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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흐름 Nov 16. 2020

가면 벗기.

진짜 자신 앞에 솔직해져야 한다.




 이제는 가면을 벗고 솔직한 자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계속해서 가짜 자아로 사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리면 본질적인 나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설령 가면을 쓴 모습이 진짜 자신보다 더 대단해 보인다고 해도, 우리는 가면을 내려놓아야 한다. 언제까지 가짜 인격으로 살 텐가? 나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가면은 내려놓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가면을 쓰면 상대가 우리의 진짜 마음을 눈치챌 수 있겠는가? 거꾸로 우리 역시 상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있을까? 이렇게까지 말해도 가면을 꼭 써야겠다면, 나는 말리지 않겠다.






- 나는 원래 씩씩한 편이 아닌데, 사람들 앞에서는 늘 든든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니 힘들어.

- 아, 나는 원래 높은 텐션인데 회사에서는 조용히 있어야 하니까 적성에 안 맞네. 일을 다시 찾아야 하나?

- 저는 원래 옷을 신경 써서 입는 편이 아녜요. 하지만 직업이 직업인지라 늘 신경 써야 하는 게 조금 지치네요

- 우리 남편은 직장에서는 존경받는 CEO인데, 집에만 오면 스트레스를 아내인 제게 풀어요..



 사람들은 자신이 진짜 원하는 모습과 사회가 요구하는 바가 다를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간극이 크면 클수록 자신의 정체성은 더욱 혼동되고 받는 스트레스 역시 따라 커진다. 그러므로 한 명의 사람으로서 자신을 잃지 않으며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으로서의 나"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의 나"를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이 글에서는 그 둘을 개념적으로 분석하고 본연의 나를 찾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번 글도 기본적인 이론을 먼저 설명한 뒤, 필자의 생각을 덧붙여서 이야기를 전개해보려 한다.




페르소나 : 사회적 인격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칼 융이 제시한 분석심리학의 일부를 소개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페르소나"에 대한 이해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칼 융이 제시한 정신 체계 모형


 페르소나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얻어지는 인격이다. 다른 사람을 만났으니 인사를 해야 하고, 마이크를 잡았으니 훌륭하게 발표를 해야 하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과는 격식을 차리는 것들은 페르소나의 역할이다. 다시 말해, 페르소나는 다른 사람 앞에서의 처신을 위해서 발생한 외적 인격이다.


 페르소나 역시 정신세계의 설명을 위해 등장한 개념이다. 페르소나 그 자체로는 긍정적인 의미도 부정적인 의미도 갖지 않는다. 직장에서의 모습과 자신이 훌륭하게 분리되어 일할 때도 행복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행복한 사람이라면 그 개인에게 있어서 페르소나는 아주 잘 자리 잡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직장에서는 애써 자신을 분리하여 업무를 처리하지만 집에 와서는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로 괴로워하는 사람에게는 페르소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것이다.


 원래부터 일과 자신의 분리가 잘 되거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이 글이 필요 없다. 지금까지 살던 대로 앞으로도 열심히 잘 살아내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 글을 기록하는 목적은 가짜 자신에 의해 본연의 자신이 잠식되는 사람들의 치료를 위해서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인간관계를 공부하는 이유이고, 심리학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완벽한 사람과 자신을 100%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완벽한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인구가 80억이 되든, 100억이 넘어가든 그중에 완벽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전능한 신이 아니고 사람이다. 완벽을 타깃으로 삼고 노력할 수는 있으나 완벽에 닿을 수는 없다. 아무리 훌륭해 보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결점이 있으며, 연약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한다.


 한 CEO가 있다. 회사 사람들은 CEO의 훌륭한 외모를 좋아하며, 비즈니스 수행 능력에 감탄하곤 한다. 시간 관리 능력이 철저하고 외국어에도 능통해서 이 사람이 못하는 일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이다. 회사 사람과 친구들 모두가 이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이 CEO는 집에서 남편과 둘이 살고 있다. 남편도 직장을 다니고 있는 사람이지만 소위 말하는 스펙이나 소득면에서 CEO인 아내에게 뒤떨어진다.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묘한 우월감을 느끼며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남편에게 풀곤 한다. 우리가 집중할 곳은 바로 여기이다. 이 CEO는 회사에서는 훌륭한 페르소나로 위장하고 있지만, 본인의 스트레스를 자신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남편에게 풀고 있다. 이 스트레스는 단순히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일 수도 있지만, 직장에서는 늘 "훌륭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집에서 해소되며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아내는 페르소나로 인해 잃어버린 영역을 남편에게 스트레스를 푸는 과정으로 보상받는 것이다. 칼 융은 이처럼 페르소나와 반대의 위치에서 보상 기능을 수행하는 영역은 아니마(아니무스)의 몫이라고 설명한다.


