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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꾸 Mar 19. 2022

연인의 반대말은 인연이다. 2

 옷 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얘기가 있다. 세간에 돌아다니는 말을 들어보면, 전생에 한 마디라도 나눴던 사람이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옷깃이라도 스치며 지나간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것들조차 인연이라고 말하기에는, 인연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너무 퇴색돼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모든 것을 인연이라고 하기 위해서, 얕음과 깊음으로 그 의미의 중요도를 따질 수는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기준들을 통해서, 대게 얕다고 하는 인연들의 숫자나 혹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미래에 대한 잠재적 필요성을 기대하며 지나가려고 하는 인연들에 연연할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최근에 인연이라는 말이 떠오를 때면, 그 말에 확실한 의미를 더하는 편이다. 옷깃을 스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 것. 간단한 대화로 끝나지 않는 것. 하루 이상의 짧지 않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과 같은 간단한 주관적인 의미를 더한다. 그러면, 주변에 인연이 닿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 많지 않은 사람들을 조금 더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지나가려는 인연에 시간과 의미를 쏟지 않는 것은, 여러모로 일상에 유용하다. 과거의 사람들을 찾아보며, 그들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여, 패배감 또는 우월감이라는 악재적인 감정들을 느낄 필요가 없다. 패배감은 내가 가진 삶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우월감은 내가 가진 삶에 굳이 허상을 키우기 때문이다. 특히 우월감은 인터넷 매체나, 들리는 구설수를 통하여 알게 되는 이야기들로부터 유입되는 것이라, 그들이 나은 사람인지, 내가 나은 사람인지 알 방법이 없다. 그저 지나간 인연의 허상과 나를 비교하며, 볼품없는 우월감에 취하는 것과 같다.



연인


 연인은 조금 더 특별한 인연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성 혹은 동성과는 별개로 성적인 사랑이 가미돼야 하는 것이니까. 또 절묘한 시기와 관계로 이루어진 인연을 통해서만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감정들은 보통 준비가 되었다고 찾아드는 게 아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내 안에 잠겨 들고 있으며, 보통의 인연이라고 하기에는 자꾸만 머릿속을 간지럽히며 찾아든다. 


 처음 소개를 받았을 때 그랬다. 누군가를 진지하게 만나고 싶지는 않았으나,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나 보자 했다. 심지어 외롭지도 않고, 갓 회사에 입사하여 앞으로 돈은 많이 모으겠구나 싶었다. 게다가 만남을 약속했던 당일, 나는 약속했던 시간에서 30분을 더 기다리고 나서야 그녀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연은 때와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다. 내가 시작도 하기 전에,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던 그때는, 어느새 가장 특별했던 때로 기억되고 있다. 무의미함 속에서 시작하는 관계는 쉽사리 기억에 젖어들지 못한다. 순간을 의심하게 만들고, 상대방이 내뱉는 친절한 말들을 회피하게 만든다. 이런 것들은 분명 첫인상에 비롯되는 것들이다. 그 달갑지 않은 시간 속에는 텅 빈 미소만이 가득하다. 하지만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는 순간부터, 감정이 담긴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인연이라는 것은 불가항력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부터는, 머릿속이 간질거렸다. 보통의 인연이었던 것은 어느새 내 안에 잠겨 들어, 더 이상 보통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만큼 특별해지기 시작한다. 한창 코로나 유행이 시작할 때 몇 번이나 받게 되었던 검사들은 심장을 무섭게 쿵쿵 두드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보통의 인연들과는 다른 사랑이라는 특별함이 가미된 연인. 그런 특별함이 생기긴 위해선 분명 서로의 노력이 필요했었다.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려는 노력, 그리고 그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기 위한 노력. 그런 노력들을 통해 인연은 서서히 가슴속에 젖어들기 시작한다. 인연으로 시작하여, 연인으로.



연인의 반대말은 인연이다.


 연인은 평생을 끝까지 함께 걸어가기도 하지만, 서로가 감정의 극에 달하면 같은 극의 자석처럼 서로 등을 돌리기도 한다. 연인이 다시 인연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은 고통을 수반한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에 심장은 덜컥이고, 머릿속은 철사가 강하게 꼬인 듯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인연이라는 엉켜버린 철사를 풀지 못한 채 끊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오히려 좋다. 끊어 버린 철사는 버려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러면 그저 그런 지나가버린 인연이 되는 것이다. 아프지도, 신경 쓰지이 지도 않는.


 누구나 똑같다. 감정이 극에 달하는 이유는, 그 전의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 높은 산을 이뤘기에 극에 달하게 되는 것이다. 감정을 쌓지 않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가 않다. 보통 사람처럼 행동하고, 보통 사람처럼 이해해주면 되는 것. 그저 인간이라는 틀을 벗어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쌓을 것도, 쌓일 것도 없다. 인연은 때와 상황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지만, 그 순간을 놓치면, 언제 올지, 어떻게 올지, 아니면 오지 않을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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