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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킴 Feb 11. 2021

아니, 내가 스페인어를 못하지 일을 못 하니?

스페인에서의 첫 인터뷰

10개국 해외 직장생활



 내가 산 10개국 중에서 8개국은 영어가 주요 소통 수단이었고, 천만다행이었다. 일할 때는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한 나는 다행히도 영어를 못해서 일을 못 구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영어가 유일한 기본 장착 기능이었던 내게 바닥부터 맨땅에 헤딩을 시작한 나라들이 있다. 스페인과 핀란드이다. 이 두 나라에서 겪은 경험은 외국에서 살면서 '언어'에 대해 내가 얼마나 자만을 하고 살았는지 뼈아프게 경험했다. 많은 사람이 영어를 배우는 것에 힘겨워하는 것을 보고 난 '영어 배우는 게 뭐가 힘들지?'라고 생각했었다. 새로운 언어들을 접하면서 사는 나라에서 그 나라 언어를 하지 못했을 때의 자괴감을 매일 느꼈다. 까막눈의 답답함에 환장할 것 같았다. 


  처음 스페인으로 이사하였을 때 내가 할 줄 아는 스페인어라고는 올라 Ola! 그리고 챠오, Ciao! 뿐이었다. 만나서 반가워! '안녕'과 잘 가! '안녕'이다. 시작과 끝은 있지만 가장 중요한 대화 중간의 언어 상자가 텅텅 비어 있었다. 스페인어 그게 뭐라고 그렇게 배우는 게 싫고, 거부감이 들고, 나를 한없이 작게 만드는지, 여성 남성 변환, 동사 변환을 끊임없이 외우고 단어와 문장을 뜯었다 붙이기를 반복하며 이해하려 했지만 만만치 않았다…. 난 영어로 이 나라에서 일할 거리를 찾아 살아야겠다는 안일한 마음으로 시작을 했다. 그 희망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며칠 만에 알게 되었다.     

 

 이사할 집을 찾기 위해 처음으로 스페인에 도착해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했을 때다. 길눈이 어두운 나는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하는 길이었다. 택시 기사님은 라디오를 틀어 놓으셨고, 라디오를 들으면서 확 피로감과 부담감이 몰려왔다.' 말하면서 도대체 언제 숨을 쉬는 거지?' 싶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방송은 말이 너무 빨랐다. 빨라도 그렇게 빠를 수가 없었다. 다다다다 따발총처럼 내뱉는 말속엔 숨을 쉬는 구간 조차 없었다. '어우, 숨 막혀. 듣다가 답답해 죽겠네.' 라디오 나오는 공영 뉴스 방송은 내겐 레퍼 엠엔엠이 스페인어로 2배속으로 랩을 하는 것 같았다. 스페인어를 쓰는 나라 중에 말하는 스피드로 치자면 스페인이 일등이다. 다른 남미 국가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면 억양의 차이와 다른 단어들을 쓰지만 말하는 속도가 느려 알아듣기가 쉽다.  

    

마드리드 Gran Via , 출처 언스플레쉬 @jorgefdezsalas


스페인어를 못하는 서러움 



 내 남편은 핀란드 사람이지만 태어나자마자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자랐다. 스페인어가 모국어처럼 편한 사람이다. 난 그에게 매미처럼 딱 붙어 모든 것을 해결했다. 처음에는 통역가를 둔 것처럼 편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불편함은 답답함으로 변했고 급기야 짜증과 화풀이로 나타났다. 스페인에 도착해서 시차 적응을 하며 이주 신고, 주민등록증 발급 신청 등 필수 발급 서류들을 등록하려 했다. '내가 외국에 한두 번 살아보니? 이 정도쯤이야.' 자신만만하게 서류 목록을 찾아보지만, 영어로는 자료를 찾을 수가 없었다. 몇몇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보면 다 한 나라에 사는 거 맞나 싶을 정도로 준비해야 하는 서류 목록이 제각각이었다.      


 난 전적으로 남편에게 이거 도와달라 저거 도와달라 보호자가 필요한 아이가 되어버렸다. 하나도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서류를 제출하러 가더라도 내 설명을 할 수가 없으니 남편이 옆에 서서 대변을 해주지 않으면 할 수 없었다. 서류 등록을 하는데 남편 없이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답답했고 싫었다. 슈퍼마켓을 가서도 뭐가 어디 있냐고 물어볼 재량이 안되었다. 영어로 물었고 대답은 스페인으로 들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들을 리가 없다. 나의 불만은 말도 안 되는 핑계로 스페인 탓을 해댔다. 스페인은 이 세계화 시대에 '영어'도 할지 모른다는 둥, 영어로 소통할 기반이 안 돼 있다는 둥, 외국인에게 불편한 나라라는 등 불만의 끝이 없었다. 불만의 요지는, 스페인어를 못하는 나는 잘못이 없고 스페인과 스페인 사람들이 세계화에는 아주 멀었다는 지극히도 개인적이고, 편협한 이상한 이론을 펼쳐냈다. 항상 생각과 말이 투명한 남편은 내게 직구를 던졌다. ' 스페인에서는 그들이 영어로 너한테 얘기를 해야 하는 게 아니라, 네가 스페인어를 해야 하는 게 맞아.‘     


