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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냥이 Aug 17. 2023

26살 추주임 퇴사하다.(1)

3년 차 주임. 대리 진급을 앞두고 퇴사한 이야기. 

나는 이상한 회사들만 골라 다녔다. 


 A4용지를 아껴 쓰지 않아서 너 때문에 회사가 망할 거라는 악담을 퍼붓던 못된 할배의 회사.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치는 연봉을 제시하면서 일 가르쳐 줄 테니 자격증도 따고 공부도 해오라던 회사. 
대표가 나이를 열 살 넘게 속이고, 임금체불을 하고, 하루아침에 사라져 연락두절이 되어버린 회사. 


 이쯤 되면 그런 회사만 골라다니는 너에게 문제가 있다며 친구들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하곤 했다.

취준생에게 이런 말은 농담이어도 꽤나 상처였다. 대학 졸업 후 입사하는 회사마다 치명적인 문제들로 오래 직장을 다니지 못했다. 하루아침에 해고 통보를 당하기도 했고, 입사 확정 후 대기 중에 입사 취소 통보를 받기도 했다. 야근수당 한 푼 없이 열심히 다니던 회사는 알고 보니 대표가 사기꾼이라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당시 첫 직장을 잘 다니고 있는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며 꽤나 풀이 죽어 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대체 왜 이상한 회사만 고르는 건지 볼품없는 안목을 탓하며 온갖 구인구직 사이트를 뒤적이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취업이 급해 회사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입사 결정을 했던 것 같다. 연봉, 복지, 내가 할 업무, 부서의 구성원, 출퇴근 거리 등 직장을 고를 때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매우 많다. 또한 그 회사가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인지, 홈페이지는 있는지 등등 회사에 관한 정보를 조사하는 것도 필수다. 이 조건들을 다 비교해 보고 내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입사를 해도 괜찮은 회사인지 충분한 고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그렇게 쓰디쓴 사회의 현실을 맛보고 정신줄을 놓기 일보직전 꽤나 조건이 좋은 회사의 면접을 보게 됐다. 

굉장히 젠틀한 남자분은 본인이 차장이며 우리 회사는 이런 곳이다라는 소개를 해주셨다. 

하루에도 몇 건의 면접을 보러 다니던 나에게 면접관의 친절한 본인 소개와 어떠한 회사인지 설명해 주시는 모습은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렇게 젠틀하고 친절한 분이 내 상사라니! 뽑아만 주시면 정말 열심히 일할 수 있을 거란 마음이 마구 들었다. 이렇게 사람의 태도가 중요하다. 친절하고 상냥한 말 몇 마디에 나는 야근과 주말특근도 불사할 각오를 할 정도로 이미 충성스러운 부하직원의 마음가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간혹 면접을 보러 가면 압박면접이 아닌 그냥 기분 더러운 면접을 겪는 경우가 있다. 그 거만하고 불량한 태도로 면접에 임하는 자세를 보며 속으론 오만가지 욕을 퍼붓곤 했다. 면접관은 그 회사의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그런 태도가 회사의 이미지에 어떤 영향을 줄지 꼭 생각해 보길 바란다. 이제는 30대가 된 나와 친구들도 가끔 취준 시절의 얘기를 할 때면 서로 얼마나 더 최악의 면접을 겪었는지 경험담을 늘어놓곤 한다. 본인이 나쁜 의미로 오랫동안 누군가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게 썩 좋은 일은 아니란 걸 알길 바란다. 


 각설하고, 그래서 면접 결과는 어땠냐고? 

 불합격이었다


 한 겨울 벌벌 떨며 면접을 보러 다니길 벌써 두 달째. 임금체불로 인해 월급도 못 받아서 통장 잔고는 이미 바닥이었고, 당장 다음 달 자취방 월세는 어떻게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불합격을 통보했던 그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다음 주부터 출근 가능하신가요?"

 상냥한 목소리의 과장님은 친절하게 입사 안내해 주셨고, 나는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중에 듣기로는 이미 내정자가 있어 형식적인 채용 공고와 면접이었으나, 그 내정자가 개인사정으로 퇴사를 하게 되었고, 면접 때 나를 맘에 들어 한 과장님께서 적극 추진하여 나를 채용하게 됐다고 한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이유야 어찌 됐든 취업했으면 그걸로 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멀쩡한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입사 첫날 내 책상에는 이미 내 이름이 쓰여 있었다. 바로 연봉에 관한 설명을 듣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앉아서 탱자탱자 놀다가 칼퇴도 했다. 야근도 없고 칼퇴도 보장되는 아주 꿀직장이었다. 물론 업무 난이도도 아주아주 쉬웠다. 그동안 이상한 회사들만 다니느라 했던 고생이 다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왜 퇴사를 했냐고?? 본사 발령이 났기 때문이다.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그리 흔히 사용되지 않던 때에도 나는 워라밸을 중요하게 생각했었고, 회사를 고르는 기준 중 1순위는 회사의 위치였다. 당시 집에서 회사까지의 거리는 차 타고 10분. 일찍이 운전을 하면서 출퇴근을 하던 나에게 10분의 거리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다. 말이 10분이지 신호만 잘 맞으면 7분 만에 퇴근을 할 정도로 회사와 집의 거리는 매우 가까웠다.  그런 나에게 대중교통으로 왕복 4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출퇴근하라니 그건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차가 워낙에 막혀 운전해서 갈 엄두도 나지 않는 거리였다. 

 단순히 거리가 멀어서 퇴사를 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가끔 본사에 회식이나 업무 지원 차 방문을 하며 느낀 것이 있었다. 내가 만약 본사에 취업을 했다면 하루 만에 퇴사를 하지 싶을 만큼 나와는 분위기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꽤나 차분한 성격의 나에겐 본사 직원들의 분위기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업무 중 삼삼오오 모여 앉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나 퇴근하면 습관처럼 볼링이나 당구를 치러 가고, 하루가 멀다 하고 친한 직원들끼리 모여 술잔을 기울이는 분위기는 나와는 맞지 않았다. 또한 직장 내 서로 험담하는 동료들, 정치질하느라 정신없는 상사들의 모습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본사 발령이 확정된 순간 나는 퇴직 의사를 밝혔고 그렇게 대리 진급을 앞둔 26살 봄. 나는 백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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