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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Jul 21. 2022

행복은 아무리 작아도 좋다

[고성] 계획 따위 개나 줘라 2편

택시를 타기로 결심하자 기분이 좋아졌다. 벌써 땀이 좀 식은듯한 착각이 들었다. 만약 누군가 오후 4시에 온다면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라고 하잖는가. 아직 택시를 부른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택시 기사를 생각하며 콧노래를 불렀다. 3분 거리에 있는 택시가 온단다. 앗싸.


막간을 이용해 그늘 아래에서 아야진 해변 근방의 카페를 검색했다. 놀랍게도 아야진 해변 근처에 있는 카페는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강릉처럼 해변을 따라 줄줄이 늘어선 카페들을 상상했던 터라 조금 당황했지만, 붐비는 곳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 편이 더 좋았다.

'자리 있으면 앉고, 없으면 뭐... 없으면 테이크 아웃해서 해변에서 먹어야겠다.'

태평하게 나름 계획을 세우고 뿌듯해하고 있는데, 내가 탈 택시가 전혀 엉뚱한 방향에서 오는 게 보였다. 아무리 주위를 봐도 유턴하는 곳이 없어서 이 택시는 나를 어떻게 태울 셈인가 싶었다. 설마, 나보고 길 건너오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거의 맞은편에 다다른 택시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달려온 택시는 그대로 유턴을 하여 내 앞에 섰다. <분노의 질주>를 떠올리는 택시기사의 현란한 운전 실력에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택시에 오른 나는 조용히 안전벨트부터 하고, 속으로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착하게 해 달라고 빌었다. 바다에 발도 담그기 전에 죽으면 억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는 길에 4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반대방향 차선으로 가는 차를 보고 난 후로는 마음이 좀 편해졌다. 내가 탄 택시 기사만 운전을 거칠게 하는 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아, 이걸 다행이라고 해도 되나? 어쨌든.



거듭 말하지만, 그날은 누가 이성을 잃고 바다에 뛰어든다 해도 이해해줘야 할 정도로 더웠다. 그리고 나는 여벌의 옷 따위는 챙겨 오지 않은 게으름뱅이였다. 잠옷과 수영복 가져온 게 어딘가. 그래도 하나뿐인 옷이 땀에 절면 곤란하니 해변 코 앞에 있는 커다란 카페부터 냉큼 들어갔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었는지 요즘 젊은이들의 취향을 다 때려 넣은 곳이었다. 통유리창으로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고, 루프탑도 있었고, 인스타그램 인증샷 찍기에 최적화된 스팟까지 있었다. 장사 기깔나게 잘 되겠다 생각하던 차에 웬걸, 창가에 한자리가 비어 있는 게 아닌가. 앗싸. 가방을 던져 영역 표시를 하고 커피를 주문하러 갔다.


내가 아메리카노를 먹는 건 일할 때뿐이다. 평일 오전의 커피는 물약에 더 가까운 것이라서 그걸 마셔야 업무 할 머리가 돌아가는 느낌이다. 순전히 기분 탓이겠지만. 아무튼, 오늘은 평일도 아니고 머리 굴릴 일도 없으니 다른 걸 마실 이유는 충분했다. 야심 차게 '베스트'라는 스티커가 붙은 커피를 주문하고 바깥 구경을 했다. 에어컨 바람이 시원했고, 물장구를 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미세하게 들렸다. 한참 사진을 찍고 있으니 음료가 나왔단다. 베스트라는 것만 보고 주문한 터라 내가 뭘 시켰나 그제야 확인해봤다. 흑임자 크림 커피란다. 엄청난 칼로리의 커피를 주문했군. 자리에 돌아와 의자에 앉으려는데 재질이 금속이었다. 여름 특별 의자인 건가 생각하며 살짝 앉았다. 머리가 쭈뼛 섰다가 쾌감이 밀려왔다. 아, 시원해. 이거지.



고성에 있는 동안 숙소에서 안 나가겠다는 일념으로 서울 도서관에서 전자책을 잔뜩 빌렸다. 대출 최대 권수인 스무 권을 빌렸는데, 커피를 마시며 체크인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읽은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에 이런 구절이 나왔다.

언젠가부터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책장에 《월든》이 꽂혀 있기 시작했던 스무 살 언저리부터 어쩌면 혼자 세상을 살아나가는 일이야말로 내가 해내야 할 생의 의미라고 어렴풋이 느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나에게 독신의 의미는 곧 자유다.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했던 많은 선택은 대부분 자유롭고 싶어서였다. 자신의 삶을 자기 의지대로 자유롭게 완성해 나가는 것. 생각만 해도 멋진 일이다.

이 부분을 읽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그 넓은 카페에 혼자 온 사람은 나뿐이더라. 모두 친구, 연인, 가족과 함께 있었다. 창 밖 해수욕장에도 혼자 온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엄청나게 외로워진 건 아니었다. 당시의 내 느낌은 '그렇구나'였다. 신기할 것도 쓸쓸할 것도 없이, 그냥 내가 혼자 있다는 사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언급했다시피 혼자일 때의 외로움은 나에게 심심함 정도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심지어 당일 아침 고속버스 안에서도 친구에게 고성으로 오라고 말하긴 했지만.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는 것과 혼자서 뭐든 잘한다는 것. 둘은 얼마나 다른 걸까. 아마 나는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하는 사람일 것이다. 타인을 견디는 일과 외로움을 견디는 일, 어느 쪽이 더 난해한가 한다면 (허은실, '목 없는 나날' 중) 분명 타인을 견디는 일이리라. 너무 가까우면 귀찮다. 그렇다고 또 너무 멀면 외롭다. 하지만 어쩌다 감기처럼 찾아오는 나의 외로움을 위해 누군가를 곁에 두고 싶지는 않다. 특히 애인의 경우는 더더욱. 나는 그 사람을 종종 외롭게 할 것이고, 결국 그는 울거나 화를 내게 될 것이다. 아주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나도 사람인지라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 말을 피해 갈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을 아주 잘 알지. 가족도 친구도 가끔 (사실 좀 자주) 귀찮아하는 나로서는 '굳이' 더 나빠질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스스로를 위해서도 좋다. 지금 이대로도 나쁘지 않다. 혼자 와도 이렇게 좋은걸? 아, 아무리 그래도 도로연수는 좀 받아야겠다.



그때 휴대폰이 부르르 울리며 문자가 왔다.

- 안녕하세요 루씨 님, 숙소 준비가 다 되었어요. 혹시나 일찍 도착하신다면 얼리 체크인 가능합니다.

앗싸! 럭키! 숙소 사진을 보고 홀린 듯이 예약했는데, 이곳이 고성 여행의 하이라이트나 다름없었다. 잔뜩 신이 난 나는 아이패드를 가방에 밀어 넣고 걸음을 재촉했다. 행복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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