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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Oct 21. 2021

인생에서 타이밍을 빼면 뭐가 남나요

내가 놓쳐버린 무수한 타이밍들

 가끔 저는 회사에서 집까지 자전거를 타고 갑니다. 가깝냐고요? 회사는 마포구, 집은 노원구에 있어요. 같은 서울권이긴 합니다만, 결코 만만치 않은 거리이죠. 지도를 검색해보니 26km, 대략 1시간 30분 정도라고 나오네요. 나름 탈 만하죠?


 하지만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로 달리다 보면 그런 생각이 쑥 들어갑니다. 무겁기도 하고, 기어도 3단까지만 있거든요. 게다가 이용권 시간 안에 집에 가려고 기를 쓰고 달리다 보면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전속력으로 2시간 동안 자전거 타기란 생각보다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컨디션과 날씨, 그리고 옷차림 - 이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는 적절한 날을 고르게 됩니다. (사실 고른다기보다 퇴근이 다가오면 결심하는 편에 더 가깝지만요) 참, 그리고 무조건 금요일이어야 해요! 다음날 다리가 안 움직일지도 모르니까요. 자전거로 퇴근하는 이 단순한 일조차 생각보다 많은 것들의 타이밍이 관여한다니 재미있습니다.



 자전거로 퇴근하던 어느 날, 한참을 달리다가 한강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때마침 노을이 내려앉기 시작했고, 경치도 기가 막히더군요.

'지금 멈춰서 사진을 찍을까? 어, 아니야. 아까보다 지금이 더 괜찮은 것 같아.'

'여기만 지나면, 조금만 지나면 더 멋질 것 같은데.'

'... 어? 어라?'

저는 처음 생각했던 지점보다 훨씬 더 가서 멈췄습니다. 그리고 좋다고 생각했던 느낌과는 전혀 다른 풍경을 마주하게 되었죠. 되돌아가자니 2시간 이용권의 압박이 밀려와서 멈춘 곳에서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어요. 마음에 든다고 느꼈을 때 바로 자전거를 세웠다면 저는 더 마음에 드는 사진을 남길 수 있었을까요? 그 이후로도 멈출까 말까 하는 순간이 많이 찾아왔지만, 바로 멈춘 기억이 없네요.


 그러다가 문득 생각했어요. 인생은 이런 순간들로 이루어진 게 아닐까. 무수한 선택의 순간들과 타이밍, 그리고 후회로 말이지요. 돌이켜보면 저는 풍경 사진 찍을 때뿐만 아니라 다른 결정적 순간에서도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적당한 때보다 훨씬 더 앞서 성급한 결정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타이밍에 울고 웃다 보면 누가 좀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싶기도 합니다. 딱 맞은 순간과 올바른 결정들을 말이지요. 그러면 제 인생은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일까요? 주변 누구 하나도 잃지 않고, 원하는 것들을 쉽게 손에 얻고, 아무런 슬픔도 아픔도 아쉬움도 없는 저를 상상해봅니다. 그러면 저는 더 행복할까요? 게임도 치트키를 너무 많이 쓰면 재미가 없다는데, 인생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치트키가 간절해지는 날도 분명 있겠지만, 나만의 엔딩을 만들어가는 것도 충분히 재미있으니까요.



 자전거 타다가 했던 생각이 참 멀리도 왔네요. 이렇게 별 것 아닌 것에 빠져버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사실 이 글도 많이 늦게 나온 글이랍니다. 이 생각을 했을 때는 초여름이었거든요. 이것도 어쩌면 타이밍이겠죠.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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