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자가격리 후 업무에 복귀했습니다
자가 격리 동안에는 출근이 하고 싶더니 막상 출근하는 날 아침이 되니 출근을 안 하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느낌표가 반드시 세 개 이상 찍혀야 한다.)
코로나로 일주일간 격리된 후 업무 복귀를 하는데 마치 복직 첫날 같이 낯설었다. 그래도 아침 인사는 밝고 우렁차야 제 맛 아니겠는가?
- 오, 몸은 좀 어때, 괜찮아?
- 아이고 죽겠어요...
아직 다 낫지 않았다고 엄살을 조금 부려보았는데 거짓말은 아니었다. 무증상으로 지나간 사람들도 많다지만 그건 운이 좋은 경우이고 자가격리 기간이 종료되었어도 나에게는 약간의 후유증이 남았다.
<내가 느끼는 코로나 후유증>
1. 코막힘과 가래, 기침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2. 식은땀이 줄줄 난다.
3. 앉았다 일어나면 순간 눈앞이 까매지고 어지럽다.
4. 앉아있으면 울렁거린다.
5. 미각과 후각이 전과 같지 않다.
- 카페라테가 아무 맛이 나지 않음
6. 집중력이 떨어진다.
7. 무릎, 어깨 평소 비올 때 아프던 곳의 증상이 심해졌다.
출근하자마자 재잘재잘 코로나 후유증을 읊어댔더니
- 달콤달달 목소리를 들으니 사무실이 사람 사는 곳 같네!
급여 담당 선생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 그렇죠, 내가 없으면 사무실에서 그렇게 티가나더라!
너스레를 떨었더니 팀장님과 동료들이 나의 넉살에 맞장구를 치며 거들었다.
- 달콤달달이 없으니 사무실이 마비야. 일을 못해.
- 제가 어딜 가나 그렇게 존재감이 있는 편이에요.
- 하하하! 호호호!
아침부터 사무실에 웃음소리가 들리자 과장님께서도 슬며시 우리들 쪽으로 다가오셨다.
- 달콤달달이 출근하니까 사무실에 생기가 도는 것 같네! 공기가 달라!
- 저희도 그 얘기 중이었습니다! (또다시 하하하)
업무 시작 전 동료들과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니 부담감이 조금 달아났다. 매일 출근하던 사무실 이건만 이렇게 오래 자리를 비워본 적이 처음인 데다 3월 7일부터 팀 및 업무 변동으로 자리도 바뀌었다. 1년 넘게 손에 익은 업무 대신 새로운 일의 프로세스를 익혀야 하는 상황에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됐던 모양이다. 무엇보다 업무 인수인계가 시급했다. 격리 직전 주말에 후임자를 따로 만나 한 차례 업무 흐름을 설명하고, 격리 기간 중에도 원격으로 업무 시스템에 접속해 전화로 소통하며 함께 일처리를 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더 마음이 조급할 뻔했다. 나도 업무를 받아야 했는데 이전 담당자도 새로운 업무를 익히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당장 급한 현안사항은 없다는 그의 말에 일단 한숨을 돌렸다. 전임자가 작성해둔 인계인수서를 읽어보고, 문서를 접수하고, 새 업무 중 내가 할 수 있는 지출결의서 작성 및 자금이체 업무만 처리했는데도 시간이 정신없이 흘렀다. 집중하는 만큼 식은땀도 덩달아 목덜미에서 등줄기로 타고 쉴 새 없이 흘렀다. 코로나 이전에 겪어본 적 없는 몸상태에 적잖이 당황스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불쑥 유치원에 간 아이도 잘 지내는지 마음이 쓰였다. 가뜩이나 이전 어린이집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중이었는데 새 유치원에 적응이란 걸 좀 해보려다 말고 거의 열흘을 쉬었으니 첫 주에 등원했던 3일은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 셈이다. 감사하게도 방과 후 선생님이 아이들을 돌봐주시는 시간이 되자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예상했던 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등원해서 거의 한 시간 동안은 홀로 앉아 책만 보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 못했다고. 