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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써니 Feb 04. 2022

내가 행복한 순간

일상의 한 귀퉁이


대부분의 시간 암막커튼이 쳐져있는 안방의 커튼을 열어젖히고 하얀 이불보가 훤히 보이도록 훅훅 털어 침대를 덮어뒀다.


마치 부지런한 사람인 양.

(부지런하다기엔 긴 연휴를 핑계로 얼굴이 노래질 정도로 잠을 잔 참이었지만)


혼자라면 귀찮아서 가벼이 건너뛰었을 아침 식사를 마치고 신랑의 손을 빌어 설거지도 마쳤다.


폭신하고 하얀 이불보 위에 그대로 올라가 머리맡의 책을 들었다. 성장도 성공도 습관도 충고도 가르침도 없는 책이다. 요즘 내 최애인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에 맞춤하게 걸맞다.


높은 베개에 반쯤 기대어 책장을 열었다.


햇볕을 받아 한껏 싱그러워지는 풀잎들의 기분이 이러할까 싶다. 역시나 전등빛은 자연광을 따라갈 재간이 없다.


깨끗하고 폭신한 이불

맞춤하게 손에 딱 맞는 얇은 책


이미 좋았다.






디디디딩딩~~


"넌! 할쑤이떠ㅡ라고 말해주데여~그럼!우리는무어디든할쑤이찌요~

...할뚜이떠!!!"


아무래도 날 닮아 높은음은 올라가지 않겠구나 싶은 꼬맹이의 노래가 시작됐다.


혀는 짧고 발음은 쉬쉬 새어서는..

세상에서 제일 듣기좋은 목소리로 나무가 될거란다.


타닥타닥 걸음소리도 들리는 걸 보니 또 본인의 노래에 심취하여 신나게 율동 중인 게 분명하다.


피식.

웃음이 샌다.

웃음이 입에만 온 것이 아니라 눈에 광대에 이마에 다 앉았다. 정말이지 온 얼굴로 웃음이 난다.


왼쪽가슴 한켠이 또 몽실몽실 부푸는 듯 간질간질 지릿거린다.






내가 행복한 시간.

거창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흔한 일상의 한 귀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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