 바로 위 문단의 CEO는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연약함은 있었다. 그 연약함은 회사와 가정에서의 변덕, 남편에게 푸는 스트레스로 드러나고 있다. 이런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될 경우, 아내 스스로가 일과 집에서의 분리가 잘못되어 무너지거나 남편과의 마찰을 겪게 되어 인간관계가 악화되는 상황이 예상된다. 페르소나와 아니마로 인해서 하나의 개인이 정신적으로 손상을 입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자아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솔직함을 찾아나가는 방식으로 정신적 고통을 예방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 과정을 "자기 이해"라고 명하겠다. 자기 이해는 말 그대로 자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 이해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도 절대 100%의 이해를 가져오지는 못한다. 사람은 수시로 변하며 늘 무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를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는 그곳에 들인 노력이 반드시 우리에게 돌아와 행복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가면 벗기


 필자는 페르소나를 설명하며 그 자체에는 선악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미리 밝히었다. 하지만 여기부터는 페르소나가 자신의 고유 영역을 침범하여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상태를 가정하고 글을 쓴다. 대중이 원하는 모습에 자신을 맞춰나가다가 독자성을 잃고 살아가는 개인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진짜 자신을 찾는 연습이 필요하다. 진짜 자신은 예의나 격식, 일을 다 떠나서 우리가 가장 만족하는 상태의 자신을 의미한다. 최우선 과제는 사회나 문화가 요구하는 이미지에서 분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어떠할 때 침범받지 않고 편안한지를 떠올려보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발견된 자신이 페르소나 사이에 있는 진짜 자아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자신의 진짜 얼굴을 가리는 가면을 벗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아마도 우리는 스스로는 전혀 원하지 않음에도 타인과의 일시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혹은 업무의 안전한 진행을 위해 가면을 억지로 썼을 것이다. 처음에는 가면을 쓴 덕분에 일이 잘 진행되는가 싶었지만, 언제부터는 가면의 무게로 인해 큰 피로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선택권이 주어진다. 그 가면을 계속 쓰고 있을지, 아니면 내려놓고 진짜 자신을 조우할 것인지 말이다.


 이제는 가면을 벗고 솔직한 자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계속해서 가짜 자아로 사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리면 본질적인 나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설령 가면을 쓴 모습이 진짜 자신보다 더 대단해 보인다고 해도, 우리는 가면을 내려놓아야 한다. 언제까지 가짜 인격으로 살 텐가? 나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가면은 내려놓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가면을 쓰면 상대가 우리의 진짜 마음을 눈치챌 수 있겠는가? 거꾸로 우리 역시 상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있을까? 이렇게까지 말해도 가면을 꼭 써야겠다면, 나는 말리지 않겠다.


 가면을 쓰느냐 마느냐는 선택의 문제이다. 본인이 계산해봤을 때 가면을 쓴 모습이 더 낫겠다는 판단이 들면 써라. 가면을 벗어던지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때 벗으면 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하나 생긴다. 가면을 벗는다는 건 타인과의 관계를 끊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라는 말이 아니다. 가면을 벗으라는 것은 불편함을 치워버리고 본인이 가장 편안한 상태로 돌아가라는 말이지,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내면에 솔직한 나머지 다른 사람의 자아까지 침범해버리는 것은 우리의 과제가 아니다.




솔직해지기


 용기 내어 가면을 벗어내었나? <가면 벗기>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한 노력을 해낸 것이다. 여기까지 잘해주었다면 앞으로는 내리막길을 걷듯 쉬울 것이다. 가면을 벗었다면 이제 진짜 자신을 유지해야 한다. 애써 자신이 가장 평온한 상태로 돌아왔는데, 다시 타협하고 가면을 꺼내 든다면 지금까지 한 노력이 전부 물거품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가 할 과제는 <솔직해지기>이다. 



다른 사람이 부당한 대우를 할 때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솔직함.

자신에게 잘못이 있을 때는 상대에게 진심으로 미안함을 표현하기.

친구에게 서운함을 느끼면 어떤 부분들로 인해 힘들었다고 말을 꺼내기.

도저히 내 능력으로는 안 되는 일을 의뢰받았을 때는 거절하기.

 

 <솔직해지기>는 자신이 감정을 느끼는 하나의 인격체임을 기억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다. 내가 기분 나쁠 때 불편하다는 의사를 전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혹시 지금 '내가 싫다고 하면 여기 분위기도 깨지고 저 사람도 나를 좋지 않게 보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싫다.'는 말도 의사표현의 한 갈래일 뿐이다. 상황과 그 순간의 인간관계를 우선시하다가 진짜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해 버리면 다시 가면의 무게를 안은 채 살아가야 한다. 그 편이 더 힘들지 않겠는가?


 만약 당신이 "싫다."는 의사를 나타냈는데 그 말을 들은 상대가 당신을 싫어한다면 그 사람은 다음 중 한 가지에 속할 것이다.


