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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달달 May 09. 2023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지는 남자

여보, 겨드랑이가 왜케 까매?

벌써,라는 말이 식상하긴 하지만 벌써 5월이고 벌써 25도를 웃도는 기온이다. 날씨는 더워지는데 아기는 안고 있을 때만 깊은 잠을 자니(밤잠이라도 바닥에서 자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갓난쟁이 체온과 내 체온이 더해지면 몸이 후끈후끈하다. 또 목욕이라도 시키고 나면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히기 일쑤이다. 땀이 났으니 옷을 벗어재끼고 시원하게 샤워를 하면 좋겠지만 물소리 때문에 아기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할까 봐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씻지 못할 때가 많다. 남편이 있는 시간이어야 가능하단 소리다. 내 몸 하나 씻겠다는데 필요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다니 육아의 세계는 이렇듯 최소한의 우아함도 허락하지 않는다.


샤워를 끝내고 나면 머리를 말리는 게 또 은근 일이다. 싹둑, 단발로 자르고 싶으나 아들내미가 엄마의 긴 머리를 고집하니 쉽게 자를 수다 없다. 머리가 길러야 예쁘단다, 그나마. 이 세상에서 우리 엄마 다음으로 나를 예쁘다고 말해주는 아들의 바람을 지켜주기 위해 당분간은 어깨 넘는 긴 머리를 유지할 생각이다.(아들 키우기 쉽지 않음) 뜨거운 바람으로 전체적으로 한번 말리고 시원한 바람으로 모발 끝쪽을 말리는 10분 남짓의 시간 동안 이내 또 더워진다.(갱년기가 가까워지는 걸 수도) 적당히 말렸으니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마르게 두기로 한다. 더워진 날씨에 걸맞은 민소매를 꺼내 입었다. 그러려고 샤워할 때 겨털도 깔끔하게 밀고 나왔으니.


남편이 아이를 안고 있는 시간이 나의 휴식시간이다. 책도 읽고 휴대폰으로 딴짓도 하며 내게 허락된 짧은 시간을 알차게 보낼 때쯤 치렁치렁한 머리가 신경이 쓰였다. 집에서는 똥머리가 여자들 국룰인 만큼 머리카락을 한데 모아 손목에 두르고 있던 고무줄로 칭칭 감으려던 때 남편이 무엇인가에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심지어 다급하기까지 한 목소리였다.

- 여보! 겨드랑이가 왜케 까매?

뭐라고?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임신했을 때는 더 까맸는데 그나마 돌아오고 있는 중인 상태가 이 정도인 거라고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빠른 이해를 돕기 위해 얼굴에는 기미가, 배 한가운데에는 임신선이 아직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출산한 지 이제 50여 일, 내 몸은 아직 회복 중이고 갈 길이 멀다고.


여자들이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겪게 되는 몸의 변화는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미스터리 그 자체이다. 일단 뱃속에 태아를 품으면서 빵빵히 불어나는 배가 가장 눈에 띄는 변화이지만 그렇게 뱃가죽이 늘어나면서 보기 흉하게 살이 트는 건 보이지 않는 변화이다. 태아가 커 갈수록 장기들의 위치가 달라지고, 눌리면서 소화불량에 속 쓰림을 유발하며 자주 소변을 보는데도 시원하지 않다. 허리 통증 및 다리 부종 역시 피할 수 없다. 피부의 방어 기능이 높아지면서 멜라닌 색소가 급격히 증가하여 없던 기미가 올라오고, 있던 기미는 더 짙어지며 같은 이유로 유두색도 거무튀튀하게 변한다. 몸무게가 급격히 늘어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지금 언급한 증상들은 임신 중 변화에 불과하고 심지어 모두 다 언급한 것도 아니다. 아, 남편이 왜 그렇게 까마냐고 놀라서 물어본 문제의 겨드랑이는 신진대사가 활발하지 않아 노폐물이 겨드랑이에 쌓이면서 평소보다 시커멓게 변하는 거라고 한다.(다시 한번 말하지만 돌아오는 중이다) 출산 후에도 헤쳐나가야 할 난관들이 만만치 않다. 우선 아이가 빠져나간 뒤의 뱃가죽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탄력을 잃어 늘어진 개 혓바닥처럼 축 쳐져있다. 또 임신 중 높은 수치로 유지되던 에스트로겐이 정상수치로 되돌아가면서 머리카락이 배수구를 막을 정도로 빠지는데 아이가 100일 될 즈음부터 시작된다. 아는 맛이 더 무섭다고 첫째 때 이미 겪어봤기에 더 두렵다. 이러다 대머리가 되는 게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이내 빠진 자리에 다시 자라나는 머리카락들로 인해 잔디인형이 되기 십상이다. 무엇보다 가장 무서운 건 출산 후 6개월 안에 원래 몸무게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모두 살이 된다는 무시무시한 후유증이다. 출산한 지 이제 2달이 다 되어간다, 4달 남았다. 후.


이 외에도 임신 중 받아야 하는 각종 검사들과 출산에 이르기까지 또 출산 후에도 수치심을 유발하는 과정들이 많다. 자연분만은 자연분만대로 제왕절개는 제왕절개대로 힘들고 고통스럽다. 여자로서는 감당하기 힘들지만 엄마로서, 엄마가 되기 위해 이 악물고 견뎌내는 시간들이다. 그러니 남편들이여, 부디 아내를 외롭게 두지 말기를, 분만실에서 아내와 조우했을 때 흘렸던 뜨거운 눈물을, 아기를 안고서 느꼈던 그 벅찬 감정을 살아가는 내내 기억하기를 당부하고 싶다. 우리 남편처럼 철없는 언사는 금물이다.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내에게 겨드랑이 드립이라니. 제발 그 입 다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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