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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꾸 Aug 31. 2022

나의 어제는, 나의 내일

지금 당장,

나라는 사람이 괜찮은 사람임을 증명해보라.


 머리를 번쩍이며 회전해보지만, 내가 괜찮은 사람임을 증명하기에 썩 좋은 근거가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방금 설거지를 했는데, 할 일을 미루지 않았으니 꽤 괜찮은 사람이려나?


 우리는 대게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나쁜 사람, 이상한 사람, 떨어지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기반으로, 나는 매일 밤 ‘내일은 좀 더 나은 사람,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 있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로 잠을 청한다. 다음 날, 알람을 끈 뒤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을 때, 어제와 비슷하다 싶으면 다행이다.


 하루가 시작되고, 밖으로 나가 따가운 햇빛이 느껴질 때, 곧 괜찮은 사람은 한 발 물러나 그림자 뒤로 사라진다. 이제 곧 나라는 사람을 생각할 겨를이 없어진다. 한 달마다 밑 빠진 통장에 생명수를 채워 넣으려면, 나 말고 남을 위해 일해야 하니까.


 오늘 나는 괜찮은 사람일 수 있을까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면 나는 괜찮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생의 나는 반찬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 어머님이 차려주시는 음식은 곧 보약이다 (라고 생각하진 않았겠지만)라고 생각하는 듯, 번듯이 일 인분을 다했다.


조금 더 자라서 대중교통을 타고 다닐 땐, 노약자가 보이면 자리를 양보했다. 양보라는 의젓한 행동이 부끄럽다는 듯이 “여기 앉으세요.. 오.” 하고 속삭이며 자리를 내줬고, “아니 괜찮아, 학생!”라며 어르신이 큰 소리로 거절하시면, “저 이번에 내려요!”라는 양보하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을 툭 뱉어내고, 버스의 반대편 끝으로 몸을 숨기거나, 지하철 옆 칸으로 부리나케 도망쳤다. 괜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간, 내리지도 않을 정류장에 내려야 한다거나, 내린다고 하고 내리지 않으면, 우리 사이에 뭔가 고맙지만 멋쩍은 민망함이 느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자라서, 성숙함이 묻어나는 학창 시절에 끝자락에서는, 교실의 조용한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 말을 걸곤 했다. ‘우리 교실은 하나다!’ 하고 다 같이 친하게 지내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아마 누군가에게는 위선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 시절 나에게는 순수함이 가득했다.


성인이라는 날개를 갓 펼친 직후, 작은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몸이 제멋대로 휘청였다. 나는 낯선 바람에 적응하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비행을 배우는 아기새처럼, 둥지에서 떨어져 바닥에 내리 꽂히기 전, 먼저 비행에 성공한 형제들과 무리를 이루기 위해 부단히 날개를 팔랑거려야 했다. 포기하지 않으니 어렵사리 무리의 끝자락을 따라갈 수 있었다.


사회에 꽤 적응해 나가면서, 나는 배우기도 했지만 가르치기도 했고, 베풀기도 했지만 받은 것도 많다. 포기하고 도망간 적도 있고, 울고 싶지만 입술을 꾹 물었을 때도 있으며, 가끔 이기적으로 굴 때도, 한없이 배려한다 싶을 때도 있다. 지금 이 순간은, 아직 알지 못하는 게 많지만, 모든 것을 다 겪어 본 사람의 행세를 하는 중이기도 하다. (ㅋㅋ)


인생의 오전 6시, 지난 새벽을 보낸 결산을 치르자면,

반찬투정을 하지 않은 덕에, 사랑하는 사람이 차려주는 밥은 항상 맛있다.

나보다 먼저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학생들을 보면, 괜히 내가 다 뿌듯하다.

얼마 전, 예전 담임선생님을 통해, 소심한 자신에게 가끔 말을 걸어줘서 고마웠다는 그 시절 동창의 메시지를 받고는 기분이 날아갈 듯 행복했다.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깨달았다.

매콤한 사회의 쓴맛은, 나의 비겁한 모습을 따끔거리게 해 주었다.


지나간 어제의 모든 나는, 괜찮은 내일의 나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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