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윤 Feb 01. 2024

이 날을 기뻐하며 춤들을 추자

아일랜드 결혼식의 하이라이트_피로연 이야기

남자 친구인 제임스를 만나기 위해 아일랜드를 방문했던 그 해 여름, 나는 풍경이 아름다운 산 위에서 청혼을 받았다. 결혼을 결심한 뒤 내가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우리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성당에서 예식을 마치고 피로연을 치를 호텔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아일랜드 커플들은 피로연 준비에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고 했다. 결혼식 피로연 문화가 생소한 나로서는 저렴하면서도 위치가 좋은 곳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고, 제임스도 같은 생각이어서 시내의 언덕에 있는 가성비 좋은 호텔을 찾아 계약을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드레스 대신 예식에 입을 한복을 맞추고, 청첩장도 만들었다. 그렇게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준비를 마치고 편도 비행기 표를 사서 결혼식을 한 달 앞두고 아일랜드에 도착했다. 우리는 다음 날부터 결혼식 준비에 여념이 없었는데, 한국처럼 ‘스드메’를 준비해 주는 웨딩플래너가 흔하지 않은 곳이어서 모든 것을 직접 준비해야만 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아일랜드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하다못해 베일을 쓸 때 사용할 ‘실 핀’을 살 수 있는 가게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독립심이 높은 편이었던 ‘나’는 순식간에 제임스의 가족들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역시 내가 처한 현실이었다. 그러니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그다음엔 뭘 해야 할까요?’를 물어가며 하나씩 결혼식을 준비해 나가는 수밖에는 없었다.


어느 정도 물리적인 준비가 다 되어가던 어느 날, 제임스와 체크리스트를 지워가다 그의 목록에서 ‘댄스 연습’을 발견했다. 결혼식은 먼저 성당에서 예식을 끝낸 다음 장소를 이동해서 피로연을 즐기게 된다. 피로연의 1부는 식사와 가족들의 연설로, 피로연 2부는 춤을 추며 연회를 즐기게 된다. 그런데 피로연의 2부는 신랑과 신부의 단독 커플 댄스로 시작하게 된다. 제임스는 “다른 사람들은 댄스 레슨도 받는다고 하던데, 우리는 그냥 자연스럽게 추는 게 좋을 것 같아.”라고 말을 하며 목록에서 줄을 그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피로연장에 도착했다. 한복에서 드레스로 갈아입은 뒤 하객들이 기다리고 있는 피로연장으로 제임스의 손을 잡고 들어갔다. 피로연 1부에서 양가 부모님의 축복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한국어로 아빠가 하는 말을 남동생이 통역을 하면서 아빠의 스피치가 시작되었다. 아빠는 아장아장 걷던 첫째 딸이 어느새 자라서 아일랜드로 시집을 간다고 하니 슬픈 마음을 가눌 수가 없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 대목에서 나뿐만 아니라 많은 하객들의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했다.



식사가 끝나고 호텔의 직원들이 순식간에 테이블을 치우자 피로연장은 어느새 커다란 공간이 만들어졌다. 나는 엄마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제임스가 내 손을 잡고 무대 중간으로 나갔다. 드디어 커플 댄스 시간이 다가온 것이었다. 사실 우리는 연습을 하지도 않았고, 춤추는데 재능도 없었지만, 그래도 두 팔을 꼭 잡고 무대 위에서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한 달간 결혼 준비로 늘 긴장감에 사로잡혀 있던 나의 마음은 부드러운 음악과 함께 녹아내리며 평화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의 춤이 끝나고, 피로연의 2부가 시작되면서 DJ는 신나는 음악으로 분위기를 전환했다. 모든 사람들이 무대 중앙으로 나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온 내 동생 부부뿐만 아니라 엄마 아빠도 신나게 춤을 추기 시작하셨다. 가끔 노래방에서 두 분이 신나게 노래 부르시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즐겁게 춤을 추시는 두 분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두 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빠의 연설을 들으며 느꼈던 슬픈 마음이 더 이상 들지 않았다. 그리고 부끄러움을 잠시 꺼내 두고 나도 열심히 춤을 추며 놀고 싶은 생각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피어났다.



춤을 추면서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피로연에 모인 하객들은 대부분 막춤에 가까웠지만 한껏 진지하게 몸을 흔들면서 서로의 모습에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정말이지 시간이 지나 밤이 깊어 가면 깊어 갈수록 공간은 탄성과 웃음소리로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나도 하객들 사이에서 제임스와 함께 기분 좋게 춤을 추고 있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나와 제임스가 주인공이야. 우리의 결혼은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받아 마땅한 기쁜 일이고. 오늘은 영원히 기억될 정말 기쁜 날이야.’라고 말이다.



피로연 댄스 타임으로 약속된 시간이 다 되어 가자 제임스와 나는 DJ에게 약간의 팁을 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DJ는 최근에 이렇게까지 하객들이 진심으로 즐기는 피로연은 본 적이 없다면서, 추가 요금을 받지 않고 흔쾌히 시간을 연장해 주겠다고 했다. 그의 호의를 고마워하면서 나는 또 습관적으로 “그럼 이제 뭘 해야 할까요?”라고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DJ는 윙크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뭘 하긴요. 기쁜 날. 그냥 흔들어 재껴야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