- 자신은 싫어한다는 것을 쉽게 말하지 못하는데, 시원하게 싫어한다고 말하는 당신에게 분함과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

- 당신의 대답이 당연히 yes일 줄 알았으나, 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실망했다.

- 그냥 원래부터 당신을 좋게 보지 않았다.


 <솔직해지기>의 몫은 진짜 자신의 감정을 위해 정직함을 택하는 것이다. 솔직함의 전달로 인해 드는 상대방의 감정은 우리의 몫이 아닌 상대의 몫이다. 이 글에서는 거기까지는 손대지 않는다.


 솔직해지는 것이 두렵고 힘들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다. 행복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에게 공통되는 목표이다. 또한 대다수의 사람은 진짜 자신에 대해 솔직해지는 것이 자신을 속이는 것보다 더 편안하고 기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즉, 정직한 것이 좋다는 사실은 이미 머리로는 다 아는 사실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솔직해지기>를 원하고 있고, 당신이 만나게 되는 그 사람도 자기 스스로는 <솔직해지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니 솔직해지는 것에 너무 큰 부담을 가질 필요 없다. 올바른 사람이라면 당신이 위선으로 사는 것보다 솔직하게 사는 것을 응원해줄 것이다. 이 말을 믿고 진짜 자신 앞에 솔직해져 보자. 분명 가면을 쓸 때보다 큰 기쁨을 누리고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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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하라는 것은 상대를 신경에서 삭제하고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상대방을 적당한 선에서 인식하고 배려하는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만약에라도 상대가 나에게 도움을 청할 때는 언제라도 도울 수 있는 위치, 바로 그쯤에서 자신의 일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으면 된다. 이 바운더리가 명확하고 잘 지켜진다면 인간관계로 인해 무너지는 일은 지금보다 덜할 것이다. 나의 몫과 남의 몫이 무엇인지 늘 기억한다면, 그리고 상대방도 과제의 분리를 충실히 해내고 있다면 무의미한 충돌은 적어질 것이고 서로를 인격체로서 존중할 것이다.




[이것저것 생각 나눔]


 이 글에서 가면과 진짜라는 단어를 꽤나 여러 번 사용했습니다. 가면은 곳 거짓이고 진짜는 말 그대로 가짜와 대비되는 진실의 단어이지요. 이 파트에서는 솔직함과 더불어 "정직"이라는 키워드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저는 수많은 방송인과 크리에이터들을 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유튜브라는 거대한 영상 플랫폼을 통해 엄청난 양의 정보를 얻는 편입니다. 재밌는 영상을 보며 웃기도 하고, 미스터리 영상을 보며 별의별 생각을 합니다. 참으로 여러 감정과 생각을 겪는 저이지만, 유독 올해에는 유튜버를 포함한 여러 공인들을 보며 "정직"에 집중하게 됩니다.


 잘 활동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유성처럼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애를 연기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았지만 연극이었습니다. 자기가 노력해서 구매한 줄 알았지만, 거기에 하나도 없었습니다. 선심으로 입양하고 보살피는 줄 알았지만 아니었습니다. 사실이 아니라며 극구 부인했으나 거짓말이었습니다.


 하늘은 놀랍게도 거짓되고 부정직한 사람에게도 기회를 줍니다. 하지만 정직하지 않은 사람들은 금방 그 값을 치르게 되더군요. 대중에게 한 번 미움을 사면 쉽게 돌이킬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결국 정직을 져버린 채 사는 사람들의 말로는 불행 그 자체입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짱구 아빠 명언을 혹시 아시나요?


짱구 아빠 명언 중






하루만 행복하려면 이발소에 가라.
일주일만 행복하려면 차를 사라.
한 달을 행복하려면 결혼을 해라.
일 년을 행복하려면 집을 사라.

평생을 행복하고 싶다면 정직하게 살아라.

 

 필자는 사회 기준으로는 매우 어린 편에 속합니다. 현재 제 돈으로 마련한 차도 없고, 미혼입니다. 하지만 짱구 아빠의 마지막 한 줄, "평생을 행복하고 싶다면 정직하게 살아라."에는 공감이 됩니다. 네 식구를 책임지는 중년의 가장인 아버지가 정직하게 살라는 데 여기에는 토를 달 이유가 전혀 없더군요. 교훈으로 삼고 따라가고 싶은 문장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 없고 완벽하게 사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합니다. 정직하게 사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권이라고 봅니다. 짧은 길을 건너더라도 무단 횡단할지 말지, 선택하잖아요? 영상과 글의 재미를 위해서 거짓을 좀 보탤지 말지도 선택의 문제입니다. 잠깐 타협하고 거짓을 취한다면 그 순간에는 조금 편할 것입니다. 하지만 정직으로 살며 수호된 평생의 행복을 넘어설 수는 없을 겁니다. 글의 마지막에서 정직을 또 한 번 외쳐봅니다.


평생 행복하려면 정직하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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