만 아이의 입에서 세상 낯선 말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조때따'라니...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장담컨대 태어나 단 한 번도 내 입 밖에 내어본 적 없었던 말이다. 처음 들었던 그날, 땡그래진 눈으로 신랑과 마주쳤다.
'얘 지금 뭐... 뭐라는 거야!'
꼬맹이에게는 같은 해에 태어난 귀한 남자친구들이 둘 있다. 도운이와 주영이. 엄마끼리 이미 사이가 좋았기에 같은 해에 태어난 이 친구들도 이른 시기부터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머리통을 치며 그렇게 성장했다. 소위 말하는 부랄친구랄까. 성장 과정을 하나하나 함께하던 이 친구들은 신기하게도 비슷한 시기 따로 또 같이 비속어를 입에 붙이기 시작했다.
"엄마, 병 X!!" 주영이는 수시로 엄마를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고,
도운이는 불량한 큰 형아들처럼 말끝마다 '존X'를 섞었다.
육아 고민을 나누던 우리 엄마들은 셋이 모이면 아주 볼만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너무나 당연히도 그 험한 말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꼬맹이의 말은 부러움의 '좋겠다.'였고, 주영이의 말은 로보카 폴리의 친구 엠버가 팔다리가 생기고 벌떡 일어나던 '변신'이었다. 꼬맹이는 아빠의 어느면이 부러웠던 거고, 주영이는 엄마에게 수시로 '변신'을 요청했던 것뿐인 거다. 사실 아직도 도운이 말의 정체는 찾지 못했으나 그 역시 어눌한 발음과 어른들의 오해로 인한 에피소드였을 거라 여긴다. (맞지, 도운아?)
어른의 틀로만 이해하기에 아이들의 말의 범위는 상상 이상으로 크고 넓다.
어른의 말은 씨앗이 되어 아이에게 심긴다. 아이가 자라며 줄기가 되고 꽃이 피고 말의 열매가 열린다. 콩콩팥팥. 그건 명언이자 삶의 진리다.
남편이 애용하는 단어이자 내가 '극혐'하는 단어가 있다.
'차라리'
왜인지 모르게 남편은 무언가 선택할 적마다 '차라리'라는 단어를 쓴다. 옷가게에서 두 옷을 성심껏 비교하는 나에게 남편은 나름의 고민을 하고 조언한다.
"차라리 이게 더 낫겠는데?"
나는 그 길로 뒤돌아 옷을 제자리에 걸어두고 매장을 나와버린다. 굳이 제 돈을 주고 둘 중 '차라리'나은 옷을 살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어느덧 저 사람의 말버릇일 뿐 아무런 악감정도 없는 표현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 습관적인 단어를 들을 적마다 마음이 짜게 식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말이란 삶의 태도와도 같아 그 말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곧 그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 아빠의 '차라리'를 얼마 전부터 수시로 갖다 쓰고 있는 꼬맹이를 보며 한 번씩 신랑에게 눈을 흘긴다. 신랑은 자기가 내게 했던 '차라리'의 실수보다 훨씬 더욱 난처하고 곤란해한다.
눈눈이이.
자기도 이제야 '차라리'가 끌어오는 분위기를 격하게 느끼고 있는 거다. 아이의 말은 이토록 어른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꼼꼼히 되짚어보게 만든다.
콩을 심었더니 역시나 콩이 나왔다.
'차라리'를 심었더니 '차라리'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