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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석 Oct 27. 2021

지렁이

섬세한 배려였을까, 고급스러운 합리화였을까

어느 추운 날 밤이었다. 가로등이 촘촘히 서 있지 않은 어두운 시골길을 걷고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바닥을 바라보며 종종걸음으로 걷고 있는데 검은 아스팔트 위에 작은 형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아스팔트보다 훨씬 더 어두운 형체였지만 물기가 묻었기 때문이었는지 그것의 표면은 달빛을 받아 맨들맨들 해 보였다.


'지렁이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동안 두 걸음 정도를 움직였다. 지렁이도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살아 있는 지렁이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살아 있는 지렁이가 여기에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날은 춥고, 바람은 매서운데.


비가 온 다음 날 길거리에 드문드문 보이던 말라 죽은 지렁이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이 지렁이도 곧 그리 되려나...


걸음을 멈춰 세우고 나뭇가지 같은 것으로 지렁이를 옮겨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눈에 띄는 나뭇가지가 없었다. 주변을 살펴보며 쓸만한 나뭇가지를 구할 수도 있었지만, 막상 그렇게 하자니 조금 귀찮은 마음이 들었다.


문득, 저 지렁이가 자신이 처한 처지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도로 땅 위로 올라와 있는 것이라면?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지렁이는 가령 친구 지렁이네 집에 놀러간다거나, 이사를 가는 중인지도 모르는데 내가 그것을 모르는 것이라면?


인간은 스스로를 고등한 생물로 여기기에 지렁이 같은 동물을 의식이나 판단을 하지 못하는 존재로 여기지만 사실은 그것 자체가 엄청나게 폭력적인 생각인 것은 아닐까? 만약 지렁이를 걱정한다는 의도에서 한 나의 이 생각과 행동이 지렁이의 자유의지와 선택을 침해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과연 옳은 일이라 할 수 있을까?


순간 지렁이를 돕는다는 행위와 의도가 옳지 않을 뿐더러, 어리석기까지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대로 뒤돌아, 가던 길을 가기 시작했다.


추운 길바닥에 지렁이를 두고,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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