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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Nov 22. 2022

김밥전을 부쳐 먹었다

고물가 시대에서 살아남기

추앙해 마지않는 농심 사발면이 1,000원, 엄마 손 잡고 목욕탕에 갈 때면 어김없이 손에 들려있던 바나나우유가 1,700원인 시대가 왔다, 오고야 말았다. ‘엄마, 100원 만!‘ 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만 원을 가지고 마트에 가도 바구니에 담기는 게 몇 개 되지 않는다. 필요한 먹거리 몇 가지와 아이가 먹을 과자 서너 봉지를 담으면 몇만 원은 훌쩍 넘곤 한다. ’내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우스갯소리에 더 이상 웃지 못하게 되었고, 이 달에도 급여는 통장에 잠시 스쳤다가 소리 소문 없이 빠져나가 버렸다.


아파트 입구 주변에 긴 줄이 늘어섰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겨울보다 먼저 붕어빵 트럭이 찾아와 있었다. 팥앙금 가득 머금은 토실토실하고 뜨끈뜨근한 붕어빵을 많은 사람들이 기다려 온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붕어빵 가격이 1개에 1,000원이다! 작년에는 그래도 3개에 2,000원이었는데...... 긴 줄에 내 몸 하나 더 보태볼까 서성이다 이내 마음을 접었다.

’붕어빵이 비싸서가 아니라 기다리는 줄이 너무 길었어!‘

사실은 라면 값이 오르고, 우유 값이 오르고 이제는 붕어빵까지 가격이 오른 것에 대한 작은 반항 같은 것이었다.


 “겨울 코트. 가난은 겨울옷으로 티가 나요. 여름엔 그럭저럭 남들 비슷하게 입을 수 있는데 겨울옷은 너무 비싸니까요”

최근 종영한 드라마 <작은아씨들, TVN>에 나온 대사이다. 겨울옷뿐이겠는가? 겨울이라는 계절을 나기 위해서는 다른 계절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든다. 집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난방 시스템을 가동해야 하고, 몸을 씻기 위해 물을 데울 수도 있어야 한다. 어릴 때 연탄보일러가 고장 난 집에서 전기장판과 가스난로, 두껍고 무거운 솜이불로 몇 해의 겨울을 지냈었다. 커다란 들통에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에 데워서 머리를 감고 목욕은 일주일에 한 번 목욕탕에서만 할 수 있었다. 수돗가는 곧잘 얼어 빙판이 되기 일쑤였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살금살금 걸어 다녔다. 5학년 때 엄마가 10만 원을 주고 산 베네통 브랜드의 코트를 고3 때까지 입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봄은 더디게 다가왔고, 겨울은 천천히 지나갔다. 붕어빵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옛날 생각이 났다. 가난의 허물을 벗어낸 이후에도 그때의 기억은 고드름을 쥐고 있는 손처럼 시리기만 하다.


그날 저녁, 냉장고에서 차가워진 김밥을 꺼내 노오란 계란물에 적셔 들기름을 두르고 노릇노릇 부쳐낸 김밥전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전 날, 회사에서 체육의 날 행사를 준비하면서 과 회비로 동료들과 김밥+사발면을 나누어 먹고 남은 두 줄이 채 안 되는 김밥을 챙겨서 가지고 왔던 것이다. 번거롭다거나 비위생적이라는 이유로 남은 음식을 싸 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여러 명의 숟가락으로 휘저어진 국물 요리가 아니고서는 대체로는 이다음에 먹을 한 끼로 충분할 때가 많다. 음식이 버려지는 것도 막을 수 있고, 티끌이지만 모이면 태산이 될 수도 있는 몇 천 원을 아낄 수도 있다.(그 몇 천 원으로 로또를 사 볼까 싶다, 여전히 로또만이 희망이다. 후후훗.)


요점 젊은이들 사이에서 무지출 챌린지가 유행이라고 한다. 최대한 돈을 쓰지 않고 생활을 하는 것인데 이를 실천하기 위해 타인에게 밥을 사 달라거나, 커피를 사 달라는 등 민폐를 끼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고 한다. 고물가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아니 버텨내기 위해 짜낸 고육지책이겠으나 내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 귀한 만큼 상대의 주머니 속 돈도 귀한 법이다. 나의 무지출이 상대의 지출로 이어지는 어리석은 무지출 챌린지 대신 참신하고 신박한 소비 습관을 고민해 보아야 할 때이다. 붕어빵 대신 뱃속을 맛있게 채워준 김밥전은 평범한 인생들의 주머니 사정에 대한 고려 없이 날이 갈수록 빳빳이 고개를 쳐들고야 마는 고물가와 맞서기 위한 나만의 준비운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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