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그날을 떠올리면 울 것 같다
이 이야기를 하자면 지난 2019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것은 죽음에 관한 내용이므로 혹 이런 주제가 불편한 이가 있다면 피해 주길 바란다.
1월 말에 림포마(일종의 암) 진단을 받은 몽이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괜찮게 지내왔다. 병원에서는 최악의 경우 한 달이라고 했지만 어느덧 4개월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점점 더 진통제와 영양제를 먹으려 하지 않았고, 사료나 통조림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저 제 입에 더 맛있는, 삶은 황태와 닭가슴살이라든가 고구마나 사과, 각종 간식만 먹었다. 그리고 여전히 엄마의 커피타임에 끼어들어 과자 조각을 받아먹었고, 우리가 뭔가를 먹을 때면 조용히 옆에 와서 눈을 반짝거리곤 했다. 우리끼리 말하는 시그내쳐 자세가 있을 정도로 늘 누워서 지내는 한량 같은 개였지만, 더욱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걸음 옮기는 게 위태위태했고 자꾸 넘어지는 일도 많아졌다. 그래도 누군가 집에 오면 제법 관심을 보이며 고개를 빼꼼 내밀어 내다보곤 했다. 미용하는 건 이제 불가능해져서 나날이 꼬질꼬질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깜찍했다. 아직 기운이 있을 때 찍어두자며 무려 스튜디오에서 가족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그날 이후로 급격히 몽이는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날은 5월 26일 일요일이었다. 몽이는 전날부터 상태가 많이 안 좋았다. 자신의 주위에 누가 있는지 늘 고개를 돌려 확인했고, 혼자 있다 싶으면 낑낑 울어댔다. 품에 안고 토닥토닥해줘도 아파서인지 금방 자리를 떠나 다른 곳에 누워버렸다. 혼자 힘으로는 서 있지 못해서 배변을 하거나 물을 마실 것 같은 촉이 오면 얼른 잡고 부축을 해줘야 했다. 당시 지독한 감기에 걸린 나는 자리에 계속 누워있었다. 자꾸 칭얼대는 몽이를 어르고 달래서 같이 누워서 살짝 잠들라치면 또 찡찡거리기를 수차례 - 사실 조금 짜증이 났다. 그날 저녁, 몽이가 불안해서 한동안 본가에 얹혀살던 남동생이 갑자기 더워진 날씨 탓에 옷을 가지러 자취집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그러자 엄마는 시간도 늦었으니 그냥 내일은 자취집에서 출근하라고 했다. 우리들 모두가 '이제까지 잘 있었는데 설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저녁 약을 먹고 양치를 하러 화장실에 갔다. 열린 화장실 문 너머로 바닥에 누운 몽이가 보였다. 코가 말라서인지 살짝 코딱지처럼 생긴 것이 있었는데 그걸 엄마가 면봉으로 살살 없애준 후로는 어쩐지 숨을 잘 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전처럼 숨이 거칠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멍하니 누워 가만히 숨을 쉬는 몽이를 바라보았다. 몽이 옆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쓰다듬고는 다시 자리에 가서 누웠다. 머리가 빙글빙글한데 시간이 너무 일러서 잘 수는 없는 시간이라 키아누 리브스가 나오는 <매트릭스>를 틀어놓았다. 엄마도 교회에서 배운 내용을 정리하고 몽이가 잘 있는지 보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운 나에게도, 방에 있는 엄마에게도 몽이가 보였다. TV 소리를 작게 했으니 뭔가 심상치 않은 소리가 나면 얼른 달려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다가 불현듯 어제오늘 엄청 낑낑대던 녀석이 너무 조용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나 몽이를 보러 갔다. 옆으로 누운 몽이 주변에 소변이 흥건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혼자 못 일어나서 드디어 실수를 했구나'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종양 때문에 불룩거리며 움직이던 배가 더 이상 움직이지를 않았다. 손이 너무 떨려서 덜덜거리다가 휴지를 찾으며 엄마를 불렀다. 방에서 나온 엄마는 몽이의 모습을 보더니 혼자 이렇게 가버렸냐며, 어떡하냐며 목 놓아 울었다. 아무리 흔들어봐도, 불러봐도 반응이 없었다.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심장 부분을 열심히 마사지해보았지만, 기적처럼 눈에 초점이 다시 돌아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몸도 소변도 아직 따끈했다. 살짝 삐져나온 혀에도 아직 체온이 남아 있었다. 불과 1-2분도 채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멀쩡히 집에 있었는데도 마지막 가는 길에 옆에 있어주지 못했다.
