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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석 Mar 30. 2021

Day 2. 난관, 자전거와 산

양평 - 충주 : 중력과 관성

아침이 밝았습니다. 허벅지가 뻐근하고 엉덩이가 아팠습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습니다. 다행히 무릎 관절은 괜찮은 것 같았습니다. 생각보다 내 몸이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침대에 앉아 잠시 멍을 때렸습니다. 어제 세웠던 계획보다 1시간 늦게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영 개운하지가 않았습니다. 그래도 뭐 어떻게 해, 가야지... 생각하며 몸을 일으켜 세웁니다.


잠시 더 멍을 때리다 주섬주섬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습니다.


출발 준비, 이상 무.


어젯밤 지친 몸을 뉘인 모텔을 뒤로하고 자전거 안장에 몸을 실었습니다. 순간 어마어마한 안장통이 느껴졌습니다.


아직은 3월 초라 제법 쌀쌀한 양평의 아침. 양평을 조금 벗어나 아침을 먹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될 것 같습니다. 따뜻한 음식으로 배부터 채우고, 출발해야겠습니다.


순댓국은 늘 옳지.



식사를 마친 후,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고 앞을 향해 나아간 지 1시간 남짓, 오른편으로 엄청난 경치의 남한강이 펼쳐졌습니다. 문득 그래, 오길 잘했어,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어느새 안장통은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도로 위엔 시원한 바람과 즐거운 환희만이 가득했습니다.


(좌) 아름다운 모습의 이포보, (우) 남한강과 자전거




페달을 밟습니다. 앞을 향해 달리고 또 달립니다.

길이 시작되고, 멀어지고, 끝나갑니다.

곧 새로운 길이 시작되고, 또다시 멀어지고, 마침내 끝이 납니다.


그렇게 눈 앞에 펼쳐진 경치에 매료되며,

때로는 시원한 바람에 섞여 있는 무한한 자유로움을 느끼며,

다음 도착지 여주보에 도착했습니다.


참 이상하다, 난 분명 양평이었는데 지금은 여주다.


간단한 보급을 마치고, 강변에 앉아 자연이 선사하는 부드러운 고요에 몸과 마음을 맡겼습니다.


3시간 전까지만 해도 분명 저는 사람 소리가 가득한 도시에 있었는데, 지금 제 주위에는 나무, 새, 강만이 있습니다.


들리는 소리는 오직 새소리, 그리고 강 너머에서 들리는 조용한 피아노 소리뿐입니다.


자연, 그 이름은 고요이어라.





그렇게 1시간가량을 더 달려 강천보에 도착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강천보 내에 위치한 편의점에서 점심을 먹으며 다음 루트를 짜기로 했습니다.


네이버지도를 켜고, 길 안내를 받았습니다.

네이버지도는 2개의 길을 저에게 안내해 주었고, 그중 2번째 루트는 '여주 흔암리 선사유적'을 경유하는 것이었습니다.


흔암리 선사유적지는 한반도에서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지 중 한 곳인데 발굴 당시 상당한 양의 민무늬토기가 출토된 곳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도를 보자마자 고민하지 않고 2번째 루트를 선택했습니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또 언제 여주에 내려와서 유적지를 굳이 찾아와 보겠어? 하는 마음에서 내린 선택이었는데, 정말 안타깝게도 그 선택은 국토종주 중 제가 내린 가장 최악의 선택 중 하나였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흔암리 유적을 둘러보고, 강천보에서 총 15km를 벗어난 구간. 다시 말해 식사를 마치고 거의 1시간을 달려 들어온 그곳에는,


길이 없었습니다. 아니, 길은 존재했습니다만, 자전거가 갈 수 없는 등산로였습니다.





진퇴양난이라는 표현은 바로 이럴 때를 두고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산 하나가 서 있고, 뒤로는 강천보로 돌아가는 15km 길이의 길이 펼쳐진, 그곳에 제가 있었습니다.


