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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흐름 Nov 26. 2020

비교의식.

사람과 사람을 견주는 모든 비교는 독이 된다.



 그러므로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무조건 독이 될 수밖에 없다. 자신보다 잘 나가는 사람과의 비교도, 자신보다 못 나가는 사람과의 비교도 결코 유익이 되지 않는다. 비교함으로 재미를 보거나 일시적인 위로는 느낄 수 있을지언정, 긍정적인 변화나 개발을 이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교의식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자신과 남을 비교해보았을 것이다. 또는 누군가에 의해서 비교당한 경험이 무조건 있을 것이다. 비교 심리는 사람들 사이에 기저처럼 깔려 있다. 스스로가 인식하면서 비교하기도 하고, 무의식 중에 길 가는 사람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기도 한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정말 진지한 마음으로, 가식 없이 자신에게 물어보는 거다.


여태껏 해온 비교는 나에게 유익함을 주었나?


3초 정도 생각해보았으면 충분하다. 이제 다음 단락으로 자리를 옮겨서 이야기를 나눠보자.






 사람과 사람을 견주어 판단하는 모든 비교는 결코 유익하지 않다. 이것이 비교 심리에 대한 나의 최종 분석이고,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진단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비교의 악한 부분을 설명하고 에세이로 풀어내었다. 비교는 곧 비참해지거나, 교만해지는 지름길이라며 말이다. 나 또한 이에 완전히 동의하는 바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단어카드를 꺼내어 각각에 선(善)과 악(惡) 스티커를 붙이라는 과제가 주어진다면, 나는 주저 없이 "비교" 카드에는 "악 스티커"를 붙일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비교는 절대악이다.


 '둘 중에 누가 더 낫냐?'라는 질문을 툭 던지면 아무리 비슷해 보이는 두 사람이라 하더라도 구분될 수밖에 없다. 비교가 끝나면 한쪽은 비교 기준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고 다른 한쪽은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 우월감과 열등감은 생각 직후에 자동적으로 드는 감정이라 피하기가 어렵다.


누가 더 공부를 잘해?? 아 진짜??

걔랑 얘 중에 누가 더 예쁘냐?

그 사람 너보다 돈 잘 벌어? 대박인데..

와, 저 사람 이번에 토익 900점 넘었다며? 난 아직 700점대인데..

음, 저 동생 나보다 늦게 시작했는데 벌써 매출이 억 소리 난다고?

야! 너 저 유튜버보다 구독자 적잖아! 까불지 마!


 사람들은 다양한 기준을 가지고 비교한다.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전부를 비교의 기준으로 삼는다. 키와 외모처럼 굳어진 특징은 기본이며 업무 수행 능력, 외국어 점수와 실력, 소유하고 있는 자동차, 경제력 등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들도 "측량할 수만 있으면" 전부 비교의 기준으로 긁어온다.


 웃긴 건 비교의 기준이 연령대별로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른바, 대한민국의 비교 코스 요리가 정해져 있다는 사실. 몇몇 비교는 비슷해 보이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맛이 미묘하게 다르다. 똑같은 음식이어도 어떤 소스로 버무렸는지에 따라 맛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1 : 누가 누가 공부를 잘하나?

1' : 누가 누가 대학을 잘 갔나?

1'' : 군대는 다녀왔고? 아직이라고?

2 : 누가 더 일찍 취업했나?

2' : 아니 그래서 지금은 누가 더 잘 버는데?

2'' : 너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차가 없냐

2''' : 결혼은 했니? 아직이라고? 모아놓은 돈은?

3 : 친구 남편은 휴가 내서라도 여행 가는데, 우리는 어디 안 가요?

3' : 아들, 네 짝꿍만큼이라도 공부해야지.

3'' : 아들, 누가 누가 공부를 잘하니?

3''': 아들, 친구들은 어디 붙었어?


 이쯤 되면 돌림 노래다. 대한민국의 경우, 사회 전반에 눈치를 주는 문화가 기저처럼 깔려 있어 남녀노소 비교의 타깃이 된다. 가끔은 비교의식을 자식에게 물려주기도 하는데, 이런 세태를 보고 있노라면 배달의 민족이 아니라 비교의 민족인가 싶을 정도이다.



