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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Mar 02. 2022

캠퍼스에 봄이 왔다, 드.디. 어.

대학 캠퍼스를 누비는 즐거움

출근길, 차가 막혔다. 늦게 나오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차가 막히는지 의아하던 차에 불현듯 오늘이 무슨 날인지 상기했다. 아, 개학일! 내 차 카시트에도 유치원 첫 등원을 앞두고 설레 하는 아이가 타고 있었다. 코로나로 직장인들은 재택근무, 학생들은 원격교육한다고 한산했던 도로였는데 지난날들과 달리 자동차들로 꽉 차 있으니 다소 생경했다.


 오전 내 바쁜 일과를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건물 밖으로 나오니 봄기운이 물씬 느껴짐과 동시에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동료 직원 한 명이 말했다.

- 학교에 학생들이 이렇게 많은 거 진짜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요!

그랬다, 낯선 풍경의 정체는 바로 캠퍼스를 가득 메운 학생들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전염병 사태로 인해 캠퍼스에 학생들이 사라지자, 1년 사계절 내내 새싹이 돋아날 듯 생기 가득했던 대학이 흑백 사진의 한 장면처럼 멈춰있었다. 어느새 무채색 단조로움에 익숙해져 있던 모양이다. 젊음의 색이 이토록 푸릇했음을, 이토록 화려했음을 깨닫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겨울의 기운은 봄날의 기세에 밀려 저만치 물러난 듯 보였고 3월의 한낮에 어울리는 가벼운 옷차림들이 눈에 띄었다. 청춘의 한가운데에 드리운 내 그림자가 오늘따라 한껏 젊어진 듯했다.


삼삼오오 모여 웃고 떠드는 학생들의 모습을 가만히 눈에 담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나의 스무 살, 나의 대학시절이 두둥실 구름처럼 떠올랐다. 그렇게 즐거운 기억은 아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하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적성과 관계없이 집에서 멀리 있는 대학과 전공을 선택했었다. 천상 문과생인 나는 세무회계과에 도통 정을 붙이지 못했고 중급회계와 통계학을 공부하면서 이 길이 내 길이 아님을 직감했다. 아름다운 캠퍼스 잔디에서 짜장면을 시켜먹고 친구들과 수업 땡땡이를 치며 추억을 만드는 낭만 비스름한 그 무엇도 대학생활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졸업사진을 찍지 않았고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학교 생활에 충실하지 못하는 대신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회에 일찍 발을 담갔다. 돈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했으므로 당위성은 충분했다. 부모님께 용돈 받아 쓰면서 요즘 유행하는 화장은 어떤 스타일인지, 어느 브랜드 옷이 예쁜지, 이번 방학에는 해외 어느 나라로 여행을 갈지 친구들과 하하호호 수다 떠는 시간조차 내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임을 알면서도 그때는 그랬다. 어쩌면 그때는 알지 못했던 것도 같다, 인생에서 반짝이는 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철이 좀 늦게 들어도 괜찮다는 것을.


제주도로 내려올 때 직장에 대한 몇 가지 대안 중에서도 대학교를 콕 집어 선택한 데에는 잠재적인 그리움이 한몫을 하지 않았나 싶다. 사무실에서 일을 할 때에는 전형적인 직장인이지만 건물 밖으로 한 걸음만 걸어 나오면 햇살이 쏟아지는 대학 캠퍼스를 누비는 스무 살의 내가 있다. 벚꽃길로, 중앙도서관으로 발길 닿는 곳으로 걷다 보면 노루를 마주치기도 한다. 우리 회사가 산 1번지에 자리 잡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봄이면 벚꽃, 개나리, 철쭉으로 흐드러지는 꽃향기가 그윽하고 여름에는 초록으로 가을에는 낙엽으로 색을 달리하며 겨울에는 캠퍼스 너머로 눈 덮인 한라산이 가로로 내달리는 이 곳은 어느 하루도 같은 모습인 날이 없다. 무엇보다 꽃보다 아름다운 청춘들이 가득한 곳, 대학에서 오늘도 나는 일을 한다.

<본관에서 학생생활관으로 가는 길에 마주친 노루. 서로 마주보고 흠칫 놀란 것은 우리 만의 비밀이다. 처음 만난 녀석이 아닐 수도 있다.>


* 이미지출처: 픽사베이, 스탠포드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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