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다시 승무원으로

아기엄마에게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다시 승무원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복직 전 신체검사를 받기 오랜만에 회사를 찾았다. 아침 일찍 예약을 해서 아침 6시부터 준비를 시작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오랜만에 정성 들여 화장을 했다. 전날 준비해 둔 원피스와 가방을 챙겨서 아이 둘을 친정 엄마께 맡기고 집을 나섰다.


어스름한 아침의 풍경이 두 눈에 들어왔다. 차로 걸어가는데 익숙하지 않은 높은 구두 소리가 귀에 낯설게 들렸다. 익숙하지 않은 구두를 신고, 익숙한 거리를 운전해서 마침내 회사에 도착했다. 회사에 주차를 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소속감이 주는 묘한 안정감이 좋았다.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지냈냐고 묻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약간의 해방감.

아기엄마가 아닌 나의 또 다른 존재의 이유를 만난듯한 느낌.

모든 승무원을 통틀어 네가 가장 행복하게 비행할 것 같다는 동기들의 말이 떠올랐다.


그런 내가 다시 비행을 앞두고 있다.

전 세계의 모든 나라들을 그리워했다.

미국 마트에 가면 나는 특유의 풍선껌 냄새도.

비행이 끝난 후 호텔 문을 열고 들어가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던 침구에 막 샤워를 마치고 들어갈 때의 포근함도.

시차로 새벽에 일어나서 먹었던 식어도 맛있었던 김치볶음밥도.

여러 나라를 눈에 담는 것과.

전 세계 어디든 나의 동네처럼 다닐 수 있다는 것.

꿈같은 현실이 다시 시작되려고 하고 있다.


아침부터 공복에 다양한 신체검사로 허기가 졌다.

회사 카페에서 들려 샌드위치와 아이스 바닐라 라테를 시켰다.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는 커피를 들고 따뜻한 햇볕이 들어오는 식당 창가자리를 골라 앉았다.

경건하게 샌드위치를 한입을 먹었다.

살 것 같았다.

달달한 커피도 곁들이니 나의 주변이 보였다. 찬찬히 눈에 담았다.


이 공간을 기억한다.

내가 간절히 꿈꾸던 이곳을.

22살.

들어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이곳에 승무원 교육생 신분으로 들어왔을 때 나는 마치 구름 위에 둥둥 떠있는 것만 같았다. 숟가락으로 한입 한입 떠먹는 밥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속으로 되뇌며 맛있게 먹었다.


익숙한 공간.

자리에서 마치 22살의 나와 서른 살 후반이 된 내가 공존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워낙 힘든 승무원 교육이라 교육만 잘 이수하길.

첫 비행 무사히 잘 다녀오길.

흔들거리는 비행기에서 전문가의 모습으로 안전 데모를 시연할 때는 틀리지 말길.

새로운 업무를 배울 때는 적게 실수하길. 

늘 안전한 비행기 되길.


어느 날은 팀장님께 혼나서 인천공항에서 엉엉 울어서 눈이 퉁퉁 부었던 날도 있었다.

또 어느 날은 내가 맡은 업무를 잘 수행하고, 팀장님의 칭찬을 받아 뿌듯한 마음을 가지고 리무진을 타고 집에 오늘 날도 있었다. 

몸이 아프셨던 할머니를 장거리 비행동안 잘 챙겨드려 하기인사시 너무도 고마웠다고 두 손 꼭 잡고 내 등을 두드려주셨던 할머니 손의 온기가 아직도 남아있는 듯하다.

그렇게 5년 10년 12년 차곡차곡 경험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있다.



많은 경험이 쌓인 지금의 내가 좋다.


얼마 전 만난 친한 친구에게 복직을 앞두고 두렵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미 첫째를 낳고 복직을 해봤고, 처음엔 업무가 미숙하지만 3개월 정도만 지나면 예전처럼 비행을 할 수 있다는 걸  안다. 이 경험치가 좋다.


첫째를 낳고 첫 복직 비행으로 나왔던 LA가 기억이 난다. 오랫동안 쉰 후 해야 하는 비행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 후 고마움을 전하는 승객들과 고생 많았다고 서로를 다독여주던 승무원들의 인사에 피로가 사라졌다.


깨끗이 씻고 푹신한 호텔 침대에서 푹 자고 일어났다. 따사로운 LA의 햇살을 맞으며 마시는 커피 한잔과 다이어리를 정리하는 나만의 시간이 비행의 피로를 상쇄시켜 주었다. 그 나라에서 만 맛볼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마트에서 딸아이에게 줄 핑크색 컵케이크로 그려진 편지지와 선물을 샀다. 한국에 돌아와 딸아이에게 선물을 주었다. 기뻐하는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것이 좋았다. 한국에 있는 동안은 아이와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며 사랑을 전했다.


이 경험치가 좋다.

아이 둘인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아이 둘 엄마라는 옷 입고 있느라 고생 많았어. 이제 자기가 좋아하는 승무원 옷 입고 마음껏 하늘을 날아. 아이들은 내가 볼게."


이렇게 예쁜 말을 하며 육아휴직을 내주는 남편 덕분에 나는 또 이렇게 안심하고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두렵지만 기분 좋은 설렘.

기다려진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세상이지만, 앞으로 나에겐 어떤 인생이 펼쳐질까라는 기대감으로 한걸음 나서본다.


이제
다시 승무원으로



 






*이미지 출처: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승객이 승무원을 DOOR에서 부른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