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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Jan 27. 2023

각 방 쓰던 부부가 한 방을 쓰게 됐다고, 갑자기?

아이의 분리수면이 가져온 뜻밖의 결과

설날이 지나 떡국을 먹고 진정한 7살이 된(아직 바뀐 나이 셈 법이 익숙지가 않아 그냥 7살로 쓴다) 아이가 사뭇 비장한 말투로 엄마, 하고 불렀다.

- 나 이제 혼자 잘 거야. 내 방에서!

아이 방은 진작부터 있었으나 아주 아기일 때부터 분리수면을 해오지 않아서인지 몇 번 시도했던 잠자리 독립은 번번이 실패였다. 한 번만 더 같이 엄마랑(아빠랑) 자면 안 돼? 라든지 혼자 자면 가위눌릴 것 같다 말을 하며 품에 파고드는 아이에게 우리 부부는 이번 한 번 만이야! 하며 자못 생색을 내었지만 사실은 아기 냄새 폴폴 풍기는 보드라운 살결을 더 오래 안고 싶은 마음에 유야무야 이제까지 함께 잠을 자고 있었다.


막연히 초등학교 입학할 쯤이 되면 자연스럽게 따로 자게 되겠구나 하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아이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던 거다. 설날이 지나자마자 (잠자리) 독립 선언이라니!

- 우와, 대단한데?

양쪽 엄지손가락을 바짝 치켜들고 아이의 호기를 응원했지만, 잘 때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슬며시 내 옆으로 와 누울 테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잠잘 시간이 다가와 목욕을 할 때였다. 머리를 감기고 몸을 씻기고 나니 아이가 욕조에서 조금 놀고 싶다고 했다.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여느 때처럼 놀이를 끝낸 아이가 '엄마!'하고 부를 테고 그럼 다시 들어가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고, 로션을 발라주고, 옷을 입혀 데리고 나온 뒤 머리까지 뽀송하게 말려주는 것으로 목욕이 마무리되는 정형화된 순서가 있었다. 아이가 또다시 엄마, 하고 부르며 문을 열고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 엄마 부르지!

책을 읽느라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나? 엄마를 부르기 위해 아이가 거실로 나왔나 보다 생각하면서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려는데 바로 눈앞에 아이가 서 있었다. 갈아입히려고 가지고 들어갔던 내복을 스스로 챙겨 입고서 말이다. 머리에 물이 뚝뚝 떨어지지 않는 걸로 봐서 수건으로 머리카락도 털어냈고, 몸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걸로 보아 바디로션까지 바른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 엄마 내가 수건으로 다 닦고 로션까지 바르고 나왔어!

목소리에는 힘이 잔뜩 들어갔고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 서려있었다.


여섯 살에서 일곱 살이 되었을 뿐인데, 하룻밤 차이일 뿐인데 '울애기'는 온데간데없고 낯선 '형아' 한 명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아이는 드라이어로 혼자 머리까지 말린 뒤에 자기 방에 들어가 이부자리에 누웠다.

볼뽀뽀와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불을 끄고 아이 방을 나오려는데 아이가 말했다.

- 엄마, 나 오늘 왜 혼자서 다 했는지 알아? 엄마가 별이 때문에 힘들까 봐.

- 어, 정말? 엄마 하나도 안 힘든데!

- 엄마 이제 배도 많이 나오고 나 닦아주고 하려면 힘드니까 내가 다 한 거야. 나 다 컸지? 아빠한테 내 옆에 와서 잠자지 말라고 꼭 전해줘. 나는 이제부터 혼자 잘 테니까.

- 응 알겠어.

짧은 대답에도 목소리가 떨렸고 목구멍이 뜨거웠으며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차올랐다. 말을 길게 잇지 못했다.


가만, 아이가 방에서 혼자 잠을 자면 남편은 어디서 자지? 짧은 여운이 걷히자 현실 문제에 봉착했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낳은 이후 줄곧 각 방을 써 온 탓에 아이는 아빠 아니면 엄마랑 잠을 잤다. 엄마랑 잘 때는 안 방 침대에서, 아빠랑 잘 때에는 아이방에서 이불을 깔고 잠을 잤는데 이제부터는 아이가 독립을 하겠다고 나섰으니 남편의 잠자리가 문제였다. 방 3개 중 아이방 안 되고, 옷 방 안 되면 남은 선택지는 안 방뿐이었다.

- 여보, 오늘부터 우리 같이 자야 돼. 애기가 오늘부터 혼자 잔다고 자기 방에서 자고 있어.

12시 넘어 들어온 남편도 아이가 혼자서 잠들어 있는 모습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한참 동안 아이 자는 모습을 지켜보더니 나는 거실에서 자지 뭐, 하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 거실 추워서 못 자. 그냥 나랑 같이 자. 여보 요즘 살 빠져서 그런지 코도 심하게 안 곯더라고.

- 어색할 거 같은데...

- 그러게...


아이의 갑작스러운 잠자리 독립은 각 방 쓰는 부부가 한 방, 그것도 한 침대에 눕게 만드는 뜻밖의 결과를 가져왔다. 나는 불뚝 나온 배를 조금이나마 편하게 하려고 바디 필로우를 다리에 끼운 채 침대 한쪽으로 돌아누웠고, 만삭의 아내를 둔 남편은 로맨스는 고이 접어 가슴에 품고 침대 다른 쪽으로 몸을 돌려 누웠다. 마주 보고 잠들어도 됐을 텐데 각자 편한 방향으로 몸을 누이자 등을 맞댄 꼴이 된 것이다. 킹 사이즈 침대 한 가운데 텅 비었다. 한 때는 남편의 가슴팍에 언 코를 녹이던 시절도 있었건만(나는 겨울이면 손, 발, 코가 차가워지는 수족코냉증이다) 지금은 숨이 막히는 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나란히 둘이서 누운 시간이 어색할 틈도 없이 남편은 코골이를 시작했고(살이 빠지니 코 고는 소리가 작아지긴 했다, 확실히) 코 고는 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나도 금방 잠이 들었다. 새벽녘에 잠에서 깬 아이의 발소리가 타타타타 들리더니 안 방 문이 열렸다. 나는 남편과 나 사이에 아이를 누이고 팔을 내어줬다. 셋이 누우니 킹사이즈 침대가 꽉 찼다. 아이에게서는 여전히 달큰한 아기 냄새가 났다. 얼마나 더 잠을 잤을까? 커튼 사이로 여명이 밝아왔고, 아침잠을 깨우는 알람이 울렸다. 우리 세 식구가 나란히 아침을 맞이한 첫날이었다.


덧) 부부가 각 방을 썼던 이유는 이러합니다(제 글에 링크다는 걸 선호하지 않지만 혹시 궁금해 하실까봐;; 1년도 넘은 글이라 찾기 힘드실까봐;;)

https://brunch.co.kr/@hyk09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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