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혁꾸 Nov 14. 2022

모르는 길이 너무 많다.

 세상에는 모르는 길이 많다. 한 지역에 살고 있어도 그곳의 모든 길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리고 나날이 발전하는 지역 사회 덕분에 목적지로 향하는 길들은 이미 아주 편안한 뚫려있기 있다.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그 틀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끝이 막혀있을지 모르는 낯선 길을 가야 할 이유도, 가야 할 시간도 없으니까. 사람들은 익숙한 도로 위에서 신호에 맞춰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초등학교에 다닐 적에는 집과 학교 사이에 있는 동산을 넘어 다녔다. 처음 등교할 때부터 산을 넘어 다닌 것은 아니었다. 시작은 어머님이 알려주신 보도블록이 깔려있고, 같은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이 오 다니는 평범한 등굣길을 걸었다. 어느 날, 친구들과 놀겠다고 집 앞의 동산을 올랐을 때 산의 신비로움을 깨달았다. 하늘은 가린 나무의 그늘과, 나뭇잎이 흔들거리는 소리가 그때 한창 했던 게임의 배경을 닮아있었다. 그 이후로 나의 등굣길은 그 동산을 넘는 것이었다. 동산을 넘는 길은 학교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했고, 그 분위기에 젖어 동생과 함께 작은 수풀 속 아지트를 만들기도, 친구들과 함께 언젠가 다시 돌아오자는 약속과 함께 타임캡슐을 잘 묻어 놓기도 했다.


 연휴에는 항상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로 즐비하다. 서해, 동해, 남해 그리고 내륙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다. 새벽이 아니라면, 남들 다 떠나는 시간을 피하고자 조금 일찍 출발한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같다. 사람들은 생각이 전부 비슷한 생각을 하니까. 나의 여행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 번은,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다 보니 고속도로를 타지 않는 일반 국도를 따라 여행을 하게 되었다. 고속도로와는 10분 차이로 별 차이 나지 않으니 그냥 가기로 했다. 나름 괜찮았다. 신호는 있지만 차는 안 막혔고, 어릴 적 가까이 지냈던 하우스를 지나쳤다. 삼십 분 뒤에는 뙤약볕을 즐기는 벼가 나왔다. 창문을 열면 고속도로의 매연이 아닌, 세속을 떠난 세간의 바람이 불었고,  차 안으로는 순식간에 거름냄새가 그득 채워졌다. 서늘한 바람이 쓸려내려 오는 구불거리는 산길 정상의 산맥에서는 속세에 찌든 마음을 날려 보냈다. 이 길 위에는, 자본주의의 무료함은 없고 고즈넉한 분위기만이 나의 여행을 채울 뿐이었다.


 한 지역에 살고 있어도 그곳의 모든 길을 다 알 수는 없다. 내비게이션도 그렇다. 목적지로 향하는 큼직한 길들 만을 안내해준다. 차가 막히기 시작하자, 나는 옆에난 작은 골목으로 차 머리를 틀었다. 왠지 목적지로 향하는 지름길로 이어져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는 30분 늦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 골목은 되돌아가는 골목이었다. 운이 없는 건지, 바보 같았던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 본능에 대한 고집은 계속됐다. 끝이 막혀있기도 하고,  지도에 나있던 골목은 경차 하나 지날 수 없는 좁은 골목이기도 하고, 뚫려 있으나 일방통행 인적도 있었다. 하지만 거듭된 시도와, 여러 번의 실패는 하나의 성공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렇게 알아낸 지름길에는 애착과, 자부심이 생겼다. 익숙한 길을 가다 정체가 생길 때면, 나는 어김없이 골목으로 차 머리를 돌린다. 아무도 선뜻 따라오지 않지만, 가끔 백미러에는 호기 있는 누군가의 그림자가 드리우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면, 자신이 아는 가장 빠른 길을 알려주기 위해 노력한다. 걸어갈만하다, 버스를 타야 한다, 갈 수 없다. 사람들은 타인이 알려주는 가장 빠른 길을 걸으며 안주하고, 갈 수 없다는 말에 포기한다. 흔쾌히 길을 알려준 은혜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나는 더 편하고 빠른 길이 있지 않을까, 못 간다고 하지만 갈 수 있는 길이 있지 않을까 하며 새로운 길을 탐구한다. 세상에는 같은 곳으로 향하는 수많은 길이 있고, 그중 모르는 길이 있다면 내가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길을 찾기 위해 시도하고 도전해야 하는 이유는, 모든 이가 비슷하게 생각하여 생기는 정체길에, 아무도 키가 닿지 않아 넘겨보지 않았던 어느 담장 너머의 길은 지독히 한산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