비참해지는 비교: 열등감 문제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을 비교 대상으로 잡는다. 당연하지만,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이 40대의 의사와 자신을 비교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동갑이거나 재수하고 있는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보다 높은 수준의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여 스스로 비참해진다.


 사람들은 남과 비교한 뒤 패배하면 열등감에 시달린다. 필자도 입시를 겪은 세대이므로 경험을 빌려 이야기하자면, 대학 발표 후의 고등학교 교실은 서서히 비교의 왕국이 된다. 학생들의 모습도 다양하다. 노력에 비해 잘 간 사람, 노력에 비해 못 간 사람이 나뉜다. 여기서도 한 가지 기억할 것이 있다. 전교 20등 학생이 200등 학생과 자신을 비교하지는 않는다. 자신과 비슷한 점수대의 학생들 사이에서 비교를 할 것이다. 그리고 결과의 차이로부터 누군가는 열등감에 빠져버린다.


 SNS를 사용함으로 얻는 열등감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의 어플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이미 진실을 알고 있다. 어플을 한 번 투과하여 보이는 사진들이 대부분 과장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알고 있음에도 열등감에 빠지는 것이 문제이다. 본인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지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가장 나은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고, 그 작업에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기도 한다. 인간은 가장 자유함을 누릴 때 행복할 수 있는 법인데, 가면을 쓰고 있을 때 행복할리가 없다. 


 남과 비교하여 얻은 열등감은 사람을 피폐하고 어둡게 만든다. 연매출 10억을 올리는 사장이라 하더라도, 20억 CEO를 만나면 초라해진다. 20억 숫자도 100억을 만나면 속절없이 무너지고 만다. '아니, 억 소리 나는 비교여서 공감이 되지 않는다.' 혹은 '20억이나 100억이나 둘 다 엄청난 부자 아니냐?'라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충분히 잘 살고 있으니 남과 비교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해이다. 더 높은 수준에 있는 사람일수록 비교를 잘한다. 물론 그들은 열등감으로부터 벗어나는 법을 어느 정도 머리로 알고 있겠지만, 사람은 근본적으로 욕심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열등감 자체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교만해지는 비교: 우월감 문제


 앞의 비교가 비참함을 가져왔다면, 자신보다 낮은 사람들과 견주는 비교는 교만을 가져온다. 이때는 자신이 비교대상을 작위적으로 선택한다. 우월감을 느끼는 게 목적인 나머지, 일부러 자신보다 낮은 수준의 사람들을 쳐다보는 것이다.


 우월감에 빠지는 것은 열등감에 휩싸이는 것보다는 나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월감 비교가 더 무서운 것인지도 모른다. 열등감에 넘어진 사람은 자신의 상태가 나빠졌다는 것을 몸으로 직감할 수 있는 반면, 우월감에 노출된 사람들은 무증상이라 그 위험성을 알지 못한다. 


 지속적인 우월감 노출은 사람을 서서히 바꾸어 간다. 우월감은 열등감처럼 눈에 보이는 변화(컨디션 저조, 단순 스트레스 등)를 주지는 않지만, 개인의 화법과 마인드셋에 조금씩 영향을 준다. 혹시 알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무의식적으로 타인을 깎아내리거나 허세를 부리는 사람이 있는가? 변화가 지속되면 그 사람은 자신이 대하는 모든 사람을 통해 우월감을 느끼려 할 것이며, 자신에게 열등감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회피할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인간성의 원형을 벗어나는 심리이며, 열등감보다 치료가 힘든 문제점으로 남기도 한다.


 의도치 않게 우월감 비교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친구가 힘들어할 때, '야 너 정도면 괜찮지. 봐봐 저기 너보다 더 가난한 사람도 잘 살잖아.'라든가, '그 정도 다친 건 감사한 거야. 두 다리 없이 사는 사람도 있잖아, 응?'이라는 어설픈 위로가 여기에 해당한다. <나는 비교적 괜찮은 상황이다.>라며 자기 처지를 위로받으려는 마음도 결국에는 우월감을 느끼려는 일시적 해법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무조건 독이 될 수밖에 없다. 자신보다 잘 나가는 사람과의 비교도, 자신보다 못 나가는 사람과의 비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교함으로 재미를 보거나 일시적인 위로는 느낄 수 있을지언정, 긍정적인 변화나 개발을 이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신과의 비교는 건강한 비교인가?


