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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gi Sogi Sep 08. 2021

마음 관찰 보고서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1.

이사를 한지 벌써 사나흘이 지났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지금의 방을 인계받고 내부 공간을 살펴보고 있을 때였다. 한 평도 채 되지 않을 것 같은 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가구들이 눈에 띄었다. 세월을 맞아 때가 타고 칠이 벗겨진 싸구려 가구들은, 마치 좁은 공간에 대충 욱여넣기라도 한 듯 이음이 전혀 맞지 않았다. 그때, 나는 나에게 참 미안하게도, 이곳을 바라보며 감옥을 떠올렸었다.


그래도 운동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팔굽혀펴기 같은 간단한 운동이라도 할 수 있다면 괜찮을 텐데. 짐을 풀다 말고 바닥에 누워보았다. 다리를 피면 머리가 벽에 닿고, 머리를 바닥에 내려놓으면 다리를 필 수가 없었다. 팔굽혀펴기는 커녕 앉아서 하는 간단한 스트레칭도 힘들 것 같았다. 올드보이를 보면 최민식은 독방에 갇혀있을 때 운동을 하면서 복수를 꿈꾸던데. 유지태가 최민식을 독방이 아닌 고시원에 가두었으면 영화의 결말은 달라졌을 것 같았다.



2.

국비교육이 시작된 지 9일이 지났다. 아침 9시 반부터 저녁 6시 반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8시간의 교육을 처음 받은 교육의 첫날 밤, 나는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도대체 고등학교의 나는 이런 스케줄을 어떻게 소화했었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였던가. 수업을 거듭할 수록 '8시간의 교육'이라는 키워드는 나에게 조금씩 조금씩 더 친숙한 것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총 7번의 수업을 들은 지금의 시점에서 그 키워드는, 퍽 힘들기는 하지만 과하게 버겁지는 않은 무언가로 비춰지게 되었다.




3.

평일 아침, 고시원에서 눈을 뜨면 난 모자를 푹 눌러쓰고 아침 조깅을 위해 밖으로 나간다. 조깅을 마친 후에는 고시원으로 돌아와 간단히 밥을 먹은 후 학원으로 간다. 8시간의 수업이 끝난 후, 카페에서 추가적인 공부를 2-3시간 정도 하고 고시원으로 돌아와 잠을 잔다.



4.

주말에도 난 공부를 한다. 평일처럼 아침 루틴을 수행한 후, 평일보다는 조금은 널널하지만 결코 느슨하지는 않은 공부 스케줄을 수행한다. 식사 때가 되면 식사를 하고, 몸이나 정신이 너무나 지친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잠시 몸과 마음을 살피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곤, 다시 공부를 한다.



5.

최근 두 달, 나는 정말 기꺼이 공부를 했다. 공부하는 것이 즐거웠고 행복했다. 새롭게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이, 그리고 내가 그것을 알아간다는 것이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그러다, 국비과정이 시작되었고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급격한 환경의 변화에는 늘 상당한 고통이 따른다. 처음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갔을 때 느꼈던 두려움과 공포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이번 경우의 변화는 비록 호주의 그것만큼 강하지는 않더라도 지금 나에게는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6.

아무래도 곧 슬럼프가 시작될 것만 같은 느낌이다. 국비지원 교육을 받는 과정 동안 적어도 한 번은 반드시 오리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빠르게 시작될지는 정말 꿈에도 몰랐다. 슬럼프가 시작되면 많은 부분에서 힘들어질 것이다.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도 많이 꺾일 것이고, 어쩌면 그로 인해 치명적인 결과를 얻게 될지도 모르겠다.



7.

요가강사를 준비하던 시절에 지도자 선생님으로부터 현대 요가의 발전은 감옥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요가는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몸과 마음을 속박하는 감옥이라는 공간에서 요가가 발전했다는 이야기였다.


가장 어두울 때, 어쩌면 우리는 가장 밝게 빛날 수 있는 기회를 맞은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감옥에서 요가를 통해 자신을 관찰하고, 그곳에서 세상으로의 빛을 연마했던 인도의 yogi(요가하는 사람)처럼 나 또한 더욱 더 빛나기 위해, 나에게 귀 기울이고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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