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바닷가에 텐트 치기

- 강릉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3부)

by 중현

“여보, 이쯤이면 좋을까?!”

“음 조금 더 평평했으면 좋겠는데. 저 옆에다 펼치자!”

"응 알았어. 읏차!"


우리는 지금 바닷가 앞에 텐트를 치기 위해 송정해변 소나무 숲 근처에 와 있다. 송정해변 인근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후, 텐트 장비와 책, 노트북 그리고 간식거리를 어깨에 메고 해변가로 향했다. 소나무 숲을 지나 바닷가 앞 흙밭과 모래사장 경계선에서 텐트 자리를 물색했다. 소나무 숲에 취식하거나 텐트를 치는 건 금지사항이다. 소나무 생육에 지장이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닷가에 텐트를 치는 사람은 대부분 숲을 지나 흙밭에 텐트를 친다. 이따금 소나무 숲에 그늘막을 설치해 쉬는 이들이 보이는데, 그런 몰상식한 사람은 지나가면서 한 번씩 째려본다. '지킬 건 지키면서 누려야지!' 하고 말이다. 휴일에는 하루 종일 바다에서 휴식을 취하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낸다. 바쁘게 일한 다음 날, 텐트에 누워서 여유롭게 지내는 순간이 그렇게 꿀맛일 수가 없다. 앞에는 바다, 뒤에는 소나무 무리 절경이 따로 없었다. 소나무 숲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부러운 눈으로 우리 모습을 바라본다. 텐트는 어디서 샀는지 궁금해하는 분도 더러 있었다. 익숙한 듯 사람들과 편히 대화한 후 해야 할 작업을 예정대로 진행한다. 우리 또한 처음부터 이렇게 지냈던 건 아니었다.


강릉에 막 왔을 무렵, 송정 바닷가를 산책할 때 바닷가 근처에서 그늘막을 치거나 텐트를 설치하며 쉬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돗자리에 앉아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거나, 텐트 아래 누워서 잠을 청했다. '와 저기서 쉬면 너무 기분 좋겠다.' 편해 보였다. 나도 똑같이 따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집에 있는 돗자리 하나만 들고 무작정 바다로 나갔다. 바닷바람에 된통 혼쭐이 났다. 늦가을에 두툼한 외투를 입고 갔으나, 쉴 새 없이 부는 바람에 1시간도 못 버티고 일어서야 했다. 주차장으로 돌아갈 때까지 벌벌 떨며 걸어갔다. 그 후로 계절이 바뀌고 초가을에 다시 한번 송정해변을 찾았다. 날씨가 따뜻해서 바람도 시원할 줄 알았다. 가까운 소나무들이 그늘막 역할을 해줘 처음에는 시원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서늘해졌다. 파도와 함께 밀려오는 바람은 잦아들 줄 몰랐고, 바라에 의해 모래가 날리면서 음식과 돗자리 위에 사뿐히 자리 잡았다. 이번에도 1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게다가 지난번엔 콧물만 훌쩍이고 끝났는데, 이번엔 몸살을 앓았다. 바닷바람을 만만히 보고 얇게 입고 간 대가였다. 신고식을 톡톡히 치른 셈이다.


몸살로 꼬박 이틀을 앓았다. 텐트 장비의 필요성을 뼈 저리게 느끼고 나서야 '텐트를 사야겠어'라고 다짐했다. 그렇다면 어떤 텐트가 좋을까? 인터넷에서 살펴봤다. 허공에 던지면 자동으로 펴지는 원터치 텐트는 간편했지만 내구성이 약했다. 새미와 아직 결혼하기 전에 누나한테서 원터치 텐트를 빌려 한강으로 간 적이 있는데, 그날따라 세게 분 바람 때문에 얼마 못 버티고 돌아온 기억이 있었다. 원터치로는 한강 공원에 부는 바람도 못 버틸 텐데 하물며 바닷바람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다른 텐트를 살펴봤다. 바람을 견딜만한 튼튼한 텐트가 필요했다. 마침 10만 원 정도에 적당한 물품이 보였다. 4인용 폴대 내장형 텐트였다. 원터치에 가까워 설치와 철거가 간단했고, 텐트 크기와 무게도 중량급은 돼 보였다. 이 정도면 강풍이 아닌 이상 잘 견딜 듯했다.


직접 눈으로 본 텐트의 품질은 기대 이상이었다. 시험 삼아 거실에 펼쳐봤을 때만 해도 방법을 몰라 헤맸다. 하지만 금방 요령을 터득하자 2~3분 만에 뚝딱하고 텐트를 펼쳤다. 짜잔~ 안에는 4인 가족이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널찍했다. 처음에 화들짝 놀라 소파 밑으로 숨은 나지와 바미도, 완성한 텐트의 모습을 보고 호기심이 일었는지 가까이 와 기웃기웃거렸다. 텐트의 모습을 보며 확신했다. “음, 이제는 몸살 걸릴 일이 없을 것 같아.” 몸살을 앓은 지난날을 떠올리며 나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바닷바람이 평소보다 세기가 약하게 느껴진다. 바람이 잠잠한 날인가 보다. 오늘 같은 날에는 앞 뒤로 출입구를 열어 놓는다. 그러자 바람이 살갗을 살랑살랑 어루만지며 텐트 안을 지나친다. 보드랍게 몸을 감싸 안은 바람의 촉감이 가을을 떠올리게 한다.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며 온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에 귀 기울인다. 눈앞에 보이는 화창한 하늘과 바다, 귓가로 들리는 시원한 파도 소리, 숨을 내쉴 때마다 맡는 맑은 공기 내음, 살갗을 통해 느껴지는 바닷바람, 그리고 쪼옥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모금 마실 때 밀려오는 고소한 맛까지. '아, 완벽하다.' 절로 탄성이 새어 나온다.


텐트를 다시 집어넣을 때는 일회용 용기, 일회용 컵 등을 다시 비닐봉지 안에 담는다. 그리고 주변에 남이 버리고 간 쓰레기도 덤으로 가져간다. 자유로운 삶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깨끗한 바다, 쓰레기 없는 모래사장을 보고 싶다면 나부터 솔선수범 치워야 한다. 자연 경치를 마음껏 누리는 값을 지불해야지.


강릉에 살기 시작한 지 1년 하고 반이 지났다. 처음에 여행 온 듯이 바라봤던 바다의 모습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변해간다. 이제는 우리 바다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 동네 바다이고, 다음 세대에 예쁘고 깨끗한 모습으로 물려줘야 할 바다이다. 강릉 사회의 구성원으로 녹아든 만큼, 앞으로 이 바다와 자연을 지켜가고 싶은 마음이다. <나무를 심는 사람>의 엘제아르 부피에 처럼 묵묵하고 끈기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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