 앞의 단락까지는 자신과 타인을 비교했다. 그렇다면 자신과의 비교는 어떠한가? 자기 개발서에서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여 발전을 도모하라는 메시지가 자주 등장한다. 물론 자신과의 비교를 적당히 응용하면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때의 비교도 제대로 된 목적성을 잃는다면 타인과의 비교와 다를 것이 없다.


 "건강한 비교는 성장을 이끌어낸다."라는 문장이 항상 참이라면, "성장을 이끌어내지 않는 비교는 건강한 비교가 아니다."라는 대우 문장도 참이 될 것이다. 만에 하나 우리가 자신과의 비교를 통해 성장이 아닌 다른 감정을 목표로 삼았다면, 이 비교는 건강하지 못한 비교가 된다.


우월감: '그동안 열심히 했으니, 오늘의 나는 쉬어도 돼'

열등감: '아, 나 지난번에는 정말 잘했는데, 왜 이번 학기에는 엉망이지?'


 자신과의 비교도 잘못 이루어지면 위와 같이 실족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따라서 이 비교도 스스로가 잘 해낼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특히, 어제의 나보다 항상 좋은 모습이어야 한다는 채찍질은 심각한 자기 착취의 모형이 될 수 있으므로 조심하여야 한다. 노력형 인간일수록 자기도 모르게 자기 착취를 하다가 심각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비교자의 선택권


 이제 비교가 치명적인 행동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사실이 한 가지 더 있다.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비교를 의뢰받거나, 업무로 받은 적이 없었다. 즉, 각 사람에게는 비교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수많은 비교를, 수많은 저울질을 해버렸다. 비교를 통해 얻는 감정이 이롭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 이유는 긴 시간을 통해 비교 안에서 자라왔고, 또 비교하는 습관이 무의식 속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비교의식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상당하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개인 차원으로는 마음속 저울에 다른 사람을 들이지 않아야 한다. 남을 반복해서 의식하는 행동은 열등감으로 이어질 뿐이다. 동시에 비교가 습관인 타인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들과 함께 있는 자리를 회피하는 것도 하나의 상책이며, 그 부류의 사람들과의 관계를 과감하게 놓아버리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사실 '비교 자체로부터 자유로워져라.'라고 외치고 싶지만, 이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 비교를 겪은 인간인 이상, 무의식의 영역에서는 비교가 끊임없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금연이 한 번에 되는 게 아니라 매 순간 유혹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변화를 위한 모든 노력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변화를 시도하고 비교의 늪에서 한 발짝씩 나오고 있는 중이라면, 이전보다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 글: <상대의 전부를 아는 건 불가능하다.>


다음화 미리 보기


 사람은 누구나 지속적인 시도와 노력을 통해 개인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생활패턴은 물론이고 성격 또한 바꿀 수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아.",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랬어."라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 사람이다. 바뀌는 사람과 바뀌지 않는 사람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그 사람의 노력이 스스로를 변화시킬 만큼 충분했느냐, 불충분했느냐가 다를 뿐이다.



[이것저것 생각 나눔]


 본문에서는 "사람과 사람을 견주어 비교하는 모든 비교는 나쁘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이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글에서는 인간관계에서의 비교는 독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비교가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핸드폰을 새로 마련할 때, S사 제품이 좋은지 L사 제품이 좋은지는 따져보고 사야죠. 수박을 살 때, '얘가 신선한가, 쟤가 나은가?' 하고 고민해보는 건 좋은 비교입니다. 이때의 비교는 사람과 사람을 비교하는 게 아니니깐요. 소비자 입장에서는 현명한 비교가 필요합니다. 아마 여기에 대한 글은 제가 아니라 제 어머니가 더 잘 쓰실 것 같아 따로 기록하지는 않겠습니다.


 한 가지 더, 자꾸만 주변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여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들께 다음 글을 나눕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만의 시간대"가 있습니다. 사회가 정한 기준틀, 친척들이 기대하는 시간대에 본인을 맞추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니깐요.


https://brunch.co.kr/@carly477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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