 맞다. 냉정히 말하는 그의 말이 미웠지만 틀린 말이 아니다. 그 길로 나는 스페인어 학원을 등록했다. 그러면서 지원할 회사들도 알아보기 시작했다. 유명하다는 취업 사이트에 등록했고 '영어로 된' 이력서를 올렸다. 내 기준으로 세계화 준비가 된 (웹사이트에 영어 버전이 들어있는) 리크루트 에이전시에 연락해 면접도 잡을 수 있었다. '여러 나라에서 일한 이력이 있는데 일자리 하나 못 잡겠어? 딴 건 몰라도 내가 일 하나는 잘하지' 이 근거 있는 자신감은 첫 번째 에이전시와의 면접에서 와르르 무너졌다.      



비참한 면접 



 리크루트 에이전시 면접을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입구에서부터 리셉셔니스트와의 스페인어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영어로 대화를 시도했지만 리셉셔니스트는 내게 스페인어로만 질문했다. 저어 밑바닥에 가물에 콩 나듯 떠오르는 내 스페인어 실력을 끌어모아 혼신을 다해 더듬더듬 '올라. 어... 메 야모 줄리... 땡고... 음... 어포인트먼트... (아, 어포인트먼트가 스페인어로 뭐지?)' 땀이 삐질삐질 나고 심장이 쿵쾅거린다. 스페인어를 못하는 나를 애처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녀는 돌연 스페인어 따발총을 내게 다다다다 쏟아낸다. 난 급하게 'Hold on a minute! 잠깐만!' 그러고는 인터뷰할 사람의 이름을 찾아 목놓아 그 사람의 이름만 여러 번을 애타게 불렀다. 기억도 못 하는 그긴 이름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또다시 내게 따발총을 쏴주시고 뭐라 뭐라 하더니 사라진다. 알아들을 리 없던 나는 땀이 좔좔 흐르는 손에 든 포트폴리오 가방만 꼭 붙잡고 '동작 그만' 자세로 한참을 서 있었다. '뭐지? 뭐지? 따라 들어가야 하나? 여기 있으라는 건가? 시간이 좀 지난 거 같은데? 그냥 나갈까?' 생각하던 찰나 나를 다른 방으로 안내해 줬다.     


 면접은 말 그대로 꽝!이었다. 면접관은 영어를 못했고 우린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어색한 눈웃음만 몇 번 교환했다. 모든 질문은 스페인어로 진행됐고, 난 그 질문에 영어로 대답을 했다. 아마도 내 대답은 질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답이었을 테다. 포트폴리오를 무언으로 서로 보며,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알 수 없는 자괴감과 억울함이 올라왔다. 포트폴리오를 닫고 나서 면접관은 찐한 스페인어 억양이 섞인 한마디 영어를 해줬다. "그레이트, 그레이트' 내가 아는 그 'Great'이라고 말해준 거지? 'r'은 스페인어의 굴림 발음으로 해주셨다.    

  

 에이전시를 나오면서 비참함이 나를 눌렀다. '야! 내가 그래도 런던, 뉴욕, 홍콩 내로라하는 회사에서 best employer라고 언제든지 오라고 해준 인재거든? 내가 한 디자인들이 얼마나 잘 팔렸는지 알아? best seller에 올라간 디자인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기는 해? 나를 붙잡는 회사를 뒤로하고 스페인 온 거거든?! 아니, 내가 언어를 못하지 일을 못 하니?' 너무 서러웠다. 면접관에겐 노트 패드가 들려 있었는데, 그 노트 패드엔 나에 대해 단 한 글자도 쓰지 않았다. 스페인에서의 첫 인터뷰가 그렇게 끝났다. 10분도 채 안 걸린 인터뷰는 난생처음이다.  그 텅텅 빈 노트 패드가 자꾸 눈에 밟혔다. 내 이름조차 그 노트패드에 남기질 못한 거다. '스페인어? 까짓것 너 두고 봐!! 다 죽었어~' 비장함을 장착하면서도 아주 작은 칭찬을 해줬다. 그래도 내가 아는 '올라'와 '차오'는 잘하고 나왔다. '메 야모 줄리.. Me llamo Julie. 내 이름은 줄리야.' 이 한 문장이 나를 살렸다. 그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증명하겠어!


딱 기다려! 산 페르민의 투우처럼 달려줄 테니! 


팜플로나에서 열리는 산 페르민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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