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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Nov 28. 2022

돈이 없으면 욕심이라도 없던가?

욕심부려도 괜찮아!

‘드르르르르’

커피 내리는 소리가 갈수록 요란한 게 아무래도 제 수명을 다해가는 모양이다. 하긴 10년 다 되어가니 그럴 만도 하다. 지금껏 사용하고 있는 네스프레소 캡슐커피머신은 공무원 합격하고 오빠가 사 준 선물이다. 엄밀히 말하면 일방적 ‘선 구입, 후 청구’ 되시겠다. 시험을 준비하기 전 오빠는 합격만 하면 B사의 mini 자동차를 중고로라도 사주겠다며 파격적이고 구미가 확 당기는 당근을 제시했었다. 합격 후, 오빠에게 ‘어서 약속한 자동차를 내어 놓으라’며 으름장을 놓았지만 단지 동기부여를 위함이었을 뿐 내가 정말로 합격할 줄 몰랐다는 궁색한 변명을 여전히 듣고 있을 뿐이다. 이토록 뻔하고 예측 가능한 결말이었기에, 4천만 원짜리 자동차를 40만 원짜리 커피머신으로 퉁친 것이야말로 오빠와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가장 현실적인 합의였을 것이다.


‘블랙위크‘ 기간의 특별한 할인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광고 알림이 뜨자, 눈보다 빠른 손이 클릭을 해버린 탓에 화면은 이미 가정용 커피머신 판매 사이트로 넘어갔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들여다보고 있는 브랜드인데 그중 선호도가 높은 모델의 가격이 20% 할인되어 빨간색 굵은 글씨로 표시되어 있었다. 할인이 되었다고 해도 1백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이다 보니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며칠째 눈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세일 마지막 날인 오늘 다시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이미 품절이다. 오히려 잘 됐다, 어차피 사지도 못 할 건데 미련을 두어봤자 속만 쓰리다. 어디 머신만 있다고 커피를 마실 수나 있나? 커피 찌꺼기를 버리는 넉박스부터 홈카페를 위한 이런저런 소모품에 무엇보다 커피 원두까지 구비하려면 그 비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100만 원이면 집 앞 컴포즈커피에서 아메리카노를 무려 666잔을 사 마실 수 있다.

<세일을 하는데 왜 사지를 못하니...>


사실 쇼핑 사이트마다 결제하지 못하고 담겨만 있는 물건들이 몇 개 있다. 스탠드형 스피커가 그렇고 이번에 새로 출시된 밥솥이 그렇다. 가지고 싶긴 하나 꼭 필요하지는 않은 것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집이 무슨 대궐처럼 큰 게 아니니 휴대폰에 내장된 스피커로 음악은 충분히 들을 수 있고, 지금 사용 중인 밥솥도 기능적으로 고장 난 데가 없다. 그저 내 욕심이다. 돈이 많으면 무슨 고민이겠는가마는 무엇을 살 때에는 필요성과 중요도, 시급성을 따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명품가방은 좀처럼 내 차지가 될 수 없고 커피머신이나 고급 스피커, 신형 밥솥 또한 당분간은 더 장바구니 안에 머무를 예정이다.

<우주비행선 같은 스피커와 심플한 밥솥. 머지않아 만날 수 있길.>


성적은 안 되는데 좋은 대학에 가고 싶고, 스펙은 초라한데 좋은 직장에 다니고 싶고, 조건은 평범한데 좋은 집안의 배우자를 얻었으면 싶고, 돈은 없는데 좋은 건 다 사고 싶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욕심의 단면들이다. 엄마는 늘 욕심 많은 나에게 높은 곳을 쳐다보고 살면 목만 아플 뿐이라고, 낮은 곳을 보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라고 하신다. 그런데 꿈도 이상도 없이 현실에 만족하며 사는 삶은 행복할까? 욕심부리지 않았다면, 하여 악착같이 살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여전히 햇빛이 들지 않아 눅눅하고 곰팡이 핀 벽지에 둘러싸인 단칸방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 욕심은 어떤 면에서는 삶을 살아가게 해 주는 원동력이자 생에 대한 애착의 동기가 되어줄 수도 있다.


성적을 올릴 수 있도록 잠을 줄여서라도 공부에 매진하고, 이력서에 필요한 스펙을 대신할 다양한 경험을 쌓고, 나 자신의 가치를 높여 더 많은 돈을 벌면 이상에 가까운 현실의 삶을 살 수 있다. 경계할 점은 가까스로 현실을 끌어올렸을 때 이상이 더 멀리 달아나는 것일 게다. ‘좋은’의 기준은 나로부터 시작되어야지 남의 기준이 내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서울대가 좋은 대학인 건 알지만 평소 수능 모의고사 5등급인 수험생이 목표로 삼기에는 무리이고, 벤츠가 좋은 차인 건 자명하지만 월급 200만 원인 사람이 타고 다니기에는 벅차다. 물론 사람 앞 일은 예측이 어려우므로 수능 당일 대박을 치고, 로또 1등에 당첨되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일어나기 힘든 행운이나 기적일 뿐이다. 요행을 바라며 매일을 살 수는 없다. 이상과 현실 사이 적당한 타협점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번 주에도 로또 복권에 당첨되지 않았고, 내 월급 또한 뻔할 뻔자이지만 장바구니에 담긴 커피머신과 스피커와 밥솥이 우리 집에 오는 날이 머지않은 미래였으면 좋겠다. 끝끝내 사지 못 할 수도 있지만 가지고 싶다는 마음에는 돈이 들지는 않는다. 붕어빵 하나에 천 원이 아까워 발길을 돌리고, 베개를 새로 사는 것도 큰맘 먹어야 가능한 나이지만 좋은 것을 보면 마음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남의 것을 탐내지 않는 선에서, 노력이 미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욕심 조금 부리며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 사진출처: (커버사진 제외) 각각 브레빌코리아, 뱅앤올룹슨, 쿠쿠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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