대신 바깥놀이를 시작하자 활기를 되찾았고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배고프다며 밥은 언제 먹는지 물었다면서 아이가 의사표현을 분명하게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선생님 말씀으로 통화가 종료되었다. 아이가 잘 지내고 있다고 하니(집에 와서 들은 아이의 이야기눈 조금 달랐다. 아이는 유치원에 있는 동안 마음이 이상하다고 한다. 낯설고 어색한 유치원에 하루 빨리 적응하면 좋을 텐데.) 마음을 놓아도 될 것 같다. 업무를 하면서도 한편에는 아이에 대한 '걱정방'에 불이 켜졌다 꺼졌다 한다. 휴대폰 발신정보에 유치원이 뜨는 순간은 보통 비상이다. 어디 다쳤나? 데려가라는 전화인가? 하고 말이다. 오늘의 전화는 안도의 전화였다. 덕분에 오후에도 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한 자리의 고유한 업무가 할 만 해지기까지 꼬박 1년은 필요하다. 매 월, 분기, 반기를 거쳐 4계절을 지나야 업무 한 바퀴를 온전히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다음 1년은 업무를 하면서 불편했던 점을 개선하고, 미흡했던 점을 보충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실적과 실력을 동시에 쌓을 수 있는 시기이다. 한 업무를 최소 2년은 해야 어디 가서 작은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게 된다. 그다음 3년 차에는 부서를 이동할지 잔류할지 고민을 하게 되는데 나라면 부서 이동을 선택할 것 같다. 여의치 않다면 업무 변경이 차선책이다. 3년 동안 같은 업무를 하게 되면 간장감이 낮아지고(보통 매너리즘에 빠진다고들 한다.) 느슨해지는 틈 사이로 실수가 파고들 수 있음이다. 휴직을 하고 싶었지만 업무를 변경하는 것으로 타협점으로 삼고 사무실에 남게 된 후임자의 경우 6개월 만에 업무를 변경했다. 업무를 소화하기도 전에 익히느라 에너지 소비만 한 상태에서 완전히 새로운 업무를 다시 맡은 건데, 회계를 해 본 경험도 없고 계약 업무를 해 본 적도 없는 데다 물품관리 업무는 더욱 생소할 터였다. 승낙사항 간소화(간이 계약) 처리를 위해 화면을 보며 설명해주면 열심히 노트에 무언가를 적으며 의지를 보이는가 싶다가도 눈동자는 흔들렸고, 네, 네 하는 대답은 공허하게 느껴졌다. 기존 업무가 더 나은 것 같다며 후회를 하고 있을까? 6개월만 더 참았더라면 어땠을까? 아니면 예전대로 휴직을 강행했어야 했나? 그녀의 표정이 자꾸 내게 그녀의 속마음을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사람은 평생 자기 얼굴을 직접 대면하지 못하고 거울을 통해서 반사되는 모습만 볼 수 있다. 그 사람의 얼굴과 표정은 타인의 눈빛으로만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나는 오늘 후임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 불안과 걱정을 읽었다. 내 전임자는 내 얼굴에서 어떤 표정을 보았을까? 상대를 속이고, 나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전술이 위장이다. 직장 생활을 잘한다는 것은 어쩌면 위장을 잘한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소심함은 감추고 대범함으로, 위축된 마음은 자신감으로, 감정이 앞설 땐 이성을 끄집어내어 불리함을 유리함으로 치환하는 능력도 직장인에게 꼭 필요한 위장술이 아닐까 싶다. 내가 가진 패를, 밑천을 모두 그러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오늘 나는 긴장되고 걱정되는 마음을 농담과 웃음 뒤로 슬쩍 감추었다. 대신 이번 업무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기효능감의 가면을 꺼내어 썼다. 처음엔 가면까지 써 가면서 일을 해야 하나 싶은 순간도 올 테지만 머지않아 가면이 아니라 자신을 지켜주는 갑옷임을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중요한 건 위선이 아니다, 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