우리가 없는 동안 몽이가 외롭게 가면 어떡하지. 엄마가 장 보러 나가는 그 짧은 순간도 불안했었다. 누구든 한 사람은 몽이랑 있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엄마가 교회를 가는 일요일에는 일부러 약속을 잡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되다니. 집에 두 사람이나 있었는데. 몽이가 죽어갈 동안에 나는 TV를 보고 있었다. 회사에 있는 동안 몽이가 죽을까 봐 걱정이었는데 차라리 그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집에 있었으면서 몽이가 혼자 죽게 내버려 두었다는 죄책감은 지금도 나를 괴롭힌다. 몽이가 눈을 감을 때 옆에 있어주고 싶었다. 괜찮다고, 누나 여기 있다고, 이제 안 아플 거라고, 우리랑 지금까지 같이 있어줘서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품에 안고 토닥토닥해주면서 눈을 맞추면서 보내고 싶었다. 정말이지 이런 식이 아니라.
적어도 낑낑거리거나 마지막 비명이라도 지를 줄 알았다. 하지만, 그래, 너는 그런 강아지가 아니었지. 실수로 내가 발을 밟았을 때도, 어린 사촌이 와서 거칠게 쓰다듬고 잡아당겼을 때도, 산책길에 어느 못된 놈이 발로 차고 지나갔을 때도 너는 깨갱 소리 한 번 안 내는 강아지였지. 화장실에 양치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눈앞이 흐릿해져 가는 순간에 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 숨이 잘 안 쉬어져.
- 무서워.
- 다들 어디 있어? 누구 없어?
그러다가 결국 혼자 떠났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산산조각 나는 것 같다. 나는 왜 하필 오늘 이런 감기에 걸린 거지. 숨소리가 잦아든 것 같았는데 왜 빨리 못 알아차렸지. 그냥 아까 옆에 같이 누워있을걸. 엄마는 왜 몽이 안 데리고 들어갔지. 남동생은 여태까지 뭐하다가 하필 이 저녁에 간 거지. 엄마도 밉고 남동생도 미웠지만, 내가 제일 미웠다. 내가 아파봤자 너만큼 고통스러웠을까. 엉엉 울면서 엄마와 몽이를 수습하고, 남동생과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몽이가 림포마 진단받았던 날의 데자뷔 같았다. 나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울기만 했고, 둘은 애써 침착하게 금방 갈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그렇게 몽이는 2019년 5월 26일 일요일 밤 9시 15분에서 20분 사이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월요일 넘어가는 새벽, 택시를 타고 김포의 한 반려동물 화장터로 가서 화장을 하고, 몽이의 남은 물건을 처분해달라고 부탁했다. 보드라운 보랏빛 천에 싸여서 누운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사후 경직 때문에 눈을 못 감겼는데 털에 가려서 다행히 잘 보이지 않았다. 쪼끄만 주제에 화장하는 데 1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해서 놀랐다(종양 때문에 완전히 연소되는 데 그보다 20여분이 더 걸렸다). 제법 많은 뼈들이 남았고, 가루를 내고 보니 더 많았다. 유골함을 받아 들고 새벽 4시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날이 바뀌어 월요일이 되었지만, 나는 회사에 가지 못했다.
우리보다 먼저 일어나서 아침밥을 내놓으라고 보채던 존재는 이제 없다. 잠들기 전에 물그릇에 물이 채워져 있는지 들여다볼 필요도 없다. 집에 도착해서 초인종을 누를 때 웡 하고 짧게 짖는 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는다. 엄마는 여유롭게 혼자 커피타임을 가질 수 있다. 엄마는 외출을 했다가 해가 지기 전에 일찍 오지 않아도 된다. 식후 과일을 먹을 때 나는 온전히 내 몫을 다 끝낼 수 있다. 코가 유난히 예민한 언니가 강아지 똥을 치우러 잠을 깰 일도 없다. 옷이고 이불이고 어디서든 풍기던 묘하게 고소한 냄새는 이제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온 가족들이 모여서 웃고 떠들 일이 하나 줄어들었다. 이제 우리 집에는 개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