저는 병사들을 이끌고 적진을 진군하다 적의 함정에 빠진 지휘관처럼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휘관은 어떻게든 선택을 해야 합니다. 남은 병사들을 모두 사지에 몰아넣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저도, 최악의 상황과 차악의 상황을 구별해서 어떻게든 차악의 상황을 택해야만 했습니다. 한참을 고민했고, 저는 결국 자전거를 어깨에 맨 채 앞에 놓인 등산로를 조금씩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좌) 문제의 구간. 지도의 중간, 길이 끊켜 있다(놀랍게도 자전거용 길 안내다....), (우) 등산 20분째, 산 정상에 도착




산을 완전히 빠져나온 것은 1시간 하고도 한참이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중간에 몇 번 길을 잘못 들었기 때문이기도 한데 길 안내가 정말 형편없었습니다. 결국 여러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몸으로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조금조금씩 전진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마침내, 다시 자전거가 달릴 수 있는 길을 밟게 되었습니다. 


정말 다행인 것은 의미 없는 등산을 하느라 시간이 많이 딜레이 되었다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저도, 자전거도 무사히 산을 빠져나왔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중간중간 자전거를 험하게 다룰 수밖에 없었던 순간(자전거를 들고 가다 균형을 잃어서 자전거를 놓친다던지,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한다던지..)들이 있었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자전거가 잘 버텨준 것입니다. 


자전거를 들고 산을 하나 넘었다는 사실에 문득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자전거를 잠시 눕혀두고 약간의 각오를 다진 후 다시 안장 위에 올랐습니다.


지도를 보니 산을 하나 넘어버린 탓에 정말 생뚱맞은 곳에 덩그러니 위치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규코스로 합류하기 위해서는 10km 정도 달려야 하고, 중간중간 크고 작은 업힐을 넘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국토종주길에 포함되지 않는 이름 모를 업힐들을 힘겹게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업힐을 오를 때마다, 내가 지금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토종주길에 포함되지 않는 업힐들을 오르며, 솔직히 좀 포기하고 싶기도 했지만 다행히도 체력이 많이 남아 있었고, 아직 저는 앞으로 더 나아가고 싶었기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20km 정도 되는 거리를 한숨도 쉬지 않고 주행해 비내섬 인증센터에 도착했습니다. 비내섬에 도착해서 보니 유튜브 영상을 만들기 위해 촬영 버튼을 눌러두었던 고프로가 어느 순간부터 방전되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그때는 앞으로 나아가는 부분에 몰입하며 달렸던 것 같습니다.



비내섬에서 탄금대로 가는 길. 해가 진다. 아름답다.



인증센터에서 도장을 찍은 후, 곧바로 다시 자전거에 올라타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한 10여km 달렸을까요, 조금씩 몸에 무리가 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주변 경치가 참 아름다워서, 나를 향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참 기분 좋아서, 가는 길이 마냥 힘들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이렇게 이런 자유로운 기분을 마음껏 느껴볼 수 있을까 생각하며, 순간순간을 그저 감사하게 즐기고 싶었습니다.



해가 지고, 조금씩 충주시가 가까워진다.



그렇게 탄금대에 도착한 것은 저녁 9시를 넘긴 시간이었습니다. 탄금대 인증센터 근처에서, 짬뽕 냄새가 정말 너무 좋은 가게를 지나치지 못하고 식사를 마친 이후에 인증센터로 향했는데, 짬뽕을 먹고 나서 긴장이 풀려서인지 힘이 들어서 진짜 죽을 뻔했습니다. 탄금대에서 도장을 찍고 충주역 근처에 있는 숙소까지 또 이동을 했어야 했는데, 힘들어서인지 어떻게 이동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두 번째 날의 라이딩이 종료되었습니다. 최악의 선택지를 맞닥뜨리고도, 제법 잘 대처했구나 하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와 오늘 진짜 어이 없었어 ㅋㅋㅋ"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네" 하는 생각에 조금은 스스로가 대견했던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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