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DEC23 겨울
지난주 며칠은 갑자기 추워져서, 오늘은 또 기온이 10여도 이상 오른다고 해서 긴장했다. 이른 아침 공기는 매우 찼는데, 점심 무렵이 되니 다행히 봄햇살처럼 따사 포근했다. 올해는 가을이 짧아 얇은 외투는 입어보지도 못하고 지난주는 또 너무 추워 한겨울 옷을 들쳐 입고 다녔다. 거기에다 감기까지 걸린 나는 온몸에 칭칭 목도리들도 둘러쓴 참이었다. 오늘에서야 몸도 조금 가벼워지고 햇살이 좋아 마음도 조금 여유가 생겼다.
첫눈이 11월에 내리고 나면 곧이은 연말 분위기에 12월은 순식간이다. 1월은 또 새해 분위기와 방학틈에 끼어, 1월 말부터 2월 초는 명절과 개학 등등으로 분주하게 지나간다. 겨울은 그러니까 눈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연말이나 연초, 방학 같은 연이은 이벤트와 휴가들로 정신없는 통에 어찌어찌 이겨내고 지나가는 마법의 계절 같다.
그렇게 정신없이 보내다가 2월 첫 주를 전후로 입춘이 지나면 이제 봄이 오는구나 싶어 마음을 잠시 놓게 되지만 이후 한차례쯤 눈이 소복이 내려 쌓이는 날이 있어, '아, 아직 겨울이구나.' 했던 것 같다. 나는 보통 2월에 눈이 내리는 날, 사진을 찍어 남겨둔다.
2018년과 2019년 사이, 2월 어느 날, 눈이 내리던 날, 나는 마당 앞으로 걸어 나가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살포시 걸어보았다. 이런 날은 아침 찬 기운에도, 누구보다 먼저 밖으로 나가 주어야 한다. 눈이 내린 새벽길은 누군가에게는 무척 위험한 길이라는 것을 알지만, 소리 없이 내린 눈이 쌓인 길거리를 보고 있노라면 왜 그리 고요하고 포근한 느낌이 들던지. 그리고 나는 그렇게 눈밭 위에 서면, 한해의 다짐 같은 것을 마치 의식처럼 하곤 했는데, 그해에도 다짐을 하고, 어떤 선택도 했다. 그때 했던 선택들이 어떤 성과도 없이 이리저리 표류하면서 몇 년이 지난 것 같다.
그날, 양말도 신지 않은 채, 아무거나 편한 신발, 고무신(!) 신발 신고서, 이른 아침 새벽길가에 섰을 때, 나는 자유를 느꼈다. 혹시나 눈이 바스러질까, 살짝 눈 위에 올라서느라 발에 힘이 들어가긴 했지만 눈밭 위에 서서 그날의 눈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다. 내가 바라본 곳에는 2월의 눈, 칼바람 같던 아침 기운, 바람에 날리던 눈발이 있었다고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 눈길 위에서 찍은 그 사진을 보고 '눈밭 구두'라고 표현해 준 분이 있었다.
아차, 나는 그날 눈밭 위에 서 있던 내 신발, 그리고 그 신발이 좋아 발코가 닳도록 신었던 나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눈 내리던 그 풍경만 기억하느라 내가 그 순간 그곳에 그 눈길 위에 서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보통 사진을 찍으면 사진의 피사체만 남지만, 사실은 그날의 풍경, 사람, 그리고 그 사진을 찍은 또 한 사람이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을 가끔씩은 기억할 필요도 있겠다. 그래야 나의 존재도 잊히지 않고 그 풍경에 늘 함께 남을 테니.
나에게 겨울 이미지는 언제나 2월의 눈밭 풍경이 가장 강렬하다. 그래서 나는 12월부터 벌써 다음 해 2월의 눈을 기다린다. 특히나 올해는 첫눈이 싸라기눈으로 끝나버렸으니 더더욱 그럴 것 같다.
올 겨울에도 살얼음 같은 하얀 눈밭에 다시 서 볼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그전까지 다친 발부터 어서어서 다 낫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