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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Sep 25. 2021

인간이 미안하지 않을 날을 향해

모두가 행복하면 좋겠다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왜 태어나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과연 내 몫을 하고 있는 걸까, 지구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같은 철학적이고 꽤 중요한 물음들이 꼬리를 무는 그런 날 말이다. 하지만 매 순간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 건 아니다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그러다 보니 이 '질문 타임'에 찾아오면 내 나름의 답을 정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든다.



최근에 충격과 공포의 뉴스 기사를 보았다. 안 그런 뉴스 기사 찾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지만. 이 행성에 평화는 오지 않을 모양이다. 어쨌든, 그 기사 내용이 무엇이었냐 하면 주둥이를 공업용 고무줄로 꽁꽁 묶인 백구가 구조되었다는 것이었다! 개가 스스로 했을 리 없으니 누군가가 묶어버린 것일 테다. 얼마나 오래 묶여 있었던지 몸은 잔뜩 말라 있었고, 앞발은 피투성이에, 입 전체가 괴사 되었다고 했다. 사진으로 본 개의 얼굴은 벌에 잔뜩 쏘인 것처럼 퉁퉁 부어 있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아, 제발.


필시 동네를 떠돌던 개였을 것이다. 싫어하는 마음이 드는  이해한다. 어떤 개들은 사람을 공격할 수도 있다. 농작물을 파헤칠 수도 있고,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주둥이를 묶을 생각을 하냐. 누군지 모를 인간의 참신한 악행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유기견이나 들개가 이렇게 많이 생기는 것부터가 인간의 잘못이라 뭐라  말이 없다. 오죽하면 그랬겠느냐,  마을에  피해를 끼쳤을지도 모르지 않느냐. 그걸 중립이랍시고 똑똑한 , 스스로 공명정대하다 착각하며 말하는 자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해보라고.


어떻게 개가 인간과 같냐고, 유난 떤다고 빈정대는 사람들은 넘치도록 많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 중에도 있을 수 있다. 오죽하면 '개빠(개를 키우거나 아주 좋아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말)'라는 말도 있더라. 나도 개를 키웠었고 지금도 여전히 좋아하지만, 단순히 좋아하기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니다. 이건 약자에 대한 태도와도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간디가 말하지 않았던가.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에서 동물이 받는 대우로 가늠할 수 있다고. 아마 간디도 비슷한 맥락에서 말한 것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열등하다고, 약하다고, 그렇게 생각된다고 해서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건 무서운 논리다. 이 몹쓸 심보가 자기보다 약한 인간 - 어린이, 여성, 노인에서부터 아랫 직급, 특정 직업군에게도 미치는 걸 보면 말이다.



인간이 미안해. 주둥이가 묶인 백구의 기사 아래로 그런 댓글들이 보였다. 인간은 과연 언제쯤 미안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언제쯤 입 발린 사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너무 막막하고 갑갑하고 슬퍼져서 어떨 때는 포기하고 그냥 대충 살고 싶어 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약자의 편에 서서 분노하고 힘을 모으는 사람들이 언제나 훨씬 더 많다는 것에 위로를 받고 나아갈 힘을 얻곤 한다.


나는 얼마만큼 인간적인 인간인가. 인간으로 태어난 자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이 지구 위 무수한 존재들의 '다음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에게는 나만의 답이 있다. 언제 어떻게 어떤 말들이 더 추가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지금으로서는 만족한다. 이 대답들과 함께라면 나는 오늘 조금 더 괜찮은 인간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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