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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학하는 CEO Apr 07. 2024

4년 만의 이사 준비

폭풍 같던 4년의 정리, 새로운 시작

암사동 집에서 마지막 주말을 보내고 있다. 이 집에서 4년을 살며 수많은 주말을 보내왔지만 마지막 주말이라고 생각하니 더 각별한 마음이 든다. 헛헛한 마음에 집안 곳곳을 둘러본다. 이 집으로 이사 올 때 찍어두었던 집 안 곳곳의 사진들을 비교해 봤다. 큰 차이가 없었다. 미니멀 라이프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기에 물건들을 쌓아 두질 않는 편이다. 4년 간 늘어난 것이라곤 사실 책 밖에 없다. 


4년 전 운명처럼 이 집을 구했다. 직장과의 출퇴근 거리, 한강에서 러닝을 하고 싶다는 생각 등 여러 조건을 고려했을 때 천호 인근을 생각하고 있었다. 부동산을 통해 여러 군데 집을 찾아가 봤지만 내 마음에 완벽하게 드는 데는 찾지 못했다. 점점 이사 나가야 하는 날이 가까워오며 조급한 마음이 들 때쯤, 부동산을 통해 천호 오피스텔을 보고 난 뒤, 우연히 암사에 오게 되었다. 한 번도 와본 적 없고, 전혀 생각에도 없는 곳이었기에 아무런 기대감 없이 눈에 보이는 부동산에 들어가 봤다. 


부동산 아저씨는 나의 조건을 들어보더니 딱 맞는 곳이 나왔다며 바로 가보자고 했다. 레고 박스 같은 이쁜 집이었다. 집을 둘러보니 모든 조건이 다 마음에 들었다. 한강까지 1km - 러닝가능, 풀옵션 투룸, 넓은 테라스, 병렬식 지정주차, 암사역 도보 3분, 암사 시장 도보 1분 등. 바로 그 자리에서 계약을 했다. 그렇게 4년을 살았다. 


이사를 오고 나서 넓은 테라스를 그냥 둘 수 없어 퍼팅 연습기를 사서 퍼팅 연습을 해보기도 하고, 던지면 펼쳐지는 텐트를 사서 텐트에서 잠을 자보기도 했다. 편한 침대를 놔두고 뭐 하는 짓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운치가 있고 처음 해보는 경험이라 좋았다. 테라스에서 맥주도 마셔보고 와인도 마셔봤다. 책을 읽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처음만 재미있었지, 2~3번은 재미가 없었다. 그 뒤로는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나랑 잘 맞지 않아 당근으로 다 팔아버렸다. 혼자 그러고 있으니 궁상맞아 보였던 게 가장 컸던 것 같다.




집으로 이사 온 지 재계약을 해야 하는 2년째, 큰 위기가 닥쳤다. 당시 나는 직장인 생활을 그만두고 창업을 한 뒤 회사로부터 보수를 받지 않는 무보수 대표를 하고 있을 때였다. 재계약 시점에 집주인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집주인이 주변 시세를 고려해 전세자금을 2천만 원 올려야 한다고 했다. 사정을 설명해 보았지만 다른 집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인상 없이 재계약을 생각하던 나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별별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휘감았다. 이러다 집에서 쫓겨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대표이지만 월급이 없는 나에게 은행에서는 전세대출 연장 재계약을 해줄까?', '연장을 해준다면 추가 2천만 원을 더 대출받을 수 있을까?', '안된다면 추가 2천만 원은 어떻게 마련하지?', '이대로 신용불량자가 되는 건 아닌가?', '다시 원룸 생활로 돌아가야 하는 건가?' 등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나를 공격했다. 


하지만 그 부정적인 생각들이 나를 온전히 지배하도록 두진 않았다. 원래의 긍정적이고 행동지향적인 나로 돌아가려고 노력했다. 정신을 차리고 하나씩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 일단 은행에 연락을 해서 전제자금 대출 연장이 가능한지 확인을 했다. 다행히 한 번 더 연장은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다만 소득이 없기에 증액은 안된다고 했다. 이제 2천만 원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강연 등 개인 활동으로 모아둔 돈과 비상금 등 내 모든 걸 털어보니 딱 1천만 원은 확보가 되었다. 빈털터리인 줄 알았으나 1천만 원이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해결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으니 적은 금액이지만 돈이 들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1천만 원은 도저히 확보할 방법이 없어 집주인과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집주인과 카페에서 만나 먼저 나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했다. 작은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고, 어려운 시기를 돌파하는 중임을 이야기했다. 상황은 점점 나아지고 있고 비전도 있지만 현재 가진 돈은 이게 전부라고 보증금 인상을 1천만 원 낮춰줄 것을 요청했다. 집주인은 내 이야기를 다 듣더니 보증금 2천만 원 인상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주변 시세가 있는 데 그렇게 낮춰주는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나서 안된다고 했다. 


다만, 추가 1천만 원은 지금 당장이 아닌 연말로 미뤄주겠다고 했다. 2년 간 살며 어떠한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았고, 역량 있는 젊은 청년이 잘 살아보고자 하는 그 열정이 좋아 보인다며 집주인은 선의를 베풀어줬다. 원했던 1천만 원 감액은 얻어내진 못했지만 그래도 당장 집에서 쫓겨나진 않게 되어 안도를 했다. 감사 인사를 하며 최대한 빨리 갚겠다고 하며 그 자리를 마쳤다. 


집에 와서 맥주 한 잔을 하며 여러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다. 이 복잡한 상황을 해결했다는 안도감과 선의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슬픈 감정도 들었다. 그 당시는 회사는 극초기였기 때문에 나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도 블랙홀처럼 날 빨아들이기만 할 뿐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였다. 하필 그러한 시기에 연장 계약을 했던 것이다. 회사나 잘 다니고 있었으면 아무런 걱정 없이 연장 계약 또는 더 좋은 곳으로 이사할 수도 있었을 텐데... 희망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폭풍과도 같은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마음을 가라앉힌 뒤, 내가 왜 이 사업을 시작했는지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왜 이런 고생스러운 길을 가고 있는지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창업하기 전에 썼던 일기를 읽어보며 초심을 다 잡았다. 다 내가 선택한 길이고, 더디긴 하지만 조금씩 한 발 전진하고 있지 않은가? 나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간 이루지 않겠는가? 전세 연장 계약을 하며 나는 한 단계 더 성장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뒤 회사로부터 월급을 받게 되어 1천만 원은 약속된 연말 전에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모두 갚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만들고 있는 화장품을 선물로 드렸다. 그렇게 나는 집에서 덤으로 2년을 더 살 수 있었다. 




대형 쓰레기봉투를 샀다. 살림살이가 많지 않은 편이지만 그럼에도 버릴 것은 왜 이렇게 많은지 정리를 해도 해도 끝이 없다. 가급적 다 비우고 떠나고자 한다. 물건들을 정리하며 지난 추억들을 한 번 되새긴 뒤, 물건들은 버렸다. 잘 비워야 잘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다음 주 금요일이면 암사를 떠나 자양동에서 새로운 추억을 쌓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 펼쳐질 새로운 삶을 스스로 응원해 본다. 안녕 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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