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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Oct 07. 2021

저는 타로점 같은 거 안 믿어요

믿을 구석이라고는 없어도 스스로를 믿어야지

 저는 운명이나 사주를 믿지 않습니다. 같은 날짜, 같은 시간대에 태어난 같은 성별의 인간이 얼마나 많은데 그들이 모두 비슷한 모습일 거라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러면 얼마나 재미없을까요? 세상은 나를 포함한 수많은 이들의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을 텐데  무한대에 가까운 톱니들이   번도 어긋나지 않고 나의 앞날을 통제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건  나름대로 끔찍하네요.  밖에도 많은 것들을 믿지 않는 삐딱한 인간이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사주나 점을  적이 있다니 우습지요? 순전히 재미로 보긴 하지만 나쁜 결과지를 받아 들면 기분이 가라앉더라고요.



 지난 금요일에 한 친구와 연남동 일대를 구경했습니다. 멕시칸 음식과 맥주를 거하게 먹었던 터라 배도 꺼뜨릴 겸 이리저리 산책을 하고 있었지요. 그러다 멈춰 선 어느 가게 앞에서 그가 말했습니다.

"여기 타로점 되게 유명한 곳이에요."

"오, 그래요?"

가게 앞 유리에는 다양한 운에 관해 쓰여 있었습니다. 부모운, 연애운, 결혼운, 취업운, 재물운, 건강운. 이런 것들을 운이 좋아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착잡했습니다. 속으로 혀를 쯧 하고 차는데 친구가 물어봅니다. 한 번 보고 가지 않겠느냐고.


 이전에 신점을 한번 본 적이 있거든요. 그래요. 그때도 친구 따라 강남 간 것이었습니다. 한 친구가 너무 답답해서 점이라도 보고 싶다고 하기에 함께 꽤 멀리까지 유명한 무당을 찾아갔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가 점을 안 보는 이유는 믿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궁금한 것 또한 없기 때문입니다. 뭘 물어봐야 할지 모르겠어요.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그때 뭘 물어봤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네요. 하지만 그다지 수확은 없었고, '별 거 아니네' 하고 생각했던 건 분명합니다. 제가 믿지 않아서 혹은 간절하지 않아서였을까요? 무당이 제 어깨너머의 누군가를 쳐다보며 이야기하는 게 신기하기는 했어요.    


 타로점은 고등학생 때 학교 축제에서 본 이후로 처음이었습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없긴 했지만 최근 퇴사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이 친구가 보고 싶어 하는 눈치라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나이 지긋한 여성 두 분이 앉아 계셨어요. 타로점을 봐주는 분이 말씀하시기를, 타로점은 가까운 미래에 관한 것만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어쩌지. 정말 물어볼 게 없는데. 이렇게 아무런 갑갑함도 조급함도 없이 순탄한 인생을 사는 게 과연 좋은 건가 생각하고 있는데 친구가 말했습니다.

"아! 그럼 책 내는 거 물어봐요."   

그렇습니다. 저는 출판을 염두에 쓰고 40편에 가까운 글을 썼고, 최근에 완결을 했어요. 하지만 어쩐지 만족스럽지가 않아서 원고를 전반적으로 수정하고 출판사에 컨택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마저도 머나먼 미래의 일이겠지만, 진심으로 그것밖에 물어볼 게 없어서 속는 셈 치고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7장의 카드를 고르고 한 장 한 장 뒤집는데 이런, 점 보는 분의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출판, 하지 말아요. 잘 안될 거야."

네, 지금 완성된 글로는 아마 출판사마다 거절을 당하고, 운 좋게 책을 낸다고 해도 잘 안 팔릴 것 같긴 합니다. 나 같아도 안 사보겠다 싶거든요. 도대체 이 글들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달까요. 뭐랄까. 관통하는 메시지가 없달까. 이 글들을 하나로 묶을만한 게 부족하달까. 아무튼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 출판할 마음도 없었지만, 잘 안 될 거라는 말을 들으니 가슴에 구멍이 난 듯했습니다.


 절대 출판하지 말라는 말은 그 뒤로도 몇 번,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계속되었어요. 믿고 안 믿고를 떠나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습니다. 목표하고 염원했던 일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잔뜩 들었으니 그럴 수밖에요. 하지만 저는 믿지 않는 사람이잖아요?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겼습니다. 어라, 그렇게 되면 저는 타로점을 믿고 출판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건가요? 타로점이 맞았다고 봐야 하나요? 좀 더 시간을 들이려는 제 마음이 특정 카드들에 자석처럼 이끌렸던 걸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되진 않네요.



 타로점을 봐준 분이 말했습니다. 요즘 같은 힘든 시기에 새로운 걸 하는 건 손해라고.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데 누가 책을 사서 보냐고. 아주 독특한 이야기가 아니면 성공하기 어렵다고. 이슈가 될만한 사건 정도는 있어야 책 같은 걸 내는 거라고. 삐딱한 저는 이 중 어느 것에도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한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죠. 저는 출판을 할 겁니다. 인세를 푸짐하게 받으려는 것도, 생업으로 삼겠다는 것도 아닌데 책 좀 내면 어때요. 제가 점은 안 믿어도 저는 믿거든요. 근거가 다소 부실한 자신감이긴 합니다만 그러면 또 어때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나를 믿어야죠.


 타로점 보고 오기가 생겨서 그러는 게 아니고요. 진짜라니까요?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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