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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Nov 17. 2021

저기, 무사히 오고 계신가요?

치킨을 먹으려고 했을 뿐인데

 지난 목요일 저녁이었습니다. 아니, 밤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네요. 저는 막 비행을 저지른 참이었지요. 무려 밤 10시에 배달앱으로 치킨을 시켰거든요. 저희 식구들은 야식을 잘 먹지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기록으로는 저녁 8시가 가장 늦은 시간이었네요. 하지만 이 날은 달랐습니다. 김여사 님이 친구들과 2박 3일로 단풍놀이를 가신 틈에 야식을 먹겠다는 계획을 실행하고야 말았습니다. 뿌듯해진 저는 소파에 늘어져 치킨을 기다렸지요.


 어디쯤 오셨으려나. 설렘을 참지 못하고 배달앱을 켜서 위치추적을 해봤습니다. 쓰고 보니 집착하는 캐릭터 같고 좀 무섭네요. 어쨌든 저는 남은 시간과 배달원의 위치를 확인하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15분 정도밖에 안 남았는데 배달 오토바이는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이 시간에 시키면 좀 늦을 수도 있나 보군.'

야식 초보인 저는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다시 소파에 드러누웠습니다.


 배달완료 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1분. 저는 더 이상 누워있지 않았습니다. 앱에 눈을 고정한 채 소파에 앉아 다리를 달달 떨고 있었지요. 아까 본 곳에서 오토바이가 단 1미터도 움직이지 않았던 겁니다. 큰 사거리에 덩그러니 멈춰 선 오토바이를 보니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무슨 일 났나?'

그러다가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이거 혹시... 교통사고 난 거 아니야? 캄캄하고 추운 밤, 차 한 대 지나지 않는 고요한 거리, 빨리 오려다가 사거리에서 자동차에! 상상력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15분이나 한 자리에 오토바이가 멈춰 있는 걸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에이 설마' 하면서도 불안해서 딱 5분만 더 있다가 배달원에게 전화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딩동!"

우리 집 초인종 소리가 이렇게 컸던가. 너무 놀라서 왼쪽 가슴을 부여잡고 현관문으로 비실비실 걸어갔습니다. 밤 11시에 여자뿐인 집에 있으려니 무서움은 몇 배나 커졌어요. 문을 빼꼼 열어보니 바닥에 치킨이 놓여있는 게 아니겠어요? 뭐야 너였냐. 뭐가 그리 급했는지 배달원은 이미 자취를 감춘 후였습니다.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었지요. 마침내 치느님을 영접해서, 아니 그게 아니라, 무사히 배달이 와서요. 바람처럼 사라진 걸 보니 배달원이 다친 데 없이 멀쩡한 걸 거라고 믿기로 했습니다. 도대체 뭘 타고 여기까지 온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무사히 잘 오셨으면 됐죠. 생각해보면 배달원도 고대하던 음식도 무탈히 주소지에 도착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바야흐로 배달 경쟁 시대입니다. 배달업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예전과 차원이 다르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중국집과 치킨집 앞에 하나쯤은 버티고 서 있던 배달 오토바이가 요새는 통보이지 않더라고요. 기술은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걸까요 아니면 팍팍하게 만드는 걸까요. 저는 배달원들이 배달 건을 직접 고르는 줄 알았는데, 강제 배차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군요. 식사도 휴식도 제대로 못한 채 다음 배달이 밀려드니 쫓기듯 도로를 질주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본인이 배달 건을 고를 수 있기도 하지만, 시간 내에 배달하지 못하거나 배차를 거부하면 일종의 페널티를 받는다고 합니다. 네? 왜죠? 저는 그렇게씩이나 해서 치킨을 먹겠다고 한 적이 없는데요. 누군가의 피땀눈물이 소스처럼 딸려온 치킨을 떠올리면 괜히 꺼림칙해집니다.


곡예하듯 달리는, 말 그대로 폭주하는 배달 오토바이들을 보면 괜히 무섭고 아찔해서 제대로 쳐다보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게 온전히 그들만의 잘못일까요. 작은 점처럼 보이는 뒷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배달원의 무사 도착을 기원하게 됩니다. 일분일초를 다투며 그들이 모셔가고 있는 음식이 아니라요.



 그날 밤, 엄마 몰래 먹은 치킨은 너무 맛있었습니다. 박스를 열어보니 의심스러울 정도로 치킨 한 조각만큼의 공간이 비어있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무사히 온 게 어디입니까. 그렇죠?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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