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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Mar 15. 2022

부부 사이에서 기념일은 중요한가?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또 무슨 데이?

밤 10시가 다 되었을 때쯤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하던남편이 말했다. (왜 남편들은 늘 이와 같은 모습인지 모를 일이지만)

- 오늘 화이트데이였네?

달력을 보니 2022년 3월 14일.

- 그러네, 오늘이네.

남편의 건조한 목소리만큼 심드렁한 나의 대답이 이어졌다. 그러고 보니 밸런타인데이도, 결혼기념일도 다 챙기지 않고 지나갔다. 나이가 들어 시들해진 건지 잡은 물고기에 미끼를 주지 않는 마음인 건지 사실 잘 모르겠다. 다만 이 결혼 생활이 너무 행복해서 매 년 결혼으로 맺어진 날을 기념하고 축하할 만큼 손꼽아 기다려지지 않음은 분명하다. 남편과 나 둘 다 챙기지 않았으니 누구 하나 억울할 일도 없고 꽤 공평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결혼기념일도 지나치는 마당에 화이트데이인들 챙길쏜가. 그렇다고 처음부터 기념일을 챙기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결혼을 하던 해에 아이가 생겼다.(축복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신혼을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한 켠에는 있다.) 이듬해 2월에 우리 첫 결혼기념일이 있었는데 근무하던 학교 행정실로 꽃바구니가 배달되었다. 남편의 서프라이즈 선물이었다. 꽃바구니라니. 서프라이즈라니. 극사실주의 장르에 로맨스가 불쑥 끼어든 느낌이었다. 그런데 꾸깃하게 구겨진 기억 한 모퉁이를 펼치자 남편이 남자친구이던 시절 로맨틱했던 그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종종 기차역에 꽃다발을 들고 나타나거나 가방 속에 꼭 한 송이를 숨겨 나를 마중하곤 했다. 커피 전문점에서 어떤 커피를 주문해야 하는지도 모르던 제주 촌놈이 나를 위해 케이크를 미리 예약하기도 했더랬다. 그때는 꽤 감동을 받았던 것도 같다. 그런데 아이처럼 좋아했었던가? 부모님께 용돈 받아쓰며 공부하는 그의 가벼운 주머니를 걱정하느라 마냥 좋아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꽃바구니를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짧은 감동 뒤에는 '이게 돈이 얼만데!' 하며 억척스러운 주부 모드가 발동했다. 운전도 못하고 차도 없던 때 8개월 만삭의 몸에 커다란 꽃바구니까지 들고 버스를 탈 수 없었던 탓에 택시를 탔고 택시비를(대략 만 원) 결제하며 또 이놈에 꽃바구니 때문에 택시까지 탔다며 구시렁거렸던 기억이 난다.


<첫 결혼기념일에 받은 꽃바구니. 신혼 초 심플했던 거실의 모습은 지금과 사뭇 다르다. 달라진 거실 풍경만큼 우리 부부도 변했다.>


꽃바구니든 꽃이든 보기에는 좋은데 금방 시들기 마련이고, 버려지게 된다. 꽃을 즐기는 여유로운 마음이라는 것도 어쩌면 돈으로 얻어지는 익숙함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순간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기 위해 그 정도의 돈을(내 기준으로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것이 당연할 테지만 나는 조금 마음이 불편했다. 그렇다고 티를 팍팍 내지는 않았다. 대신 하루라도 더 두고 볼 양으로 불뚝 나온 배를 안고 꽃을 하나하나 꺼내 말리는 작업을 통해 꽃들에게 조금의 시간을 더 벌어주었다.

<빨래 건조대에 꽃 말리는 클라스>

그런 모습이 남편에게는 동기부여가 되었는지 아이를 낳고 복직한 후 맞이한 결혼기념일에 두번째 꽃바구니가 근무지로 날아들었다. 그리고 시든 꽃을 버리던 날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꽃바구니는 더 이상 받고 싶지 않다고, 차라리 현금으로 달라고 말이다. 남편은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어떤 결의를 다졌던 것도 같다. 그 눈빛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는 살면서 금방 알 수 있었다. 그 일 이후, 남편은 단 한 송이의 꽃도 집에 들이는 일이 없다. 현금으로 달라는 말까지는 하지 말았을 걸.  넉넉지 않아도 그저 예쁜 걸(남편 기준으로는 꽃) 주고 싶은 남편의 순수한 마음을 온전히 받아주지 못한 것 같아 지금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렇게 결혼기념일이 우리 부부 사이에서 지워졌다.


삐그덕 거리는 부부 사이에는 윤활유가 필요하다. 기념일 또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밥이 아무리 맛있다고 한들 매일 밥만 먹으면 지겹기 마련이다. 가끔은 매운 라면을, 또 가끔은 스테이크를 먹는 것처럼 부부 사이에도 크고 작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결혼 6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사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낯선 제주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바쁜 남편이 의지되지 않았고 외로웠다. 존재만으로 힘이 되기는커녕 나의 불행의 원천은 남편이라고 생각하니 결혼 생활에 대한 절망감과 회의감이 나를 집어삼켰고 남편은 그런 나를 지켜보는 걸 힘들어했다. 살얼음 위에 집을 지은 듯 온기 없이 냉랭한 부부 관계가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을 때 남편의 퇴사가 전환점이 되었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긴 남편이 육아를 함께 하기 시작했고 아이도 조금씩 자라 내 손을 덜 타자 비로소 여유가 움트기 시작했고 고개를 돌리니 남편이 보였다.


작년부터 나의 생일에는 남편이, 남편의 생일에는 내가 케이크를 미리 주문했다가 아이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초를 껐다.(그렇다, 우리 부부에게는 몇 년 동안 생일도 없었다.) 선물도 따로 없고 제대로 차린 생일 상도 없었지만 우리들의 소울푸드인 배달음식이면 족했다, 사라졌던 기념일 중 생일을 되찾은 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했으므로. 이제 남아있는 결혼기념일만 되돌리면 될 것 같은데 올 해도 이미 지나가버렸으니 내년까지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여전히 비싼 꽃바구니는 내 취향이 아니니 매년 결혼기념일마다 그만큼의 돈을 지금 후원하고 있는 어린이재단에 더 지원하면 어떨지 남은 기간 동안 머리를 좀 더 맞대야겠다.


부부로 연을 맺고 살아가는 일은 어쩌면 등산을 하는 것처럼 오르고 내리고 험난했다가 평평해지는 굴곡진 시간을 견뎌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함께 오르는 이가 곁에 있으니 든든할 수는 있겠지만, 손 잡아 주는 이가 함께 걸으니 기댈 수는 있겠지만, 결국 한 발 한 발 걸음을 옮기기 위해서는 오롯이 내 힘이 필요하다. 산행이 지칠 때 미리 준비한 초콜릿이나 오이를 꺼내 먹으며 땀을 식히고 다시 나아갈 힘을 얻듯, 결혼 생활에서 기념일을 챙기는 소소한 다정함이 부부로 살아가는 여정에 달콤한 휴식이 되어줄 것이다.



* 남편이 혹시 이 글을 본다면

- 여보, 나 꽃 한 송이는 좋아. 마흔을 넘기니 엄마들이 왜 꽃밭에서 사진을 찍는지 알 것 같아.


<꽃이 좋은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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